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쓴소리를 해주는게 나을까요 안하는게 나을까요
2015.09.12 00:28
2,280
27
0
본문
저에겐 20년지기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를 X라고 치겠습니다. 초, 중, 고를 같은 학교를 나왔습니다. 얜 그래도(저보다는) 공부를 제법 하는 편이었어요. 단국대였나 아니면 건국대였나, 하여튼 서울의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갔습니다. 학과는 경제학과였어요.
경제학과는 그렇게 비전이 좋다고는 볼 수 없는 학과라고 생각했어요. 성적도 썩 나쁘지 않은데 뭔가 자격증 같은걸 주는 학과나 아니면 조금 낮춰서 경기권의 교육학과를 쓰면 어떨까 하고 얘기도 많이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때부터 공무원을 노리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4년동안 공부를 해서 5급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하더군요. 썩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획대로 된다면 우왕 조으다 수준이죠. 그거 참 좋다고, 너 공무원 되면 나 운전수로 써줘 그때까지 운전 배워놓을게 깔깔 같은 얘기를 하면서 놀았었습니다.
그 친구가 먼저 현역으로 군대를 갔습니다. 1년 뒤에 저는 공익으로 군대를 갔지요. 그리고 둘 다 제대했을 무렵에 그 친구의 목표가 7급이 됐어요. 영어성적이 도통 오르질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쯤에 저는 L모 백화점에 입사를 했고요. 업무시간이 길긴 하지만 피곤한건 바쁠때만이고, 여유로울때는 또 한없이 여유로운 것이 근무조건이 좋은 것 같아서 그 친구에게 너도 한번 지원을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친구는 거절했어요. 백화점쪽 일을 할 생각이 없기도 했고, 공무원 시험을 보는 친구들은 또 그런 징크스가 있다면서요? 시험 준비하면서 알바나 일을 하면 절대로 안된다고요. 그런게 있다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대신에 제가 먼저 입사를 했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뷔페에서 밥을 쏘고 다음엔 니가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밥을 쏘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또 2, 3년이 지났습니다. 그 친구의 목표는 9급 공무원이 됐어요. 주기적으로 시험이 있을때마다 지원은 계속 하고있고요. 하지만 좋은 소식이 들려오질 않네요. 그래. 그럴때도 있는거지. 나중에 합격하겠지. 대기만성이라는 좋은 말도 있고. 예전에 허생은 한참 공부만 하다가 마누라 등쌀에 바깥으로 나갔다가 대박터졌잖아? 오예 X허생! X허생! 최대한 응원해주려고 부정적인 말은 아예 꺼내지 않고 좋은 말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친구는 30대가 되었어요. 얼마전에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이번년도에 한번 더 시험이 남아있는데, 집안에선 그것도 떨어지면 그냥 취직을 하라고 하는 압박이 심한 모양입니다. 10년 넘게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려왔으니까요. 뭐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얼마전에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고기를 흡입! 하는데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이게 한 사오년 하다가 포기했으면 모르겠는데 지금 와선 너무 시간을 쏟아부어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고요. 도가 되든 뭐가 되던간에 계속해서, 부모님이 지원을 끊으시면 스스로 벌어서라도 계속해서 공무원 시험에 지원을 하겠다고요.
음, 저는 경험삼아서라도 취직활동을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꼭 취직을 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공부만 하면 질릴 것이고. 일종의 기분전환으로 그동안 하지 않은 일을 해보는게 어떨까 하고 생각한거죠. 그러는 김에 취직이 되면 그것도 좋은거고요. 그래서 그 생각을 얘기를 할까 하는데 갑자기 목이 탁 막힌 기분이랄까, 말을 꺼낼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그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얘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겠죠. 애가 머리도 산발이 됐고 얼굴이 삐쩍 말라서 고기를 굽는데 뭔가 귀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한마디를 해줄까 생각하다가 일단 그날은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집에 와서 어머니랑 대화를 하다가 이 얘기가 나왔어요. 어머니는 절대로 그런 말은 꺼내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그런 사소한게 사람한테 한을 쌓이게 한다고, 어차피 네가 말한다고 해서 그 애가 들을 것 같냐고 애초에 그런 말을 아예 안하는게 나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그 얘길 듣고 보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말을 꺼내는거지만 듣는 애 입장에선 쓸데없는 간섭이겠죠. 그런데 또 친구고 오래 사귄 관계다 보니까 도와주고 싶기도 하네요.
며칠 후에 다시 그 친구를 만나게 될것같아요. 그 친구한테 취직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경험일 것 같은데 한번 해보지 그래? 하고 말을 하는게 나을까요 아니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잘될테니까 걱정하지마. 화이팅 하고 응원을 해주는 게 나을까요? 참 인간관계라는게 쉬운게 아니네요 ㅠ
- 5.45Kbytes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
치질경
- 회원등급 : 정회원(징계중) / Level 3
포인트 0
경험치 349
[레벨 3] - 진행률
17%
가입일 :
2007-05-21 14:15:02 (6452일째)
「귀여운 저하고」「TRPG!」「하셔요♪」
최신글이 없습니다.
최신글이 없습니다.
전체 103 건 - 2 페이지
제목 | 글쓴이 | 날짜 | 뷰 | 추천 | |
---|---|---|---|---|---|
치질경 2,551 0 2015.10.04 | |||||
치질경 3,556 0 2015.09.29 | |||||
치질경 2,168 0 2015.09.22 | |||||
치질경 6,584 0 2015.09.21 | |||||
치질경 2,998 0 2015.09.20 | |||||
치질경 2,465 0 2015.09.18 | |||||
치질경 2,962 0 2015.09.17 | |||||
치질경 4,316 0 2015.09.16 | |||||
치질경 2,890 0 2015.09.15 | |||||
치질경 2,912 0 2015.09.13 | |||||
치질경 2,281 0 2015.09.12 | |||||
치질경 2,566 0 2015.09.09 | |||||
치질경 3,295 0 2015.09.06 | |||||
치질경 2,255 0 2015.09.04 | |||||
치질경 2,290 0 2015.09.04 |
댓글목록 27
1억년지난어헛님의 댓글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po갱년기wer님의 댓글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po갱년기wer님의 댓글의 댓글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Vermeer님의 댓글
<div>윗분도 말했지만 그정도 상황이면 그런소리 안들 수가 없는 입장이라 </div>
<div>친구까지 그런소릴 하면 정줄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div>
<div><br /></div>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저공탄님의 댓글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Leticia님의 댓글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Leticia님의 댓글의 댓글
<div><br /></div>
<div>정말 저정도로 몰아졌을땐 괜히 신경써주는거보단 그냥 아무생각없이 놀아주는게 기분편해짐..<img src="/cheditor5/icons/em/em39.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div>
palatine님의 댓글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StandardO님의 댓글
<div><div>놀아주신다 해도 여행같은 건 부담이 될 겁니다. 자기가 지금 여행 갈 때가 아닌데 하고 말이죠.</div>
<div>여행을 가시려거든 그 분 가족에게 얘가 상태가 이런데 부담을 풀어주고자 여행이라도 같이 다녀오고 싶다고 상담을 해서 가족들이 먼저 권하게 하세요. 그런 식이 아니면 가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간다 해도 제대로 기분 전환도 안되고요. 그 부분은 친구가 아닌 가족이 떠밀어 줘야 합니다.</div>
<div>그리고 갈거면 국내보다는 해외가 낫습니다. 기분 전환이라면 말이죠.</div></div>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혼백요몽님의 댓글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Croite님의 댓글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질풍백님의 댓글
어떤 결정을 하든 들인 시간 아까워서 계속한다는 마음가짐만 버리면 좋겠네요...
그래도 계속한다면 어쩔수 없지만...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유운풍님의 댓글
아니면 요즘 일 혹은 공무원 시험때문에 힘들지? 라는 정도로만 대해주거나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
리테넌트님의 댓글
치질경님의 댓글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