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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삼국지] 관푸치노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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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덕질하다보니 새롭게 알게 된게 많은데 그중 최근 묘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흔히 말하는 '관푸치노' 떡밥 즉, 관우의 지휘능력 문제인데요.

사실 관우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그래도 촉장 중에서는 손 꼽히는 수준) 그 기록 중 승리가 거의 없습니다. 장수는 전적으로 말한다고 보면 확실히 이제까지의 명장 관우의 이미지는 관푸치노가 맞죠.

하지만 의외로 당시 사람들의 말을 보면 좀 재미있는 부분이 있더군요.

알다시피 관우는 적이 많았고 그 인생 하이라이트인 번성공방전-형주공방전의 경우 관우 하나 잡으려고 위-오의 명장들이 총출동한지라 관우를 평하는 기록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관우의 '인격적'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많은데 '군사적'문제를(종합적인 정치/전략 능력이 아닌 순수한 전술/작전 지휘능력) 지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군사(軍事)는 임기응변을 숭상하므로 일을 처리함에 있어 합리적이고 마땅함을 기약해야 합니다. 마땅히 손권에게는 비밀로써 호응하면서 속으로는 그것을 누설해야 합니다. 관우가 손권이 서쪽으로 온다는 것을 듣고 군사를 돌려 스스로를 보호하게 된다면, 번성의 포위는 속히 제거 될 것이므로, 우리 군은 곧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오나라와 촉나라 두 적이 서로 대치하게 하여 앉아서 피폐함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만일 비밀로 하고 누설하지 않으면 손권으로 하여금 뜻을 얻게 하는 것이 되니, 계책 중에서 상책(上策)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포위망 속에 있는 장수와 관리들은 구원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매일 같이 곡식의 양을 계산하면서 두려워할 것이며, 만일 다른 뜻을 품기라도 하면, 위험스럽게 되는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은 누설하는 것이 이롭습니다. 게다가 관우는 사람됨이 비교적 정직하여, 스스로 두 성을 믿고 굳게 지킬 것이며, 재빨리 퇴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서 동소전

"관우는 자신의 용기에 기대어 다른 사람을 능멸합니다. 처음으로 큰공을 세워 마음은 교만해지고 의지는 안일해졌으며 오직 북진에만 힘쓰고 우리에게는 경계의 마음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한다면, 틀림없이 더욱 방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나가면, 그를 붙잡아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내려와 지존을 만나는 것은 마땅히 좋은 계략입니다."
-위서 육손전


여몽이 말하길 

"지금 동서(유비와 손권)가 비록이 한 집안이 되었으나, 관우는 실로 곰과 범 같은 장수인데 어찌 계획을 미리 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형(노숙)은 지금 공근(주유)의 후임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힘은 임무를 맡으셨는데, 그곳도 게다가 관우와 인접한 곳으로 말입니다. 관우는 워낙 출중하기도 하거니와 학문을 좋아해, 「춘추좌씨전」을 읽어, 거의 전부를 입으로 줄줄 외운다는데, 그런데 그는 강직하고 웅대한 기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한편으로 자부심이 매우 강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 위에 서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 관우와 마주보게 되었으니까, 간단하건 복잡하든 [單複] 뭔가를 준비해서 그를 맞설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위서 여몽전

관우를 실질적으로 파멸시킨 남자들 중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평입니다. 다들 '오만함'을 지적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군재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여몽이 관우의 능력은 인정하는 발언을 하는 등 그 오만함을 지적하면서도 뛰어난 장수이며 인물이라는 점은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감이 보입니다.(저도 조사하다 알았는데 의외더군요.)

이당시 상대방과 싸울 때 군재를 까는 것이 드문일이 아닙니다. 육손은 유비의 군재를 깠고(손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조조랑 원소도  서로의 군재를 신나게 까댔습니다. 물론 싸운다고 무조건 까고 들어간 건 아니니 까지 않았다=유능하다 라고 볼 수는 없지만 관우의 단점을 지적하는 여러 사람들 중 누구도 관우는 군대를 다룸이 서투르니~ 같은 명목상의 말도 하지 않은 것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묘하게 다른 사람들의 관우에 대한 평도 보면

황초 원년(220), 유엽을 시중으로 삼고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했다. 손권이 관우를 주살한 후에 문제는 조칙을 내려 모든 신하들에게 물어 유비가 관우를 위하여 오나라에 보복하려는지 않으려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모두들 논의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말했다. 
“촉나라는 작은 나라일 뿐이며, 명장(名將)으로는 오직 관우만 있었습니다. 관우가 죽고 군대는 무너졌으며, 나라 안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다시 출동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유엽만은 혼자 이렇게 말했다. 
“촉나라가 비록 국토가 좁고 세력도 약하지만, 유비는 권모로는 위엄과 무략으로써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있으며, 세력은 반드시 병력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넉넉한 것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할 것입니다. 또한 관우와 유비는 도의상으로는 군신(君臣) 관계지만, 은혜는 마치 부자(父子)의 관계입니다. 관우가 죽었는데 군사를 일으켜 적에게 복수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 사이의 평생의 정분(情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위서 유엽전

220년이면 황충이 죽은 해로 이 시점에서 황충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죽었다고 쳐도 하후연을 이겼던 적이 있는 마초와 '장합을 털어버렸던' 장비가 살아있던 시점입니다. 황충이 살아있다면 '하후연을 죽인' 황충도 살아있었다는 것인데 '명장은 관우뿐'이라는 신하들의 의견.....요즘 관우까는 분위기에서 보면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관우가 역사에 남을 명장이었다라는건 아닙니다. 관우는 끝내 패배했고 그 패배과정도 적들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만하고 남을 무시하는 성격은 내부와 외부 양쪽에 심각한 문제를 남겼고 그 문제가 그대로 돌아와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관우를 정확히 예측해 패배시킨 사람들 중 누구도 관우가 군략이 떨어지니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여긴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관우 파멸의 제일원인인 여몽부터가 뛰어난 인물이라고 인정하고 있죠.

굳이 따지자면 그 오만함이 군재에도 영향을 미쳤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적 예시로 RTS게임에서도 단순히 유닛 컨트롤만 잘한다고 승리하는 프로게이머는 없습니다. 물론 유닛 컨트롤을 잘하면 실력이 있는게 맞지만 그보다도 후방의 자원관리(보급)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공격을 나서고 물러나는 건 어느 정도에서 선택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한타 병력으로 적 본진(번성)을 쓸어버릴 능력이 있어도 적 앞마당(우금)털고 본진(조인) 때리는 중에 자기 본진이 먼저 털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관우는 자기 본진이 오에게 위협받는 것을 알고도(심지어 적이 알려줬습니다.) 자신의 대비(RTS씩으로 하면 방어건물)만 믿고 본진 터는데 집착했고 그 사이 적 원군(서황)에게 자기 한타 병력 털리고 자신의 본진이 항복해 갈 곳을 잃고 멀티 하나(맥성)로 몰렸다가 패배한 케이스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오만함을 다스릴 수 없었고 그로 인해 파멸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명장들도 전술적 능력만으로 이긴 건 아닙니다.(물론 전술 능력은 필수입니다.) 그들은 언제 싸우고 물러날지 타이밍을 정확히 판단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불리한 타이밍에 강요했습니다. 이기더라도 단순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 계산하고 그런 전략/정치적 판단까지 고려해 전술을 내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삼국시대 때 조조/원소/손책/유비나 뒤이은 제갈량/조진/사마의/육손등이 전부 그런 것을 계산할 수 있던 사람들입니다.

즉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자면

관우는 유닛 컨트롤(전술 지휘)능력에서 비판받은 적이 거의 없다.
다만 그외의 모든 부분(보급 관리/작전 구상/전략 기획/정치 판단/외교 조절)에서 뛰어난 자신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오만함'이라는 성격적 문제가 계속 문제를 발생시켰다.
결국 그 모든 부분을 대신 해줄 유비/조조 휘하일 때와 달리 혼자 해야 할 때 곳곳에서 발생한 문제가 자신의 목을 가져갔다.

정도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p.s 1 사실 형주 공방전은 보다 보면 관우 다굴하는 거 같습니다. 조인, 방덕, 만총, 우금, 서황, 여몽, 육손, 주연, 반장 등. 여기에 장료도 투입예정, 조조 자신도 하후돈과 함께 남하에 오는 장흠이 뒤에서 지원....
p.s 2 요립이 그나마 관우의 군재를 깠는데 이건 사실상 해고당하자 모두 까자 발언이라서.....다만 아무 때나 돌격만한다라는 평을 볼 때 돌격 스타일의 맹장이미지가 당시에 있었던 건 확실해 보입니다.
p.s 3 비판은 환영합니다. 저도 무슨 역사 전문가도 아니고 이것도 당대의 평만을 바탕으로 한 꽤 단편적인 분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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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9

psyche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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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크게 보면 관우가 이기는 게 비정상인 싸움인지라... 



<div>조조가 정사에서 관우의 움직임에 쫄아 잠시 헛소리했다는 이야기가 이상해보일 정도인 싸움판이었죠.</div>

<div>그만큼 관우 이름값이 쩔었단 소리지만요...<img src="/cheditor5/icons/em/em4.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div>

<div>여튼 무슨 스텟창이 보이는 겜판소나 코에이 삼국지처럼 관심법을 쓸 게 아닌 이상,</div>

<div>누군가가 어떤 사람이 유능한가 아닌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하려면 오직 실적과 그로 인한 주변 평판을 믿어야 하죠.</div>

<div>당시 사람들은 그 시점에서 충분히 관우를 당대의 TOP급 경계대상으로 보고 있었단 이야기...</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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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천도 운운은 정말 할 말 없죠. 아무래도 한중에서 계륵 터졌던게 이 예술가 양반의 감수성에 큰 상처를 줘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반대로 반격을 나설 때도 조인, 만총, 우금, 방덕, 서황에 이어 합비에서 장료 빼고 자신도 출격하는 것도 규모가&nbsp;비정상적으로 커서 역으로 방어적인 태도로 보이고......<br /><br />그런데 관우의 실적 부족을 보면 당시 관우는 한화의 류현진처럼 본인은 엄청난데 주변 상황이 안좋은 취급 받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사토마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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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이상해서 다시 보니 글에 황신이 강림하신듯 한데..?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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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수정했습니다. 막 붙여넣기 하다보니 뭔가 꼬였던 것 같습니다.</p>

AngeliqueDeAzurescen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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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푸치노와 더불어 자매품 곽푸치노도 있죠.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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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양대 떡밥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두 사람 다 조조가 아꼈던 사람들인걸 보면 또 묘한 것이.....

AngeliqueDeAzurescen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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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돈도 미묘하게 관푸치노와 곽푸치노와 비슷한 평가가있죠.

<div>실제로는 그냥 행보관이라고[...]</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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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쪽은 거품도 없는 수준.....어지간한 조조빠들도 범장인건 인정하더군요. 다만 쌈만 잘하는 연의보다는 사람 좋은 정사가 맘에 드는 점도 있더군요.(전 연의보다 정사의 사실을 알고 하후돈이 좋아진 케이스.)

바운드독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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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실제로 유명해진건 안량과 문추를 벤 조조-원소전투였죠(물론 안량과 문추의 존재도 상당히 허구적 캐릭터일 가능성이 자주 대두됩니다만...)

<div>이때 조조군의 소수부대로 원소의 대부대를 습격해서 기량을 뽐낸건 사실입니다.</div>

<div>더군다나 황건적전 때부터 일단 일선에서 실전을 경험한 베테랑이죠,(황건적때야 소수부대 지휘관중 하나지만 항상 적보다 적은 부대를 운용해야했으니...)</div>

<div>이런 이가 여포군과 싸우고 조조군과 싸우고,,,, 그만큼 지휘관으로서 실적이 존재하다보니 오히려 요즘 나오는 관우의 지휘력 부재에 대해선 그냥 헛소리로 밖에 안들리더군요</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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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량 문추도 꽤 떡밥거리....관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진 기록'만 있는 케이스다 보니까 말이죠. 하지만 역시 안량 참살은 관우 인생 최고의 모습이라고 봅니다.<br /><br />그런데 동소전 같은 걸 보면 <br />“유비는 용감하고 뜻이 크고, 관우와 장비가 그의 우익(右翼)이 되어 있으니, 아마도 유비의 속마음을 논의하기는 힘들 것입니다.”<br />이게 유비가 조조에게서 튈 때인데(이후 서주자사 차주를 죽이죠) 이 때부터 관우와 장비가 꽤 높은 평가를 받았던 걸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이 때 유비는 정말 승리한 기록이 거의 없는 때입니다.)

떠돌이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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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즉 야전사령관으로서는 최고였다는 거군요. 일단 무예는 정사에서 인증받았으니...</p>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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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인지는 모르지만(전과가 적으니) 적어도 그 정도로 화려한 평은 받았다고 봅니다.

떠돌이개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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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사실 생각해보면 황건의 난부터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해서 쌓아온 짬밥이...</p>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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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생각해보면 대단한 짬밥이긴 한데 또 그시대에 비슷한 짬밥이 여럿 있던지라 짬밥만으로 따질 수는 없죠.(하후돈도 비슷한 짬이고&nbsp;번성 때 싸운 조인/우금도 만만찮은 짬밥이죠. 아니 그 이전에 조조부터가...) 다만 그 항상 불리한 상황에서 그 짬 먹을 때까지&nbsp;살아남은 걸 보면 확실히 대단합니다.</p>

동굴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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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전사, 전술가로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전략가로는 영....<img style="height: 50px; width: 50px; vertical-align: middle; margin: 1px 4px" border="0" alt="" src="/cheditor5/icons/em/em5.gif" />&nbsp;손권이 쥐새끼라는 평가에야 동의하지만 위와 대치하고 있는상황에서 오를 그렇게 무시하고 도발하는건 무슨 배짱이었을까요</p>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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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략에서는 저런 성격적 결함이 더 치명적이거든요. (전술적으로는 오히려 기세 좋은 모습으로 아군의 사기를 올릴 가능성도 꽤 있지만)<br /><br />다만 여몽전에서 여몽부터가 관우는 출중하다고 평한 걸 보면 실력이 보장된 오만함이었고 여몽이 있었을 때만 해도 나름 경계하고 있었죠.(여몽과 육손의 낚시에 넘어갔지만)<br /><br />나중에 한 번 더 적고 싶지만 관우는 꽤 직선적인 사람이었고 유비와는 달리&nbsp;싫어도 속내를 숨길 수 없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이 남자의 매력이고 결점이지만 말이죠.

꿀밤왕나섯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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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관우는 솔직히 유비군 2인자에 어울리지 않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지 관푸치노 운운하면서 전투력까지 까내릴 인물은 아니라고 봅니다.<br /><br />지휘 능력은 황건적때부터 입촉때까지 주구장창 있어왔기때문에 지휘능력 자체는 크게 문제가 안됐을거라고 보는게 제 생각입니다.<br /><br />조조까이긴 합니다만 조조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봐서 조조가 아낄정도면 그래도 S급은 아니어도 A급 근처는 되지 않았나 하고도 생각이 되죠.<br /><br />빈말 못하고 좀 꼰대기 있지만서도.....<br /><br />솔직히 형주를 지킨다는 의미를 잘 몰랐을수도 있습니다.<br /><br />의외로 제갈량을 경시해서 제갈량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을수도 있고....<br /><br />어 이렇게 말하고보니 관우 극렬 까 같은데......<br /><br />군을 이끌고 군사를 고무하는 카리스마는 있으되 2인자를 할 능력까진 안된다고 봅니다.<br /><br />의형제라고 맡긴게 큰 독이 된 케이스중 하나.......</p>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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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 맡긴 문제는 저도&nbsp;꽤 고민스러울만큼 복잡하지만 확실히 저 오만함이 온갖 정치적 문제를 발생시킨건 맞죠. 다만 요즘은 애초에 관우가 아니라 그 성격 좋은 조운을 박아나도 결국 오는 쳐들어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서 고민스럽습니다.(여몽전보면 여몽은 절대 관우가 짜증나서 쳐들어간게 아니라 -옳고 그른지는 몰라도-나름의 전략전 판단하에 쳐들어갔기 때문에)<br /><br />그리고 관우가 제갈량을 경시했다고 볼만한 '직접적'인 서술은 정사에 거의 없더군요. 물론 제갈량과 정치적 지향성이 다른 걸로 해석할 여지는 꽤 있습니다만.<br /><br />굳이 따지면 군사적인 2인자는 맞을지도 모르지만 사령관을 넘어&nbsp;정치/외교/전략을 전부 다뤄야 하는 총독급을 맡기에는 딱 하나 그 '오만함'이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문제였다고 봐야할까요.(그런 총독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유비군에 유비 빼면 오직 제갈량 뿐이었는데 제갈량은 익주의 내정 정리에 바빴으니) 어쩌면 유비는 어떤 외교적/정치적 노력을 다해도&nbsp;오랑 싸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령관인 관우에게 형주를&nbsp;맡겼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캠퍼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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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라고 맡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br />그 당시에는 설령 유비가 관우의 단점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관우 말고는 형주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br />짬도, 이름값도, 직급에서도 결과로는 실패지만 인선당시에는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 없기도 했어요.<br />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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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생각입니다. 제갈량의 군재가 증명되지 않은 시점(증명된 건 유비 사후)에서 관우와 비슷한 위치의 사람은 아예 없었으니까요.(장비조차도 이름 값은 관우에게 밀리는 분위기였고.)<br /><br />애초에 유엽전에서 조위 신하들의 평을 보면 장비/조운/황충 같은 애들은 유비의 장수 ABC 취급이고 관우만 따로 '유비의 2인자 관우'로 따로 취급받은 것 같기도 하고요.

더티페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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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에서 평가가 박한 애들도 많고, 평가가 찬양급이 되는 애들도 많죠. 대표적으로 평가가 박한 애들은 대부분 원소랑 조조 휘하 장수들이고, 평가가 찬양급 된 애들은 대부분이 손권, 유비네쪽 장수들이니 뭐....



개인적으로 연의에서 이미지 타격을 제일 많이 받았다고 생각되는 두 무장이 순우경과 하후은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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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전체적으로는 그렇긴한데 정사에 별 기록이 없는데&nbsp;연의에서 서황을 일기토로&nbsp;이긴 안량/문추라던지 행보관에서 맹장이 된 하후돈, 기생유하생량으로&nbsp;평해진 주유와 익양대치의 공적이 사라진 노숙,&nbsp;인생 최대의 공적(낙곡대전)이 사라진 왕평등 예외도 찾으면 있더군요. 물론 전체적 분위기는 그런 면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p>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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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경은 그렇다치고 하후은? 청강검 셔틀 하후은이라면 가공인물인데 다른 하후씨(하후돈,하후연,하후상,하후패)의 오타인가요?

더티페어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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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이라고 썼는데 은으로 오타가 나버렀네요(.....)

연의에서는 말 그대로 찌끄레기 취급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평가가 괴랄하지만, 정사에서 하후연이 가지는 입지를 생각하면 연의는 참(....)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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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웃기는게 짧은 삼국지 보면 하후연은 황충에게 잡힌 거 밖에 기억에 안 남는데 오히려 정사에서는 황충이 하후연 참살 아니면 기억에 안남았을 듯.(익주공략 때 대활약한 건 확실한데 구체적인 묘사 없이 대활약했다 정도의 묘사라서)

헌법수호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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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공방전은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목표 자체를 조조군에게 군사적 타격을 입히는 데에 두었다면 모르겠지만, 번성 점령과 그 뒤의 북진까지 생각했다면 관우 단독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관우는 무리를 했고, 이것이 대패로 이어집니다. 유비가 관우에게 어떤 방침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북진을 지시한 것이 유비라면 제대로 지원을 해 주지 않고 무리를 시킨 데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관우의 독단이 관우 스스로의 목을 날린 것입니다.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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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번성공방전은 좀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유비가 같이&nbsp;밀고 갈 생각이었는데 관우가 너무 빨리 잡혀서 틀어진걸지도 모르고 애초에 관우의 정확한 목적이 어디까지인지도 애매하고....

행인42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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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한화의 류현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관우의 승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유비는 제후들 중 최약체였으며 잠시 조조로 이적했던 시기에 좀 백업다운 백업을 받으며 싸웠을 때 보여준 전투인 백마전투에서 보여준 위용이 너무 사기적이었습니다. 소설적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적진을 단신으로 갈라서 손수 적장의 목을 잘라버렸고, 그 이후에도 "원소군의 제장들 중 관우를 당해낼 자가 없어" 원소군이 백마의 포위를 포기하고 패퇴했으니까요.

<div><br /></div>

<div>그리고 번성공방전 당시 관우의 오만과 오판에 대해서는 여몽의 작전이 전술적, 작전적으로는 탁월했지만 전략적으로는 대단히 비합리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몽의 전임 대도독 노숙의 익양대치와 비교하면 이게 두드러지는데, 노숙은 조조가 장로를 공격하고 있어 곧 한중-서촉 사이에 조조-유비간의 전선이 생길 타이밍을 골라서 찔러들어갔습니다. 유비가 조조를 상대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찔러들어간거죠. 그런데 여몽은 이와는 반대로 유비가 한중전을 승리하고 그 여파로 조조의 관중지역의 통제력이 흔들리고 관우가 양양-번성으로 북진할 시점에 공격했죠. 사실 이건 굉장히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타이밍의 공격입니다.</div>

<div><br /></div>

<div>어차피 길어봐야 5년 내에 유비가 관중으로 북진하건, 조조가 관중의 통제력을 회복하고 다시 한중으로 진격하건, 하다못해 관우가 양양과 번성을 먹던 어쨌든 조금만 기다리면 유비와 조조가 정면 충돌할수밖에 없는 전선이 생길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시점의 여몽의 공격으로 인해 유비는 조조와 손권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상황에서 조조와는 완충지대가 있고 손권과는 없는 상황에 처해버립니다. 그렇다고 손권이 조조를 신뢰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죠. 실제로도 조비의 해괴한 변덕이 아니었다면 손권은 이릉대전에서 협공을 당해 망했겠죠. 약간만 기다리면 유비가 울며 겨자먹기로 땅을 뺏겨도 인정할수밖에 없게 할 수 있는데, 하필 아주 잠시동안 유비와 조조간에 완충지대가 있는 시점을 골라 동맹을 깨뜨리고 공격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선택입니다. 전략적 합리성을 따져보자면 그 시점에 관우가 별 걱정을 안할 만 한 상황이였죠. 그러니 북진을 한 거일 테구요.</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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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영원히 언급되는 안량참살....조조가 관우 기용할 때도 이정도 활약할지는 예상 못했을 겁니다. 이정도니 은혜는 갚았으니 유비한테 간다고 당당히 말했겠죠.<br /><br />저도 여몽이 전술/작전에선는 A+내지 S급이지만 전략적으로는&nbsp;형주를 먹더라도 굳이 이 때 먹어야 했는지는 정말 의문이더군요. 그 점에서 개인적으로 오나라 최고 전략적 판단력은 노숙이 아닐까 합니다. 별로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형주를 반띵하는걸 보면.<br /><br />그런식으로보면 유비가 관우에게 형주를&nbsp;맡겼던 건/관우가&nbsp;오나라의 위협에도 출정한건&nbsp;아무리 오나라랑 사이가 나빠져도 결국 동맹은 유지될거라보고(익양대치처럼) 밀어붙였는데 계산외의 상황이 터졌다고 볼 수도?

행인42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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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번성공방전 자체를 이런 맥락에서 보는 쪽입니다. 한중전이 유비의 승리로 끝나고 조조의 관중 통제력이 일시 약화되어 완충지대가 되자, 유비의 재차 북진or 조조의 관중 지배력 회복 및 재차 한중침공까지의 약간의 여유동안은 전략적으로 형주 병력은 여유가 있다고 보고, 이 틈을 타 관우의 형주군이 양양&amp;번성을 탈취해 상용과 연결하여 유비령 형주의 방어력을 강화하고 조조에게 관중or형북으로의 이지선다를 강요하게 만들고자 하려는 작전이라는 거죠. 실패하더라도 조조군이 형북으로 집결되면 유비의 관중 진격은 매우 편해지구요. 당연히 관우 본인의 의사도 있겠지만 유비 세력 전반적인 합의하의 출정이었다고 봅니다.



<div><br /></div>

<div>문제는 여몽이 전술적, 작전적 이익을 위해 전략적 구도는 무시하고 곧장 유비령 형주를 먹으려 들고, 손권이 이걸 동의해버린 비합리적인 행동 때문에 상황이 엉망진창이 된 거지, 관우의 북진 자체가 비판받을 행동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동맹이야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고, 오나라에게 유비령 형주가 필요하다는 것도 맞지만, 하필 일시적으로 유비와 조조 사이에 완충지대가 생긴 타이밍을 골라 배신을 하는 건 정말 이상한 선택이니까요. 여몽이야 자신의 역할을 야전지휘관에 한정지을 수도 있고 건강 탓에 오래 살지 못하리라 예상하고 조급했을수도 있지만, 손권과 오나라 조정이 아주 약간을 더 못 기다리고 여몽의 제안을 받은 건 납득하기 정말 어렵습니다.</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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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결국 관우 어그로로 인해 조조는 밑천 다 뽑아 관우에게 투입해 정작 관중 방어 병력을 스스로 없애버렸으니 유비 입장에서 보면 대박이었죠. 관우가 좀 만 더 버티는 사이 유비 주력이 북상했으면 어떻게 막을 생각이었을지 조조에게 묻고 싶습니다.<br /><br />여몽이야 일개 돌격장에서 막 열심히 공부해 지휘관 된 케이스인데 이런 타입들이 태생적으로 명문인 사람들보다 전략/정치적 판단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더군요(아무래도 자기 경험이 밑바닥 싸움 위주다보니) 유비나&nbsp;한고제유방은 꽤 특이케이스.&nbsp;그리고 손권은 충분히 그럴만한게 좋은 의미로는 유연한 판단을&nbsp;내리고 나쁘게 보면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라&nbsp;일단 눈앞의 기회가 생기면 덤비는 성향이 많았습니다. 굳이 따지면 즉흥적으로 생각한달까? 판단이 느리지 않은건 장점이지만 한 번 이득먹고 뒤에 부메랑 맞곤 했죠.<br /><br />그리고 애초에 관우에 대한 감정도 꽤 있었을 듯 합니다.(이건 관우 잘못) 사실 손권은 칭제 이후를 보던지 적벽 때를 보던지 꽤 감정을 정책에 들이대곤 했죠.

holhorse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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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조비가 유엽말대로 밀고 들어가서 오를 밀어버리고, 촉까지 쓸어버렸으면 "이겼다! 3국지 끝!"이었지요.

행인42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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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건 유비-조조간에 완충지역이 있을 때 손권이 유비를 배신하면 필연적으로 일어날수밖에 없는 일이었죠. 손권이 배신한 상태에서 유비가 완충지역 관중으로 북진할 경우 관중에서 조조와의 전선, 서촉-형주 간에서 손권과의 전선의 2중전선에 빠지게 되니까요. 그렇다고 손권과 타협하고 북진을 하기엔 이미 익양대치에서의 협상을 갈아엎고 배신한 손권을 믿을 수가 없으니... 관우의 복수 문제를 떠나서라도 유비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개의 적 중 완충지대가 있는 조조는 시간을 벌고 약한 손권부터 치는 게 당연했습니다.

<div><br /></div>

<div>제갈량이 북벌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조비가 이릉전은 수수방관하다가 오에게 여유가 생겼을때 침공하는 의미불명의 행동을 해서 위는 오와 촉을 다 노리고 있다는 경각심이 공유되서 이 딜레마가 타개되었기 때문이구요-그래도 혹시 오가 뒤통수 칠까봐 북벌 내내 전전긍긍했죠-. 번성전에서의 손권의 판단과 이릉전 전후의 조비의 판단은 서로 상쇄되서 잘 인식되지 않지만, 이 두 판단은 삼국지에서 가장 납득 불가능한판단들이었다고 봅니다. 하도 이상하게 상쇄되서 실상 합리적으로 판단한 관우와 유비와 촉만 이상한 판단을 한 것처럼 보이게 됐지만요.</div>

po검열wer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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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서 자체가 익주의 초기 주인인 유언, 유장의 열전과 유비, 제갈량의 열전 등을 제외하면 기록 자체가 간략합니다.

<div>심지어 황실 외척이었던 오의, 오반 등도 열전이 없어서 계한보신찬에 적힌 간략한 기록으로 대충 어떤 관직을 지냈는지 경력을 알 수 있는 정도죠.</div>

<div>애초에 관우, 장비를 포함해서 촉한 개국공신의 최고 장로급인 미축 손건 간옹 등의 기록도 지나치게 짧습니다.</div>

<div>이는 진수가 촉서를 집필할 때 참고할 만한 역사서가 촉 내부에 남아있지 않았던지, 그게 아니면 기록이 소실되었던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죠.</div>

<div>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진수는 촉나라에서 태어났고, 촉나라의 명사 중 한 명이었던 초주에게 각종 학문을 배우면서 촉한 관리들의 경력과 진수가 나고 자란 시기까지 살아있던 촉한 관리들의 경력도 알고 있었던 덕분에 15편이나마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삼국지는 진수 개인이 집필한 사서로 국가 사업과는 무관했고, 기존의 사서들을 모아서 굵직한 기록들을 가져와 각 관원들의 열전을 묶어놓은 후 최종적으로 편집한 겁니다. 위서 30편, 촉서 15편, 오서 20편으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div>

<div><br /></div>

<div>관우전도 보면 유비를 따라 종군한 내용 바로 다음에 하비에서 유비의 가족들을 지키다가 조건을 걸고 투항, 그 직후 안량을 참살한 뒤에 형주 쪽으로 넘어갑니다.</div>

<div>이는 진수가 집필할 당시에 남아있던 관우에 관한 경력 중 그나마 굵직한 것으로 골라서 적어놓은 거죠.</div>

<div>다만 다른 사서에 적혀있는 곽가, 유엽, 정욱, 여몽 등이 관우를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면, 관우는 당대의 명사들에게는 명장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때 조조군에서 일한 전적이 있어서 조조군의 명사들은 관우의 실력을 높게 보고 있었을 겁니다.</div>

<div>사실 유비군과 조조군의 연계는 제법 관계가 깊어요.</div>

<div><br /></div>

<div>&lt;영웅기&gt;에 적혀있는 부분인데, 반 동탁 동맹군 당시에 유비군이 조조군의 휘하로 들어가서 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사에는 없지만, &lt;영웅기&gt;는 후한 명사이자 위나라의 학자였던 왕찬이 만든 사서이기 때문에 신빙성은 제법 있는 편입니다.</div>

<div>그리고 유비가 여포에게 패하고 서주를 빼앗겼을 때 조조에게 의탁해서 예주자사로 재임되었을 때, 관우와 장비도 조조로부터 중랑장 작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div>

<div>이는 유비 진영이 조조에게 의탁하는 형태로 있을 때 자잘한 전투가 있을 때마다 함께 종군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죠.</div>

<div>그 말인즉, 조조군 진영의 명사들은 이 때 관우와 장비가 싸우는 것을 앞에서 봤을 겁니다. '만인지적'이라고 평가한 부분의 근거가 충분히 되는 부분이죠.</div>

<div>기록이 적다고 실상 능력은 대단찮았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진짜 오판입니다.</div>

<div><br /></div>

<div>진수 이 아저씨가 삼국지를 남길 때 해당 사서의 국가의 시선에서만 글을 적어놨기 때문에, 각종 열전들을 같이 연계를 해서 봐야해요.</div>

<div>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보면 관우는 틀림없는 맹장이었고, 촉한을 대표하는 무장이었던 건 확실합니다.</div>

<div><br /></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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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촉서를 보면 얘들 왜이리 단촐해라고 하고 싶더군요. 장비는 장판파에서 개인 기록 시작되고 관우도 실질적으로는 조조에게 항복하고 시작되고.....황충은 도대체 형주에서 뭐하던 사람이고 익주에서 정확히 어떻게 싸웠고 그전에 <strong>나이가 몇살인지도 모르겠고</strong>, 마초도 신기하게 유비에게 오기 전에는 기록이 풍부한데 오자마자 기록이 흐릿해지고(활약이 적었을 수도 있지만), 위연은 무슨 활약 했기에 한중 태수로 '그 유비'가 임명했는지 구체적인게 없고.......촉서는 기록의 블랙홀 같습니다.(곽준도 궁금해! 진도는 도대체 예주부터 익주까지 뭘 한거야?)<br /><br />그러고보면 위에서는 관우,장비를 만인지적이라고 부르고(곽가,정욱,유엽) 오에서는 곰과 호랑이 같은 장수라 부르는데(주유,여몽) 대충 그렇게 부르자는 공통 평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어쩌면 양 쪽에서 각각 처음 부른 사람 표현을 괜찮다고 생각해 다들 그렇게 불렀을지도)<br /><br />사실 유비가 조조 휘하에서 3년간 여포랑 티격태격했고 배신 때리고 얼마 안가 관우가 항복해서 들어가고 시대의 라이벌이 의외로 같이 싸운 기간이 긴 것도 흥미롭더군요. 어쩌면 여포랑 싸울 때 관우장비가 만인지적 활약을 보여서 조조군이 기억했다가 나중에 장판파에서 장비에게 얼어붙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장비는 만인지적인데 우리는 5천이잖아 안될꺼야 아마) 뭐 유비가&nbsp;조조랑 싸운적도 자주 있으니&nbsp;적일 때의 그&nbsp;기억도 뚜렸했을듯 싶지만 말입니다.(유비는 정말 조조랑 관계가 깊어서 보면 이래저래 계속 관계가 이어지죠. 조조가 죽을 때까지)<br /><br />특히 관우는 안량참살을 두눈뜨고 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 조조군에 영원한 인상을 남겼을지도 모르겠고요.(특히 조조에게&nbsp;그놈의 천도운운)<br /><br />사실 삼국지만이 아니고 자치통감, 후한서도&nbsp;같이 봐야죠. 삼국지만 보면 원소의 뛰어남이나 원<strike>경국</strike>상의 신기한 활약(난 십대 후반에 조조를 이겼다!)을 알기 어려우니까요. 정말 정사는 이것저것 팔게 많더군요.

니나니난도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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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촉의 기록 부실은 촉나라가 너무 빨리 망해서 라고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궤도권에 올라 안정 되었다면 사관도 만들어 자기들 스스로 역사를 남기고 자기들 나름대로 평가를 남겼겠지만 고작 2대 만에 망했으니 그런것을 정비할 틈이 있겠습니까? 조금만 촉나라가 오래 갔다면 그런것도 신경을 썻을텐데 아시다시피 내내 위나라랑 가끔은 오나라랑 티격태격 하느라 신경쓸 틈도 없었겠지요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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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촉이 빨리 망했다고 해도 30년 넘었고 관료체계도 확립은 했었습니다. 다만 확실히 지금 북벌이니 남정이니 바쁘니 역사 기록은 좀 미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래저래 많은 기록들이 여러 사건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소실된 것 같고요.

니나니난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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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관우 뿐만이 아니라 삼국지의 문제는 연의와 정사의 혼합이라고 생각 합니다. 전문가 라는 사람이 나와서 연의 애기를 정사에 나온

<div>내용 처럼 애기 하니깐 사람들이 햇갈리기도 하고요 어릴적에는 진짜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 정사에는 없더라 하는 애기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div>

<div>들었습니다.</div>

<div><br /></div>

<div>&nbsp;관우만 해도 어느 정도의 영향은 있지요 삼국지 연의만 봐서는 장수로써 지휘하는 장면 보다는 무로써 일기토 하는 장면 이라거나 충의를 보여주는 장면</div>

<div>만 나오니 말입니다. 진수의 삼국지 촉기에서 나왔으니 어느정도 걸러서 봐야 겠지만 조조가 천도를 논했다고 하니 관우의 북진은 대단 했겠지요</div>

<div><br /></div>

<div>&nbsp;다만 관우의 지휘관 으로써의 능력에 태클을 걸수야 없겠지만 행정관으로써는 문제가 많았다고 봅니다. 물자는 부족하고 위나라를 노리는 북진은 애초에 힘들었고 그 와중에&nbsp;<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외교력 실패로 오나라의 참전까지 불러와 현대전에서도 그렇게 꺼리는 양면 전쟁까지 하게 됩니다. 부사인은 둘째로 치고 유비 초창기 부터 함께</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한 미방은 이탈해서 오나에 붙고, 관우 사후 여몽의 형주 진압때 관민이 엄청나게 반발 했다</span><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거나 반란을 을으키는 장면도 없었고요 이건 여몽이 대단한걸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행정관으로써 높은 점수 받기는 힘들겠지요&nbsp;</span></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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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도 있죠 전문가스러운(전문가가 아니라) 사람이 나와서 정사에는 없어 했는데 나중에 배송지 주나 다른 사람 열전보면 멀쩡히 있는경우.<br /><br />확실히 생각해보면 그런 점이 있죠. 오히려 연의에서 계략을 잘 쓰는 건 장비같기도 합니다.<br /><br />행정관으로서 문제는 확실히 인정합니다. 번성 공방전의 정확한 목전은 냅두더라도 사인, 미방이 맘에 안들더라도 너무 거칠게 대했고(그런데 미방과 사인이 잘못 없는것도 아니지요) 반준은 분명 꽤 괜찮은 인물인데도(유비가 인정한)&nbsp;관우랑 사이가 별로였죠.<br /><br />그런데 형주의 민심은 단순히 볼게 아니라 이 후 이릉 때 유비가 동진 할 때 형주 토박이 도움이 있었다고 볼 정황도 좀 있습니다. 그외에도 사실 이 시점에서 형주는 유표-조조-유비-유비/손권 반띵 이런식으로 계속 주인이 바꼈던지라 또 바뀐다고 갑자기 큰 반발이 일었을지도 좀 미묘합니다. 특히 형주의 많은 문사/무장들이 익주로 차출되기도 했고요.<br /><br />뭐 어쨌든 사령관 인재가 총독까지 하려니 문제가 발생한 경우라고 봅니다.

고도워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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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개인적으로 관우는 큰 전략을 짜본적이 없이&nbsp;야전사령관만 하다가&nbsp;갑자기 군단장이 되어버려서 그렇게 된게 아닐까 합니다...</p>

청풍靑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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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푸치노로 까이는건 신립이 까이는거랑 비슷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Croite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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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관우보다 장비가 문무적으로 뛰어났다는 소리가 있을정도로 은근 거품이 있다는 말이 많죠.<br />뭐 사실 삼국지라는게 거의 소설책읽는 느낌으로 읽어야 제맛이긴 해도 말이죠.<br />유비가 진짜 덕덕덕한게 아닌 정말 치밀하고 무서운 정치가라든가 손책은 폭군의 상이라든가..<br />설은 많지만 솔직히 관중씌 삼국지 이상으로 파기엔 너무 귀찮네요.<br />

달빛누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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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관우에게 형주를 맡긴건 인선미스가 아니었나 싶긴합니다

독화선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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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 성격 더러운건 연의 시작부터 나오지 않나요?

<div><br /></div>

<div>분명 출신얘기할때 원래 있던곳에서 관리를 때려죽이고 도망쳐왔던걸로...</div>

<div><br /></div>

<div>장비야 술먹고 개된상태에서 그러는건데(술을 좋아해서 항상 그상태인것 같긴 하지만...) 관우는...</div>

인비지블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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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 관리가 백성들을 너무 괴롭혀서 죽이고 도망쳤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럼 이게 성격 더러운거라고 보긴 좀 힘들죠;&nbsp;</p>

실버멘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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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ike>방심장군 관우:5노래</strike>

로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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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명을 보니...<br />관우가 오만함을 버리고 제갈량과 잘만 협조했다면 역사가 어찌되었을지...<br />

사나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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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푸치노보다는 곽푸치노, 조클라우드...

사나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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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span style="font-size: 13.3333330154419px; line-height: 18.6666660308838px; font-family: 'Courier New', Courier, monospace">선주는 서주자사 차주(車冑)를 습격해 죽이고, 관우에게 하비성(下邳城)을 지키며 태수의 일을 행하도록 하고(行太守事)</span><span style="font-size: 13.3333330154419px; line-height: 18.6666660308838px; font-family: 'Courier New', Courier, monospace">&nbsp;</span><font color="#951015" style="font-family: 돋움; font-size: 13.3333330154419px; line-height: 18.6666660308838px"><span style="font-size: 10pt; font-family: 'Courier New', Courier, monospace">(주2)</span></font><span style="font-size: 13.3333330154419px; line-height: 18.6666660308838px; font-family: 'Courier New', Courier, monospace">&nbsp;</span><span style="font-size: 13.3333330154419px; line-height: 18.6666660308838px; font-family: 'Courier New', Courier, monospace">자신은 소패(小沛)로 돌아갔다.</span></div><span style="font-family: 'Courier New', Courier, monospace; font-size: 13.3333330154419px; line-height: 18.6666660308838px">건안 5년(200), 조공(曹公-조조)이 동쪽을 치자 선주는 원소(袁紹)에게로 달아났다. 조공은 관우를 사로잡고 돌아와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하고 매우 두텁게 예우했다.&nbsp;</span>

<div><br />조조/유비 둘다 관우가 안량 베기 전 부터 관우를 두텁게 대한걸로 보아 이미 일전의 능력 검증이 어느정도 완료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요.</div>

<div>뭐 여러 매체에 따르는 대로 조조가 관우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던가(인재적으로) 하는 가능성도 미레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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