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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를 배신한 샤를 7세의 끔찍하고 비참한 최후

글쓴이 : Taurus 날짜 : 2019-05-15 (수) 23:40 조회 : 2059
글주소 : http://www.typemoon.net/freeboard/1910904

* 위키나 다른 사이트에 이 글의 무단 전재 또는 복사를 자제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역사서가 아닙니다. 제가 재미를 위해 살을 붙인 부분이 있으며 최신 연구와 다른 내용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나 관계 분석은 전부 저의 상상에 기반한 가설입니다. 이 점 오해 없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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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와 샤를 7세의 관계는 굉장히 미묘합니다. 잔 다르크는 샤를 7세를 사랑했습니다. 화형당하기 바로 직전에 군중 중 한 명이 국왕을 비난하자 샤를 7세야말로 정통한 국왕이라고 변호할 정도였습니다. 반대로 샤를 7세는, 비록 등 뒤에선 이런저런 말이 많았으나 아무튼 잔과 표면적으로 싸우거나 공개적으로 비난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샤를 7세를 국왕으로 만들어준 인물은 바로 잔 다르크입니다. 잔은 샤를과 열한살 정도 나이차가 났습니다. (물론 샤를 쪽이 연상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잔은 오를레앙공 루이와 정분난 왕비 이자보가 낳은 사생아라고 하는데, 이 가설을 받아들인 음모론자들은 샤를이 잔의 친오빠였기에 잔 다르크가 끝까지 샤를을 비호한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주장을 펼치곤 합니다. 아무 증거가 없지만 그녀의 행보를 보면 그럭저럭 설득력이 있는 가설입니다.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 에서는 철저한 악역이나 배신자, 무능한 왕처럼 보이지만, 그의 인생 역정을 따라가보면 그만큼 불쌍하고 비참한 인물도 없습니다.



잔을 만나기 이전에, 샤를 왕세자는 프랑스 왕 샤를 6세의 삼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왕세자(도팽)이 아니라 그냥 왕자였는데, 형들이 줄줄이 병사한 덕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여기까진 아무 문제 없었는데 광인왕 샤를 6세가 정신병이 도지는 바람에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광인왕 샤를 6세는 왕세자에게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나는 아들을 낳은 적이 없다!" 라고 주장하며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광인왕은 나중에 가면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실성해 버리니까 별로 놀라운 발언은 아닙니다. 문제는 한 나라의 국왕이 왕세자를 부정했다는 것이죠. 설상가상으로, 미친 남편을 버리고 수많은 남자들을 침실에 불러들이던 왕비 이자보마저 매국노로 변신, 영국 왕 헨리 5세를 지지하며 왕세자의 계승권을 박탈했습니다. 악처 이자보는 심지어 샤를이 사생아라는 폭탄 선언으로 추가타까지 넣었습니다.



샤를은 사실 그 이전까진 그렇게 나쁜 왕자는 아니었습니다. 나름 왕세자 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동분서주했고, 전선에 모습을 드러내 병사들을 독려하기도 하였습니다. 별로 성공적이진 않았지만요...




그런데 트루아 조약 채결 이후의 샤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멘탈이 붕괴되어 버린 것입니다. 저라도 그러겠습니다. 샤를이 아무리 유능하고 잘나도 소용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누군지도 몰라보고 어머니는 외간남자를 프랑스의 다음 왕으로 인정했으며 심지어 왕가의 핏줄마저 부정해 버렸습니다. 


이 시기 만약 장모님인 욜랑드의 헌신적인 지원이 없었으면 샤를은 사실상 정치인생이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헨리 5세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영불제국이 탄생하는 일은 없었지만, 왕세자는 거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부르주에 처박혀 날뛰는 영국군을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샤를은 정신줄을 완전히 놓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측근들이 샤를이 하도 답답해 보인 나머지 대놓고 "전하, 왜 계속 잠만 자고 있는 것입니까" 라고 들이받은 일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왕세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냐면, 만약 오를레앙이 포위될 경우 모든 것을 버리고 스코틀랜드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갑자기 동레미라는 듣보잡 시골마을에서 소와 양을 치던 가슴 큰 처녀 한명이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면 일종의 망상장애 환자였던 이 정신병자(?) 처녀는 엄청난 천재였습니다. 그녀는 언변이 좋았고 군사적 재능이 출중했으며 심지어 카리스마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잔 다르크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불굴의 뚝심으로 6개월간 보쿨뢰르에 매일 출퇴근해 "왕세자를 만나게 해달라" 고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치면 1인 시위를 한 셈입니다)

보쿨뢰르의 사령관인 보드리쿠르는 이 소녀에게 매도 때려 봤고, 달래기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마침내 지쳐버린 그는 잔 다르크를 정말로 샤를 왕세자에게 보냈습니다. 첫 대면에서 잔은 샤를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왕세자는 전군 총수 자리를 시골 처녀에게 덜커덕 주어 버립니다.

정신병자였는지 정말 성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잔 다르크는 진짜로 샤를 왕세자를 샤를 7세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 샤를 7세가 돈을 아끼지 않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탓이었죠. 이 시점에서 샤를은 잔이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팽하기 위해 대시종장 라 트레무아유를 이용해 온갖 방해공작을 펼쳤습니다. 효과가 있어서 결국 잔은 영국의 포로가 되었고, 얼마 후에 처형되었습니다.




샤를 7세는 국왕으로서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그가 굉장히 총명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잔 다르크의 포병 중심의 화력 전술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샤를 7세가 대포의 개량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포각을 조절할수 있는 바퀴 달린 신형 대포를 도입한 것이 바로 샤를 7세입니다. (영국군 대포는 바퀴가 안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가장 뛰어난 업적 중 하나는 바로 프랑스의 군제를 개편한 것입니다. 그는 용병에 의존하는 기존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 상비군을 창설했습니다. 각 구획마다 할당한 일정한 숫자의 평민들을 징집해 전문 전투병으로 육성했고 그 대신 모든 조세를 면제해 주었습니다. 이 군제 개혁은 리슈몽의 제안을 받아들여 만든 것이었는데, 리슈몽을 대무관장으로 임명한 인물이 샤를이었습니다.


샤를은 군제 개혁을 통해 순식간에 수만명의 병력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고 이를 3개의 방면군으로 재편했습니다. 프랑스의 국력에 정교한 조직력까지 합쳐지자 영국군은 더이상 막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샤를 7세는 프랑스의 재정도 손을 봤습니다. 예전엔 과세를 위해선 삼부회의 승인을 일일히 받아야 했습니다. 샤를은 이것을 국왕이 독립적으로 징수할 수 있게 바꾸었습니다. 그는 유능한 상인인 자크 쾨르를 조폐국장 겸 재무감독관으로 임명하여 이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의 치세 아래에서 프랑스의 상업은 크게 발전했으며 조세 수입은 종전의 3배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는 봉건주의 체제를 종결시키고 프랑스를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그 첫번째 대상이었습니다. 1438년에 부르주 칙령이 공표되어 로마 바티칸의 입지가 축소되었습니다. 부르주 칙령은 교회를 사실상 국왕의 아래에 종속시키는 칙령이었는데, 프랑스 국왕 샤를 7세가 프랑스 가톨릭의 수장이 되며 성직자의 임명권 역시 국왕이 갖는다는 내용의 칙령이었습니다. 

당연히 로마 교황은 펄펄 뛰면서 반발하였으나 당시 가톨릭이 분열되어 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위협이 나날이 커져가는 상황이라, 결국 부르주 칙령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갈리카니즘(국가교회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귀족이죠? 이듬해인 1439년엔 오를레앙 칙령이 반포되었습니다. 각 영지마다 예비군을 창설하며 예비군의 통수권은 당연히 국왕에게 있습니다. 귀족이 거느린 사병은 전부 해체합니다. 이 칙령을 듣고 대영주들이 심하게 반발하는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샤를은 강제로 밀고 나갔습니다. 결국 이것도 통과되었습니다. 그러자 1년 뒤에 귀족들의 대반란이 터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왕세자인 루이까지 여기에 가담했다는 사실입니다.


샤를 7세는 자비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을 전부 제압해 버렸습니다. 이 시기 샤를은 영국군과 휴전 협정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주력군을 빠르게 반란 진압에 돌릴 수 있었거든요. 왕세자 루이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쳤습니다. 


샤를은 외교도 잘 했습니다. 그는 부르고뉴의 지배자 선량공 필리프와 협정을 맺어,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한 이들을 모두 처벌한다는 조건으로 그를 프랑스의 편에 다시 한번 가담시켰습니다. 영국은 이제 외교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열세가 된 셈이죠.


교통 정리가 어느정도 끝나자, 영국을 향한 최후의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1437년엔 파리가, 1449년엔 루앙이, 1450년엔 노르망디가, 1451년엔 보르도가 함락되었습니다. 정말로 대륙에서 쫓겨나기 싫었던 영국군은 2년 동안 마지막 발악을 했으나 대세를 뒤집지 못하고 패배했습니다. 1453년, 자그마치 100년간 이어져오던 지겨운 전쟁이 샤를 7세에 의해 끝났습니다.




그러나... 샤를의 말년은 불행했습니다. 아들과의 해묵은 불화가 터진 것입니다. 도팽 루이는 평소에 부왕에게 왕세자라는 감투에 따르는 실질적 권력을 요구했는데, 샤를 7세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왕세자는 반란 세력에 가담했고 아버지에게 패배해 도망을 쳤습니다. 1446년에 샤를은 왕세자 루이를 그의 영지로 추방해 버렸고 죽을 때까지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왕세자는 아버지를 굉장히 극혐했습니다. 루이가 샤를 7세를 싫어한 이유는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인 앙주의 마리 대신 아녜스 소렐이라는 애첩을 끔찍하게 아꼈기 때문입니다. 루이 왕세자는 이것이 너무 싫어서 하루는 칼을 들고 아녜스 소렐을 죽이려 찾아갔습니다. 겁에 질린 애첩은 왕의 침실로 달려갔고 이 사건이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았다고들 합니다.


샤를 7세는 1458년에 병에 걸렸습니다. 당뇨병과 다른 질병의 합병 증세였다고 합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고, 마침내 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르고뉴에 있는 왕세자 루이에게 모두 용서할태니 아비의 임종을 지키려 돌아올 것을 부탁했습니다.



불효자 루이는 아버지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언제 죽을지 궁금해서 심지어 점성술사를 고용히 빨리 저 늙은이가 뒈짖할 날짜를 알아내라고 닦달까지 하였습니다. 병상의 샤를 7세는 고열과 각종 질병에 시달렸고, 나중엔 입이 헐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아르마냑 백작 장이 또 다시 반역의 기미를 엿보여 노왕의 마음을 심란케 했습니다.



1461년 7월... 샤를 7세의 마지막 순간은 비참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질병은 너무나도 심해져 왕은 심각한 고통에 시달렸으며, 심지어 정신병까지 걸렸다고 합니다. 왕은 주변 신하들을 모두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신하들이 모두 배신한 왕세자와 내통하고 있다고 부르짖으며 발광했습니다. 이제 국왕의 입은 세균 감염으로 인해 너무 크게 부어올라 물조차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는 임종의 순간에 왕세자가 자신의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이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버림받은 샤를 7세는 일주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고통으로 신음하다 굶어 죽었습니다.


7월 22일, 멍 쉬르 예브르에서 국왕의 승하가 발표되었습니다.




샤를 7세는 훌륭한 군주였습니다. 미래에 등장할 조선왕 선조랑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었다고 해야겠지요. 인재를 보는 눈이 있어 평민인 잔 다르크의 비범함을 알아차리고 총사령관으로 임명했고, 한때 반목했던 리슈몽을 재기용해 전권을 주었으며, 자크 쾨르를 등용해 재정 수입을 뻥튀기했습니다. 봉건주의를 끝내고 교회의 권한을 축소시켰으며 지방 영주들을 때려잡아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부르고뉴에게 끝없는 러브콜을 보내 결국 영국을 배신하게 만들었고, 과학에도 관심이 많아 신무기를 개량하고 널리 보급했습니다. 용병에 의존하는 기존 군제를 개혁해 상비군을 창설해 프랑스군을 순식간에 대륙의 패자로 만들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용병에 다시 의존하기 시작한 루이 11세를 비판하며 샤를 7세의 군제 개혁을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격적 결함입니다. 그는 유능했지만 의심병 환자였고, 주변인들에게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한때 자신을 따랐던 대귀족들도 쓸모가 없어지면 무정하게 팽해버리는 바람에 전통적으로 왕가에 충성했던 아르마냑 백작이나 알랑송 공작 등이 반기를 드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성처녀 잔 다르크를 버린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는 친아들마저 자신의 잠재적 경쟁 상대로 여긴 나머지 결국 부자 관계가 둘도 없는 원수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샤를 7세가 이렇게 성격파탄자가 된 것은 불우한 유년 시절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인격과 별개로 그는 능력이 출중했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불행했습니다. 그에게 충성하는 신하들 중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샤를 7세의 인생에서 그에게 순수한 충성과 사랑을 바친 이는 오직 한 명, 잔 다르크 뿐이었습니다.



부르고뉴의 연대기 작가인 조르주 샤트랑은 샤를 7세의 인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그에게는 몇 가지 버릇이 있었는데, 변덕스러움, 시기심, 질투 이 세 가지였다'




23.35 Kbytes

DAEITW 2019-05-15 (수) 23:43
잘 죽긴 잘 죽었지만, 끝까지 잔 다르크한테 사과는 안 하고 갔다는 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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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군 2019-05-16 (목) 02:38

잔이 죽고나서 머리속 한켠에 밀어놓고 잊어버렸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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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버니안 2019-05-15 (수) 23:46
샤를 7세도 며느리(루이 왕세자의 첫번째 아내)를 총애했다는 썰이 있어서 흠좀무.
그리고 루이 왕세자는 자기 아내가 아버지하고 더 친하게 지내자 미워하고 핍박했다는 썰까지.
이거 완전 크킹러 아버지 밑의 크킹러 아들... 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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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urus 2019-05-15 (수) 23:51
크!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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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양산형i 2019-05-15 (수) 23:49
팽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면서 왜 적에게 넘겨주냐를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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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ory 2019-05-15 (수) 23:57
지 손으로 가마솥에 넣기에는 얼마 없는 양심이 좀 찔렸나봅니다.(아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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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 2019-05-16 (목) 07:14
직접 팽하려면 자신의 권위를 부정하는짓이 되어버리니 적의 손으로 팽해버린거죠.
잔이 부정한자임을 직접 증명했다가는 그런 부정한자의 손에 이끌려 왕홀을 들어올린 자신의 프랑스 왕위도 부정당하니 당연한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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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 2019-05-16 (목) 00:01
죽는것도 꼴 사납게 죽었네요. 자업자득이라면 자업자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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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sil 2019-05-16 (목) 00:14
이게 중세시대의 크킹이다 절망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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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aoth 2019-05-16 (목) 00:18
권모로 흥한 자, 술수로 망하리.

여러분 크킹이 이렇게 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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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인가 2019-05-16 (목) 00:27
뭐 저 크킹질로 프랑스는 본격적으로 서쪽 퍼런거의 위용을 갖추기 시작하겠습니다...(유로파 4의 시작시점이 저쯤일텐데...)
이제 육각형만 만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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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 2019-05-16 (목) 00:36
야스히코 요시카즈 화백의 잔다르크에서 등장한 루이 왕세자가 생각나는군요. 아버지 죽어라는 역시 고증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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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르테르 2019-05-16 (목) 00:39
불행한 어린 시절 타령하면 히틀러조차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죄는 저지른 사람의 것이지 불우한 어린시절 운운으로 면죄될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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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urus 2019-05-16 (목) 00:45
샤를 7세의 인간성을 옹호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결국 비참하게 죽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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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르테르 2019-05-16 (목) 00:48
한마디로 제대로 된 측근 세력을 안 만들고 계속해서 갈아 치우니까 저렇게 된 거죠. 그리고 후계자와 다툼거리를 만든 게 가장 자업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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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ael 2019-05-16 (목) 14:16
그러고 보니 섬나라(프랑스 옆 섬나라 말고)에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라는 비슷한 예시가 있군요. 이쪽은 겐페이 전쟁에서 헤이지 다 박살내서 기껏 자기네 집안 전성시대인 가마쿠라 막부 열어놓고, 자기 뒷배 측근 되어줄 미나모토씨 친족들(요시츠네, 노리요리 등등)을 죄다 트집잡아서 크-킹해버리는 바람에 자기 가문을 자기 손으로 날려버리는 어이없는 자폭을 했지요.

요리토모의 뻘짓 자폭쇼 덕분에 미나모토 직계는 다 죽고 없어지고, 요리토모 처가인 호조씨만 가마쿠라 막부를 낼름 날먹하게 되었다는 어이없는 결과가.... 호조씨 : 개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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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니스 2019-05-16 (목) 01:29
리얼 프랑스판 선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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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 2019-05-16 (목) 08:36
샤를 7세와 선조는 닮은 꼴이긴 하지만 선조는 말년에 저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으니까요.....

이순신 장군님과 저 놈의 정치질로 희생당한 의병장들 생각하면 그게 더 열받는 사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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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칸 2019-05-16 (목) 09:58
더 슬픈게 몇몇의병장의경우 혼모노여서 더 끔찍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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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china 2019-05-16 (목) 02:02
이것이 패러렐 월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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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urus 2019-05-16 (목) 02:08
패러렐 월드...? 평행세계라니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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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aoth 2019-05-16 (목) 03:14
선조와 샤를이 닮은꼴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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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en 2019-05-16 (목) 07:11
이런건 평행이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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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그 2019-05-16 (목) 02:33
자신을 사랑한 사람을 배반했으니 자신도 사랑한 사람에게 배반당한다...

하느님이 정말로 있다면 이거야말로 완벽하고도 가장 철저한 천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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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2019-05-16 (목) 04:38
아니 이거 선조인데? 다른 점이라면 충무공은 전쟁터에서 죽었고 잔다르크는 왕이 처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거?

저 자리에 앉으면 의심병이 안생길레야 안생길수 없지만 선조나 샤를 7세나 부하 복을 절로 걷어차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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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사슴Manadeer 2019-05-16 (목) 05:46
저 세가지가 전부 문제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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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감 2019-05-16 (목) 06:02
이렇게 보니 선조가 인성은 더 악질이군요. 이 인간은 트라우마 걸릴 정도로 불행했던 과거는 없고, 전후 인사 책임은 일절 지지 않는 양반이었으니. 자식 교육에 대해서는 적어도 엘랑스 쪽이 패악질을 감싸지 않았을거고요.(크킹러 기질 때문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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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ger 2019-05-16 (목) 11:14
고통속에 죽었으니 자신이 뿌린대로 거둬들였다고 여겨지네요. 인과응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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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에 2019-05-16 (목) 11:30
이정도가 되면 높은 감식안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왕이 되면 의심증에 걸린다고 생각되는데, 또 그렇지도 않은 대표적인 예시가 귀큰놈.

선조가 왜란 나기 2년 전부터 전례에 없는 고속승진으로 이순신을 전라좌수영에 박아버린 건은 임란 신의 한수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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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피 2019-05-16 (목) 23:51
페이트버전이 나와야되겟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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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팔리 2019-05-17 (금) 10:52
듣고보니 선조랑 비슷한 점이 꽤 되네요. 그래도 백성들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치려 한 선조보다는 나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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