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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삼국지] 관우 장비의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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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량/문추니 이각/곽사니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삼국지의 진정한 세트 메뉴 관우/장비는 연의에서도 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정사를 기준으로해도 신기할정도로 대조적인 부분이 많더군요.

1. 남들 대접
관우는 사대부와 불화하고 병졸들에게 잘해주며
장비는 소인은 무시하고 군자는 공경했다.

어지간히 정사 파는 사람이면 한 번쯤은 들어 본 둘의 대조입니다. 다만 이것이 그냥 위/아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관우의 경우는 계급의 문제이며 장비의 경우는 인격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다만 장비가 병사들에게 엄했던 건 사실입니다.)

관우는 호족 출신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과 불화를 일으켰고(어쩌면 오나라와 사이가 나쁜 이유 중 하나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나라는 호족 연합이나 다름없는 구조이니) 이건 동료/부하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장비는 반대로 서주 시절 조표를 제외하면(이나마도 조표가 먼저 배신했다는 가능성도 꽤 높습니다.) 상관/동료와 거의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병사들에 대해서는 유비가 걱정할 정도였죠.

간단히 정리해 관우는 높은 계급의 사람들을 싫어했고(예외는 있음) 낮은 신분의 병사들을 잘 대해주며, 장비는 인격적으로 제대로 된 사람은 공경하지만 밑의 사람들에게는 엄정하고 잔혹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둘 다 자신들의 성격적 단점이 파멸의 원인이라고 여겨지죠.(나중에 지적하지만 이부분이 또 미묘합니다.)

2. 글과 관련해서 남들의 대접

유파 사건 때 장비는 식자를 공경해 찾아갔지만 전설의 유비까 유파는 장비를 일개 무부로 생각해 무시하고 장비를 격노시킵니다. 제갈량이 겨우 중재했죠.
반면 관우는 사대부를 싫어하면서 스스로 춘추를 외울정도였고 여몽도 관우는 춘추를 잘 아니~출중한 인물이니~ 하며 높게 평가합니다.

괜히 삼국지 연의에서 장비를 무식한 백정으로 만든게 아닌가 봅니다. 장비가 실제로 무식한 무부였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런 취급을 받은 사례가 있었단 거니.(사실 유파는 유비를 싫어했고 성격도 까칠해 만만찮게 성격 안좋았던 양의와 대립하는 등 능력에 비해 성격은 좋다고 하긴 힘들었습니다.)

3. 여자 취향?
좀 논쟁거리가 되는 문제지만 일단 팩트만 소개하자면
관우는 진의록 처 두씨를 달라고 조조에게 말했지만 유부녀 마니아 조조가 꿀꺽한 적이 있었고
장비는 13세의 하루연 조카를 납치해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기록대로라면 여자 취향도 반대....근데 사실 두씨 나이는 아무도 모른다

4. 그들의 파멸
사대부를 싫어했던 관우는 그런 호족들 연합인 오에게 뒤통수를 맞고 호족 출신이 미방, 반준등이 배신해 파멸합니다. 그런데 사실 미방이 배신했을 때 미방만이 마음으로 배신했다는 우번의 말도 그렇고 따지자면 미방 포함한 부하들이 관우가 싫어서 배신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저 부하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죠.(그리고 미방은 실제로 군수품 관리를 실패한 잘못도 있습니다. 그 전부터 사이가 나쁘기는 했지만.)

병사들에게 가혹했던 장비는 이릉대전 직전 휘하 장수 범강 장달에게 참살당합니다. 그런데 또 기록에서 참살 기록 바로 앞에 장비의 가혹함을 넣었기에 그게 원인이라고 다들 짐작하기는 하는데 또 정확히 그렇다는 서술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성격이 파멸 원인이라고 짐작은 가는데 증거는 없습니다.(원인이 아니라는 건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확증이 없다는 거죠.)

5. 용맹의 순간

그들이 자신의 용맹을 천하에 떨친 순간도 묘하게 대조됩니다.

관우의 안량참살과 장비의 장판파

정사 기준 이 둘이 자신의 용맹을 떨친 양대순간입니다. 그런데 둘을 대조하면 관우는 적진으로 '돌격해서' 안량을 참했고, 장비는 대군 앞에 나서서 '막아섰습니다'. 단순 비교하면 관우는 공격으로, 장비는 방어로 용맹을 증명한셈인데 연의에서 관우가 침착하고 장비가 폭급한 성격으로 묘사된는 걸 생각하면 다소 묘하게 느껴집니다.

6. 절정의 순간

두 사람 최고의 군공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관우의 7군수몰과 장비의 장합섬멸

그런데 이 군공도 대조되는 것이 관우는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걸 이용해 우금을 몰아붙였고, 장비는 지리를 이용해서 장합을 섬멸했습니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천시,지리,인화 중에서 관우는 천시를, 장비는 지리를 이용해 대공을 이뤘다고 할 것입니다.(그러고보면 둘다 인화에 있어 문제가 있었군요.)

이 두 전투가 대조적인게 여럿 있는데
1. 관우에게 대부분의 병력을 '데리고' '항복한' 우금은 이후 조비에 의해 조조 무덤에 갔다 '분사'했고, 장비에게 모든 병력을 '잃고' '도주한' 장합은 이후로도 가정 전투 등 크고 작은 군공을 세우며 활약하다 4차 북벌 때 사마의의 강요로 인해 '전사'했습니다.
2. 7군 수몰로 절정에 달했던 관우는 이후 파멸이 시작되며 이것은 유비 세력 전체의 파멸(이릉대전)로 이어지지만 장비의 장합 섬멸은 한중 공략의 시작이 되었고 유비 세력 전체가 절정(한중왕 선언)에 이르는 단초가 됩니다.
3. 또한 번성에서는 관우가 공격자의 입장인데 탕거에서는 장비가 방어자의 입장이었죠.
4. 또한 7군 수몰 이후에는 조조가 직접 나섰고 탕거 전투 이후에 유비가 직접 나섰습니다. 묘하게 둘다 반대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방관하고 있었죠.

종합하다 보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연의의 이미지에 비해 정사는 관우가 공격적이고 거친 느낌에 장비가 더 고고하고 침착한 느낌이 드네요

p.s 으음....처음에는 용맹과 군공만 비교하려다가 글이 길어졌네요. 
p.s.2 이렇게 대조하다보니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을 끝까지 한데 묶은 유비도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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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9

summers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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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너무 충격적이라 뒷부분이 들어오지 않는다!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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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때 15세면 성인 취급 받은 시기이니 요즘 생각과는 좀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고 봅니다.

나이트해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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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시대에 13세면 약혼자 하나쯤은 있고 상황에 따라선 남편집에 가서 지내는 나이입니다.

psyche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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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연의에선 연약한 울보 호구 이미지지만, 

<div>정사에선 경력 극초반부터 성깔돋는 보스 이미지죠<img src="/cheditor5/icons/em/em6.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

<div>관리를 반죽음으로 두들겨패고 도주한 남자...&nbsp;</div>

<div><br /></div>

<div><strike>이 정도는 되야 관우와 장비의 큰형님이지?</strike></div></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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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보면 정사의 유비가 어느 정도 그런 인의 군자 이미지를 잘 써먹은 것도 있긴 합니다. 그걸 연의가 더 과장되게 묘사했달까.....

psyche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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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은 서주대학살이나 벌이고 있고...<img src="/cheditor5/icons/em/em9.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

<div>그나저나 촉나라 사람들 기록이 다 그렇긴 하지만, 관우장비 정도면 당대의 유명인인데 생년도 알 수가 없;ㅠㅠ</div>

<div>초창기 멤버인 삼인방 나이를 비교하고 싶어도 알 길이 없네요; 대충 유비랑 엇비슷하겠지만요.</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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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록들 종합해서&nbsp;유비는&nbsp;161년, 관우는 160혹은 162년, 장비는 165년 생으로 본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잡담인간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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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남 유비!

<div>그런 유비의 인생이 뒤바뀐 사건은 역시 제갈량과의 만남!<img src="/cheditor5/icons/em/em4.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img src="/cheditor5/icons/em/em4.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img src="/cheditor5/icons/em/em4.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div>

<div>간손미~~~ 간손미~~~ 분명 상당히 능력있는 인물이었지만 제갈량 등장 전후로 따졌을때~! 역시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중요합니다~!</div>

<div><br /></div>

<div>삼고초려가 아니라 백고초려를 해서라도 대려와야죠~~~<img src="/cheditor5/icons/em/em6.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img src="/cheditor5/icons/em/em6.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img src="/cheditor5/icons/em/em27.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div>

psyche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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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제갈량 영입하고 정을 잔뜩 주니 관우 장비가 불만이 심해서 유비가 달랬단 이야기가 있죠.



<div>하긴 자기들보다 20살이나 어린 놈이 들어와서 주인에게 총애를 받고 있으니<img src="/cheditor5/icons/em/em6.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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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이후 반응 보면 사이는 좋아진 것 같습니다. 제갈량이 두 사람이 불만 있을 때 편지로 달래거나 한 거 보면.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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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졌다 이겼다 반복하던 유비가 제갈량 영입 이후 적벽부터 시작해 (제갈량 말 듣지&nbsp;않은)이릉에서 끝날 때까지 무패 행진을 반복한 건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기본 대전략이 제대로 짜이니 유비가 제 실력을 발휘한 느낌?

떠돌이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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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유비가 카리스마와 지도력 등에서 훌륭했다는 증거지요.&nbsp;당시 우두머리가 도망친 군벌은 타 군벌에 흡수되거나 초적 등 크고 작은 세력으로 갈라지게 마련인데 유비군은 오히려 부하들이 알아서 돌아와줬으니.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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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정점은 역시 관우.<img style="height: 50px; width: 50px; vertical-align: middle; margin: 1px 4px" border="0" alt="" src="/cheditor5/icons/em/em58.gif" /></p>

떠돌이개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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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nbsp;창업 파트너(?)이니... 그리고 장비가 유난히 엄하긴 했는데 애초에 고대 군법이&nbsp;지독하게&nbsp;엄격했답니다. 삐끗하면 목 날아가는 게 부지기수였다나요 뭐라나요.

한없는바람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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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순신 장군께서도 군법 적용에 있어서는 엄격하셨잖아요. 하물며 사람 목숨이 진짜 초개였던 삼국시대야 뭐(...)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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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비가 군법을 무시했다 이런 기록은 없으니 그쪽에 가까운 듯 합니다. 사실 제멋대로 막 때리고 다녔다면 30년 넘게 살아있지도 못했겠죠.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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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병사들에게 잘해준 하후돈이나 한당, 관우 등이 당대치고는 특이한 경우죠.

나이트해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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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로마 군법만 봐도 앗차하면 매타작으로 죽기 일쑤입니다. 병사들엑 심히 너그러웠기 때문에 병사들이 아버지처럼 따랐다는 곽자의도 시범케이스로 병사나 하사관 목을 처 날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렌코가없잖아님의 댓글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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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사실 납치가 아니고 정략 결혼이었는데 장비가 유비 따라 튀니까 납치라고 주장한게 아니냐는 썰도 있습니다.(뭣보다 하후연 조카가 왜 나무나 줍다 납치당했냐는것이 묘해서)</p>

반면교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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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가 로리콘이라니...<img src="/cheditor5/icons/em/em68.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img src="/cheditor5/icons/em/em71.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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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나 레옹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그럴싸할지도.....

사계절의왕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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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장비의 로리콘 의혹....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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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삼국지 팬덤에서는 이미 꽤 유명한 이야기죠.

캠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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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처자가 혹여 [세상에 너같은 13살이 어딨어?]하는 레벨이었을지도<br />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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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혹은....로리거유?</p>

schwart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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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는 장비 이미지가 페이트의 신지랑 비슷하다고 할까요.

재능은 있는데 너무 자뻑 심한 케릭터적 느낌이 있죠

그리고 관우 엄청 다혈질인거 같은데 조조가 너무 좋아해서 정사나 연의나 미화된 느낌이 있죠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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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는 신지보다는 차라리 길가메쉬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적들 조차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시대 절정의 재능'이었으니까요.<br />그리고 관우는 조조가 좋아해서 특별히 미화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특히 정사에서 관우의 단점도 뚜렷하게 지적하고 있으니까요.

schwart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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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성격보다 미화된거 같다고요 이 양반은 연의에서는 화웅 목 딴다고 나가는데 술이 식기전에 끝난다고 할 정도로 불같은 성격인데 이미지가...

팡링잉X황링인님의 댓글

po검열wer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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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은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부사인도 농성 준비해놓은 뒤에 항복 권유하러 온 사자를 내쫓았고, 막 공성전 시작하려던 차에 여몽이 의원으로 써먹겠다고 데려온 우번이 협박 편지를 서슬퍼렇게 써서 보내자마자 바로 항복, 반준은 형주가 손권 손에 들어간 직후에 집에 처박혀서 울기만 해가지고 손권이 제발 나 좀 따라달라면서 집으로 데리러 간 케이스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배신 제대로 후려칠 준비를 했던 건 미방 밖에 없었단 소리.

<div>그게 아니었다면 진수가 반준전을 따로 오서에 할애했을리가 없죠.(...)</div>

<div><br /></div>

<div>그리고 하후연의 조카가 13,4세라는 기록은 주석으로 인용된 &lt;위략&gt;에 있습니다만, 배송지가 주석을 달 때 의심쩍은 부분은 여러모로 태클을 걸었던 것에 반해서 이 기록만큼은 태클 건 흔적이 없습니다. 그 말인즉 신빙성이 꽤 높다고 판단했단 소리.(...)</div>

나이트해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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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세까지는 16세면 성인. 15세도 상황따라선 성인취급. 급하면 14세도 성인으로 간주하는 시대라 13세 정도면 '응? 그나이면 약혼자 있고 슬슬 결혼 준비하는 나이 아닌가?'하는 수준이죠.

psyche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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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는 사실 별 거 아닌데, 장비 나이가 대충 마흔 안팎일 거라 날도둑놈...<img src="/cheditor5/icons/em/em18.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

<div>뭐, 높은 지위를 지닌 전시대의 남정네에겐 흔한 일이겠지만요~<img src="/cheditor5/icons/em/em6.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div>

po검열wer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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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생년도가 160년, 황건적의 난이 퍼진 184년에는 24세였고, 그 이전에 관우, 장비, 부사인 등의 유주 출신 잡배나 몰락한 가문의 자제들, 그 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협객 등등을 끌어들여서 사병 300을 이끌고 뛰어들었고 건안 200년엔 40을 바라보는 나이였죠.

<div>연의에선 관우의 연령이 유비보다 많은 것으로 나와있지만 사실 어렸을 수도 있습니다. 대략 184년 즈음에 관우의 나이가 21,2세 정도였고, 관우를 형으로 모셨다던 장비의 나이를 15~8세 사이로 본다면, 유비가 거병했을 때 따른 나이를 최소 15세로 잡는다 치더라도 31세는 되었을 거란 거죠.</div>

<div><br /></div>

<div>다만 당시 도의적으론 크게 문제는 안 되었을 겁니다. 문제가 됐다면 뭔가 이의 제기는 있었겠죠.</div>

<div>약탈혼도 심한 시대였고, 여성 인권도 높질 않았으니까 그런 식으로 잡아가면 여러모로 뭔 꼴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요.</div>

<div>도리어 한 순간에 저지른 실수치곤 아내를 꽤 사랑한 흔적이 역력해보여서.(...)</div>

po검열wer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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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대인의 당시 성년 기준은 16세, 아무리 늦어도 18세 내외였고 여자의 경우엔 15세면 성년, 13,4세 땐 사실상 준성년으로 취급했으니까, 그 당시 도의적으로는 문제가 안 되었을 겁니다.

<div>도리어 장비의 경우엔 여러모로 신사적인 것이, 그렇게 보쌈을 해갔으면 사실상 전리품으로 취급해도 좋았겠지만, 형주에서부터 입촉까지 정말 신경 써서 데리고 다닌 것 같다는 게 확 보이거든요. &lt;위략&gt; 자체가 사료가 얼마 안 남아있긴 한데, 하후로리(...)와 결혼하기 위해서 장비가 꽤나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비 부하들 중에선 '저 여자 스파이 아니냐, 장비 미친 거 같으니 님이 좀 말려라'고 한 사람도 있는 걸 유비가 싸고 돌기도 했고.(...)</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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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건 아는데 정말 궁금한 건 '하후연 조카딸이 왜 나무를 줍고 있었나'입니다. 엄청 뭔 분가의 아가씨라도 됐던 것인가.....뭐,&nbsp;다시 생각해보면&nbsp;그 시대의 개막장 난세를 생각하면 불가능도 아닌가....

po검열wer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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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신빙성 있게 추측을 해보자면, 당시 백마, 연진 쪽을 대비하기 위해서 일족의 남자들이란 남자들은 노인을 제외하고 죄 끌고 나가지 않았느냐 하는 겁니다. 당시 매치는 조조(연주,예주,서주,청주,장안 방면) vs 원소 (기주, 병주, 청주, 유주, 예주 방면) 이었는데, 서주에서는 조조가 정신나간 학살 병크를 터뜨려서 민심이나 겨우 달래주는 수준이었고, 예주 쪽은 원소의 고향, 장안 방면은 서북 군벌들에 대해 대비하고 청주 쪽의 영향력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결국엔 연주 하나로 버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거든요.

<div><br />

<div>물론 조조도 딸딸 긁어모아서 10만 이상은 가능했습니다만, 분산 전력 때문에 실질 전력은 5만으로 추산되고 원소의 경우엔 20만까진 넉넉했고 최소 12만은 이끌고 남하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황하 서에서 동까지 쭈욱 이어서 관도를 포위하는 형세를 만들었고, 조조는 없는 살림에 실질 주력 3만을 이끌고 관도에서 우주방어, 정욱이 700명 가지고 견성을 지키고 우금과 악진이 천 명씩, 나머지 전력들은 예주에서 원소의 사주를 받고 일어난 예주 군벌들과 전 황건적 유대, 공도 등과 결탁한 유비를 막는데 소모되고 서주 쪽은 손책이 양민학살로 쌓은 허당 경험치에 자신만만해서는 광릉까지 올라오던 상태.</div></div>

<div><br /></div>

<div>...그러니까 집안에서 땔감 주워올 하인까지 죄 병사로 징발했을 정도로 여유가 없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div>

<div>그렇게 하면 억측으로나마 대강 설명은 되요. 왜 땔감을 줏으러 나왔는지.(...)</div>

rekan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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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씨네 고향이 초국 패현인데 200년 쯔음에는 원소랑 대치해서 조조의 역량이 그쪽으로 집중된 틈에 기근이 들어 하후연 아들이 죽어나갈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땔나무 줏을수도 있죠. &nbsp;

<div><br /></div>

<div>다만 그런 드라마틱한 만남이라기보단 허도에서 머무르던 시절 일종의 정략결혼으로 맺어진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더군요.</div>

새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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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러면 장비에게 형주를 맡겼으면 어찌되었을려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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