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인간의 능력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됩니다.
2015.12.19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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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으로 빠지는건 무리일테니 당시 카투사 커트라인 넘으려고 토익 준비를 하고 있었죠. 생체 처음으로 스스로 학원 찾아보고, 시험 위주의 학원을 다녔습니다.솔직히 말하자면 집에서 쫒겨나기 싫었습니다... 학원 찾아보기 전날 배째니까 진짜 쫒아낼 모습이더군요.
그런데 제가 학원 수업과정 중에서 가장 덜 다니고 가장 숙제가 없어보이는 것(한달 10일 수업. 750+목표.)을 선택한 이후 복습은 커녕 공부를 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질 않으니 아빠가 의욕증진 겸 제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실 생각으로 내기를 걸었습니다.
600점: 학원비 토해내.
850점: 10만원
900점: 1000만웜
990점(만점): 집 한채.
이렇게 올라갈수록 터무니없어지는 포상금 상승률을 보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학원에서 시험 3주일 전에 치룬 모의고사에서 카투사를 지원할 자격이 되는 780점은 커녕 680점(플러스 마이너스 25점) 정도가 나왔거든요. 물론 토익 점수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적 절대평가(?)같은 것이라 당시 모의고사를 친 학원생만 따지면 785점이 나옵니다.
저는 제 모의점수를 보고 아 이거 망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투사 가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어서 책을 피기를 사흘, 저는 노트북을 키고 마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명은 덤이고요. 솔직히 신데레이디 보느라 정신없었습니다. 히어로 메이커도 봤고요. 아, 설정+자캐덕질도 했지.
그리고 시험날이 다가왔습니다. 모의고사에서 죽을 쒀서 좀 불안했지만 최선을 다하자는 일념 하에 거의 오랜만에 버닝 상태로 돌입했고, 모의고사보다 더 잘 본 기분으로 끝마쳤습니다. 뭐, 모의고사때는 마지막 지문에서 4문제(20점 분량)를 찍어버린 탓에 찜찜한 기분이 있었지만요.
다른 시험도 이런지 모르겠으나, 거의 보름이 지나서야 점수가 발표가 나더군요. 기다리느라 똥줄 타는 줄 알았습니다. 혹시 모르게 재등록한 학원의 반액 환불기한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만일 환불이 되지 않으면 저는 꼼짝없이 남은 기간을 다녀야합니다. 시간낭비죠.
물론 시간낭비라는 말은 제가 780점을 넘은 상태여야 합니다...
시험 점수가 발표된 날은 환불기한의 딱 하루 전날. 손가락으로 럭키 핑거(검지와 중지를 크로스)를 한 채로 토익 사이트에 들어가 점수를 확인하자....
15점 모자랐습니다. 더도 말고 더도 말고 딱 1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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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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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 465, RC 420점의 아주 아까운 점수를 받은거죠.
엄마한테 슬픈 표정으로 15점 모자란다고 전화로 전하자, 엄마는 예상했다면서 다음에 잘해보자고 저를 다독였습니다. 나중에 같이 있었던 동생에게 들어보니 공부 저렇게 안하면 765점 맞아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고 장시간 설교했다더군요. 물론 집에 돌아와서 제 점수를 확인하자마자 저에게 제가 자식교육 다 망친다고 합니다. 무언가 이루려면 노력 우정 열혈의 3박자가 있어야 한다 하시네요.
다음날 곧장 수업 시작하기 직전에 학원에 가서 반액환불받았습니다. 환불 사유에는 당당하게 "885점 맞음"이라 적었죠.
그런데 며칠 후 아빠가 저에게 계속해서 시험 한번 더 보라고 하십니다. 내기의 조건도 바꾸고요. 이 내기가 지속되는 시간은 내년 4월까지고, 4월이 끝나면 950점을 맞아야 1000만원을 주신다 합니다.
저는 당연히 OK. 어차피 시험은 더 보지 않을테니까요.
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11월 말에 있는 시험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분명 저번 시험에는 잘 들렸던 LC 파트 2의 몇 문제가 제 귀에 잘 들리지 않은데다가, 파트 3에서 어렴풋이 놓친 감이 있는 문제가 3문제 정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RC는 마지막에 시간배분 실수해서 4문제를 2번으로 찍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빠는 예상 점수를 820점으로 잡았습니다. 저는 850점을 점쳤죠. 뭐, 어느 쪽이던 1월에 학원을 다시 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신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서 구석에 쳐박아뒀던 토익책을 다시 꺼내서 가방 안에 넣을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18일 15시에 접수 발표가 났습니다. 본인확인을 한 후 엔터를 치기 전, 눈을 3초 정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 눈에 보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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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증명사진 옆에 떡하니 붙어있는 915라는 기적의 단어......
What the FxxK??????
저 점수를 보는 순간에 저는 혼자 있는 집이 떠내려갈 정도로 비명을 질렀습니다. 목이 아프군요.
더 놀라운 사실은 LC 만점에 RC 420점으로 오히려 오른 셈입니다?!
아, 물론 이번엔 75점 부족하다고 거짓말을 먼저 하는 바람에 얼굴관리 안 되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아빠는 당연히 눈치 채셨지만 말이죠. 칫.
이제 1000만원을 손에 넣었으니 영어하고 영원히 작별입니다. Adiós, Inglés! 그런데 엄마가 저보고 왜 학창시절땐 이렇게 공부를 안 했냐면서 한 소리를 하십니다. 설마 재수학원 보내려는 것 아니겠지...
PS: 퍼시 잭슨과 고양이 전사들,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 스타게이트 시리즈에 무한한 감사를. 특히 퍼시 잭슨 시리즈의 릭 라이어던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PS2: 거의 7년간의 미국 서브컬쳐 덕질은 자동적으로 영어 실력을 키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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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6
NBacon님의 댓글
<div><br /></div>
<div>저 같은 경우 평소 사고 싶었지만 세일까지 기다리던 스팀 게임을 세일 없이 산다는 사치를 부리고 나머지는 통장에 박아놓고 식비로 쓸 것 같군요. 저게 몇달치여...<img style="margin: 1px 4px; width: 50px; height: 50px; vertical-align: middle" alt="" src="/cheditor5/icons/em/em6.gif" border="0" /></div>
뷰너맨님의 댓글
미류님의 댓글
오야야경님의 댓글
<div>내기에서 이기셨군요. 1000만원 Get! 이라니;; 왠지 잘 사시...</div>
필라멘트님의 댓글
Wimps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