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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1월.
야간 근무 들어갈 때마다 부사수가 먼저 얼어 죽을지 사수가 먼저 얼어죽을지를 두고 내기하며 근무 시간을 보내야 했던
혹독한 한겨울의 어느 날.


파주 1사단의 모 직할대 병장이었던 전, 4월 군번과 3월 군번, 2월 군번 십여 명이 모조리 전역해서 갑자기 최고참이 되어 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병아리 같은 이등병과 물일병이 가득한 처부의 준책임자(책임자라기엔 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그냥 위치상 책임자인 준책임자.)가 되어 버린 채로 혹한기 훈련 첫 날을 맞이했습니다.


일병 계급장의 물이 마르기 무섭게 사이버지식정보방에 출입하여 병장이 될 때가지 여가시간의 95%를(나머지 5%는 px)보낸 전 혹한기 훈련이 있는 그 달도 사지방 후불제의 여파로 돈이 없었고, 다들 두 상자는 기본으로 구비하는 핫팩도 겨우 한 상자를 사 의류대에 구겨 넣은 비참한 처지였죠(그 와중에 또 훈련중에 먹을 간식은 왕창......).


분명 3야수교에서 버스 차량으로 교육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배치 받은 직할대에는 버스가 없어 대형차량 배정을 받고 자대배치를 시작한 사람이 저란 녀석입니다. 본래 장롱면허의 주인이었던 제 몸을 간신히 버스란 철통에 적응시켜 놨더니, 운전대도 제대로 안 돌아가는 오톤 차량을 몰라고 냅다 몰아 버리니... 제대로 몰 리 없죠. 스스로 운전병임을 포기하고 정비병도 하고 잡일병도 하다, 간신히 적응한 게 수송 처부에 딸린 유류 관리고 막내 자리였습니다.


여하간 그 자리에서 군생활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병장을 달고, 2번째 혹한기를 치르게 되어, 이제는 익숙해진 움직임으로 제게 배정된 두돈반 차량 안에 경유, 휘발유, 등유 등을 싣고 훈련 출발 준비를 하는데...


훈련장 가져가서 땔 장작이 수송부 앞에 잔뜩 쌓여있는 겁니다. 쪼갤 인원이 없어 덜 쪼개진 채로요.
(처부에 인원이 너무 없어, 운전병으로만 인원을 배정했는데도 1~3파 중 1파 출발 이후 수송 처부가 텅 비었죠.)
마침 기름도 다 실었겠다, 할일도 없겠다 잘 됐다는 마음 아래 도끼를 잡고(보통 군용 차량 한편에 붙어있는 도끼입니다. 월오탱하시는 분들은 미군탱 몰아보시면 뒤에 삽이랑 도끼 있는 거 보실 겁니다. 그런 도끼에요.) 장작을 슥슥 패기 시작한 저는,


딱 하나 패고, 두 번째의 도끼질에 제 손을 팼습니다.


쪼갠 거 아니에요. 쪼갠 거 아닙니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했어요.
군대 가시면 다들 욕과 매질로 배우시겠지만, 도끼질하는 방법이란 건 따로 있습니다. 도끼날 바로 아래에 한손, 한참 아랫쪽 끝동 근처에 다른 한손을 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리신 후, 도끼날쪽 손을 가볍게 미끄러뜨리면서(아래로) 후려치셔야 제대로 된 도끼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걸 아는데, 아니 알았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문제인지 제때에 도끼날쪽 손을 내리지 않았고....


나무장작과 도끼자루 사이에 제 손을 끼워(이 상태면 도끼날은 허공을 친 상태죠. 나무장작 뒤편의.)버린 겁니다.


요술장갑이라 부르던 검은 장갑을 낀 채로 도끼질 중이었던 전 영하 20도 추위에 언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감지하지 못했고,
되레 옆에 있던 하사가 '야, 괜찮냐?'하고 물어볼 때에 '해당 손'을 흔들어 보이며 괜찮다고 웃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갑을 벗어
확인시키주려는 찰나에 피가 주르르르르르륵------.



수송관을 제외하고, 사실 수송부의 실세라 할 수 있던 중사님과 함께 레토나를 타고 의무대와 민간 병원까지 들러 확인해 보니,
해당 손의 검지 손가락 가장 안쪽 마디 뼈에 금이 갔더군요. 다행이 부러진 건 아니에서 찢어져 피가 흐르는 상처에 봉합을 하고 깁스를 하여
부대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제낄 수 있었죠.(이 일로 처부 넘버2였던, 위에서 괜찮냐고 물어봤던 하사랑은 완전히
사이가 틀어졌으니... 지금 생각하면 막 좋을 일도 아닙니다. 이때부터 하사는 저를 모든 일에서 슬쩍 빠지려는 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죠.)
(사실 그 전부터 그러기는 했지만....)


여하간,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1)당시 저는 돈이 없었고, 2)민간 병원까지 데리고 가며 봉합 수술을 해준 사람은 처부 간부였던 중사입니다.
결론 -> 수술비는 그 중사 분이 대신 내준 게 되지요. 3만원쯤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괜찮다, 내가 내겠다고 하시며, 나중에 갚으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후불제로 다음 달까지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전 그 돈을 갚지 못하고
전역해 버렸습니다. 전역 날도 간부님 얼굴은 보지 못 했으니(출장 가셨더군요.)....


그렇게 2년이 지났습니다.
남양주에 살고 자대로 예비군을 갔던 두달 후임 아이의 말에 의하면, 사이가 틀어진 하사는 이번 년도 5월에 전역했다 하고...
중사는 수송관이 되어 아직 자대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건 천우신조죠.
방학을 맞아 자전거 여행을 계획한 저는 경로를 북으로 돌려 중간 경유지로 파주를 넣었습니다.
네. 돈을 갚으러요.
자전거 여행 출발은 수요일이고, 파주의 옛 자대에 도착할 날은 목요일일 테니... 어떻게든 결판이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일 좋은 건 돈 그대로 드리고 인사 드리고 오는 거지만, 제일 나쁜 건 해당 부대가 훈련 중이라거나, 마침 해당 간부님만 안 계신다거나....)
(말씀드릴 수단도 없고, 말씀드릴 사이도 아니라서요... 정말 운 나쁠 경우 저를 기억도 못 하실지도(?))


결과는, 다음 주 월요일 전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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