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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와 조정대신들이 원균을 쓸만하다고 평가한 이유?

본문

사실 선조는 생각보다 무능한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선조 때 인재풀은 세종 시절 정도를 제외하면 비견할 이가 없을만큼 화려했고 이순신을 초고속 승진시키기도 했죠. 전체적으로 유능한 인물들을 못 믿고 쉽게 갈아치웠지만 바꿀 때도 능력을 나름 보고 그럴싸한 인물을 대체품으로 삼았습니다. 덕분에 왕권을 유지하면서 국가 체제를 크게 흔들지 않았죠. 물론 장기적으로는 위험 요소가 크지만 이건 좀 다른 얘기고....


다만 전설로 남은 최악의 인사실패인 원균이 문제였는데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립과 이일도 나름 실패였지만 선조 입장에서 이런저런 변명할 여지가 없지는 않은데 원균은 최악이었죠. 그런데 원균을 임명할 때 보면 선조만이 아니고 당시 조정대신들, 심지어 원균과 업무상 관계까지 있던 이원익까지 원균을 평시에는 못쓰지만 전시에는 쓸 장수로 취급했습니다. 삼도수군 내에서는 일개 병졸들까지 혐오할 정도로 평판이 땅에 떨어졌지만 중앙 정부에서는 꽤 고평가를 받고 있던 셈이죠.



왜 그랬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논의 되었지만 문득 든 생각.



보고서만 보면 어떨까?



예, 이순신과 원균 모두 전투를 치르고 보고서를 보냈겠지요. 원균은 연명상소로 묻어가려다 실패했으니 더더욱 자기 PR에 열심이었을겁니다.



그리고 나라 꼴인 개판 오분 전, 아니 개판인 상황에서 아무래도 지방의 장수를 파악하는 건 보고서 밖에 없겠죠. 직접 만나려고 해도 너무 멀고 장수가 함부로 비우기도 그렇고요.



그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정부에서 보고서를 받았을때 상황을 한 번 생각해보면



장수 A : 제가 장수 B랑 함께 싸웠는데 적의 3~4할 정도를 제가 섬멸하고 적군의 목을 많이 벴습니다! 이건 그 증거품입니다.+증거품인 수급 첨부.

장수 B : 장수 A랑 함께 싸웠는데 제가 9할 넘게 혼자 다 잡았고, 장수 A는 하나도 도움 안됐고 방해만 했어요. 싸우다 바빠서 증거품은 없습니다. 이상.



네,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야 이순신이 전부 옳은 말 한게 보이죠. 하지만 이게 이순신과 원균이 아닌 장수 A, B의 보고서라면? 과연 받는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 더 신뢰가 갈까요?



아마, 조정 대신들과 선조 눈에 이순신은 좀 잘 싸우지만 질투심 심하고 허풍 떠는 녀석이라는 이미지였을지도.....



물론 그 결과는.....(이래서 현장의 상황을 아는게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왠지 그럴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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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5

사나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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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대단한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만한 일이군요<img src="/cheditor5/icons/em/em34.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

아키하모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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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도 다른 왕 평균수명보다 조금만 더 산 정도였다면 임진왜란 전에 내치 잘 했던 왕으로 기록됐을텐데 너무 오래 살았던 것도 문제가 된거니...(...)<br />아이러니 한 일이 많죠<br />

어두운달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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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기축옥사를 보면 알겠지만 내치를 잘했다고는 좀...선조의 왕권 강화를 위해 발생한 정치적 혼란(기축옥사 같은 것들) 때문에

<div>온전히 외교와 국방에 힘을 쓸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div>

Tachicoma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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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때 개막장 상태로 간 조선을 정상화 시킨게 선조입니다만...

나이트해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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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치 잘한것 맞습니다. 명종시기 조선의 내치는 파면 팔수록 정부 시스템 와해가 크고 국가에 대한 일체감이 와해되어 가는 기미가 거의 세도정치 초창기 레벨까지 가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안좋아지고 있었는데 선조가 들어서고 20년 지난 뒤엔 임란이라는 미증유의 대전란 속에서도 버텨내는 국가 체제, 그리고 조선이란 국가에 대한 일체감을 유지하는 사회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그만큼 회복된 겁니다.

<div><br /></div>

<div>인터넷상에서 떠드는 기축옥사는 솔직히 과장된 경향이 크며, 정작 중요한 사회 시스템의 복원이란 측면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전형적인 '인터넷 역사관' 입니다. 이도의 용사일기를 보면 기축옥사로 인해 피해가 컸다는 지역에서도 조선이란 국가 자체에 대해 부정하고 이것의 존속은 자신과는 별개라 여기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이 고을에서 누구누구가 죽었고 누구누구가 그때문에 낙향했고...' 하는 게 언급되는 지역에서도 말이죠.&nbsp;</div>

어두운달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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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사회 시스템의 복원이라...역사쪽으로는 아무래도 얕고 넓게 파고들 수 밖에 없으니 전공적인 영역까지는 잘 몰라서 잘못판단 했습니다. 생각외로 선조가 내치는 잘 다스린 모양입니다.

으와하르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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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실 국정농단으로 수도권(?) 인근인 구월산에까지 천 단위 화적떼가 설치게 된 것이 바로 명종대죠.&nbsp;

<div><br /></div>

<div>최순실이 아무리 x라고 해도 사람들 굶어죽는 거 무시하고 밥 지어 물고기 먹이며 부처님께 공덕 쌓는 미친짓은 안했고...&nbsp;</div>

<div><br /></div>

<div>그거 회복시켜 역대급 대전란을 7년 겪고도 견딜 국가 체력을 만들어 낸 게 선조의 업적인건 맞습니다.&nbsp;</div>

<div><br /></div>

어두운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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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그것보단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키운게 아닐까요? 이순신 장군이 단지 전쟁만 잘한게 아니라

<div>보급과 행정도 재정비하고 민심까지 이순신 편인지라 정부 입장에선 반역을 생각 안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그렇게 반역해서 세워진게 조선이라...)</div>

사나에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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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당시 조선은 딱 200년, 나라가 휘청이거나 망한다면 이 시기! 라고 할만한 교두보에 있었고 말이죠

<div><br /></div>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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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순신 견제용으로 왜 원균이라는 머저리를 골랐냐가 의문이었습니다.

<div><br /></div>

<div>아무리 똑똑한 군인이 싫어도 당장 수군이 무너지면 자기 왕좌가 날아가는데 자충수를 둘 정도로 선조가 머리가 안 돌아가는 군주는 아니라고 봤거든요.</div>

어두운달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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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원균과 이순신에 대한 평가가 당시 객관적일 수 있을까부터 살펴봐야겠지요. 아무래도 동서로 갈라져 싸우던 정치권에서 원균은 서인세력(윤두수, 윤근수 형제 등)의 비호를 받고 커진 경우입니다. 반면 이순신은 변방을 돌아다니며 능력을 증명해 승진하던 케이스였죠. 즉 현대로 치면 원균은 새누리당의 2~3선 의원들과 친분이 있는 해군 사령관, 이순신은 정치세력과 연관이 없는 해군 사령관으로 대입해보면 당시 이순신의 자리에 왜 원균을 집어넣었냐가 나름 납득할 수 있습니다. 즉 전쟁수행능력보다는 중앙정부의 말을 잘 들을것 같은 인물을 집어넣은 거죠,<u> 문제는 그 집어넣은 인물이 나라를 말아먹을 정도로 무능력했다는 사실입니다.</u>

검은불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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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도 원균을 넣은 이유가 능력보다는 정치적인 관점에 더 가깝다는 건 동의합니다.

<div><br /></div>

<div>그런데 제가 계속 말하는건 선조와 조정대신들이 원균의 무능함에 대해서 치명적인 오판을 한 이유입니다.</div>

<div><br /></div>

<div>나라가 말아먹히며 중앙정부고 인맥이고 뭐고 안 남는데 선조가 자충수를 뒀다면 최소한 원균을 중간 쯤은 되는 장수로 오인했다는 거죠.</div>

<div><br /></div>

<div>그런데 당시 시점에서 원균의 전과는 이순신과 이억기가 쓸어 버린 후의 떡고물 주워먹은 거에 불과했거든요.</div>

<div><br /></div>

<div>그래서 희대의 졸장이자 머저리를 쓸만한, 혹은 범용한 장수로 생각하고 정치적 판단으로 지지한 이유가 뭔지 고민한게 본문인겁니다.</div>

i양산형i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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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심지어 원균 부하들까지 이순신을 지지했거든요

<div>이순신에 대놓고 대항하던 놈이 원균뿐....</div>

호에~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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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원균이 서인계파인건 맞지만&nbsp; 이순신도&nbsp; 빽이 없냐면 그건 아니어서요.&nbsp; 이순신 적극 천거한 사람이 서애 유성룡이라..<br /><br />거물입니다 저사람.

으와하르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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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원균인겁니다. 이산해 유성룡을 밀어서 국정을 주도하게 한 동인 진영에 국가 제1의 무력을 가진 삼도수군통제사까지 동인이었으니까요. 정철을 밀어 동인을 풀베듯 베어내고, 이산해를 밀어 그 정철을 쳐내고 다시 동인에게 권력을 주던 선조의 정치방식을 생각하면 저건 당연한 거죠. 동인 중 쓸만한 장수 -&gt; 서인 중 쓸만한 장수. 라는 인식이었으니.&nbsp;

<div><br /></div>

<div>...문제는 글쓴 분 말씀대로 '쓸만한 장수'라는 평가가 무척이나 심각하게 잘못된 것인데, 사실 그거 밀어준 윤두수가 무능한 인사 혹은 간신이냐 하면 그게 또 아니어서 말이죠.&nbsp;</div>

독화선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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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뭐....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지금에서야 전부 알고 판단하니 그렇지만, 그당시에 판단재료로는....<br />미담인 일화들도 그시절 다른사람의 시점에서보면, 연신 낙방하다 30세다되어서 가까스로 합격, 상사와의 불화등이니까요...</p>

기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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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은 수급=인원이 최중요 요소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의 전략적, 전술적 식견을 가지기는 힘들고 또 꽤 앞서나간 사고방식이기도 했으니...

티이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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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생각보다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조선도 시스템이 그렇게 맛간 거 아니었고요.. 이순신과 원균이 갈등을 빚자 조정의 처리는 원균의 보직이동이었습니다. 원균의 일처리는 이동된 임지에서도 막장이었고요..



그냥 선조가 왜 수군을 얕잡아본 등신이었던 거고 원균은 더 무능력한 것이었습니다

schwart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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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정치에 능력치를 몰빵해서 그렇지 머리가 안돌아가는게 아닌데 반골 기질이 넘처보이는 이순신장군 견제한다고 무능한 사람을 안치려고 하진 않았겠죠(원균이 수첩공주님처럼 실제 상상 초월 무능이었지)

으와하르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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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와닿는 비유네요.&nbsp;

<div><br /></div>

<div>설마하니 수첩공주님이 그 수준일지 몰랐다</div>

<div>설마하니 브렉시트가 통과될 줄은 몰랐다</div>

<div>설마하니 트럼프가 뽑힐 줄은 몰랐다&nbsp;</div>

<div><br /></div>

<div>...이거 2016년에도 비슷한 일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네요?&nbsp;</div>

Tachicom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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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공적에 묻어가서 얻은 공적이 많았고 통제사 되기전에는 강경론을 펼쳤던 양반이라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던 중앙정부 마음에 들어서 그런거 아닐까 합니다.

Luthien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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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도 제해권은 확고히 잡았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충무공 숙청을 시도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레니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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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선조는 개전후 경상도 수군이 날아가자(날린 놈이 원균인 건 넘어가고) 전라도를 비롯한 수군을 통째로 육군에 합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br />선조 입장에선 당장 전체적인 국면을 봐서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확실히 이기며 적의 세력을 깎아나가는 이순신 보다는<br />비록 아군의 피해가 크더라도 돌격해서 적을 썰어대는 원균을 더 선호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타입이 많을수록 당장 선조가 더 안전해지기 때문입니다.<br />물론 원균이 진짜 맹장이라 아군 피해를 좀 보더라도 적군에게 더욱 피해를 주면서 적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테지만 현실은...<br /><br />아무튼, 선조가 왜 후자를 더 선호하냐면 전자의 경우 확실히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싸우지 않기에 <br />적의 세력을 줄이는 속도가 느리고, 적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br />선조는 당장 자기 턱밑까지 왜군이 쫒아온 상황이기에, 자기 대신에 왜군의 눈을 끌어당겨 자신에게로 오는 위해를 줄여주는 것을 매우 바라고 있었을 겁니다.<br />수군을 없애서 육군을 보충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방향에서 생각하면 납득이 가죠. <br />왜냐면 수군이 이긴다고 당장 턱밑까지 다가온 적 육군이 수군 때려부수러 다시 돌아가진 않을 테니까요. 오히려 선조에게 더욱 맹공을 가하면 가했지.<br /><br />즉 선조는 전체적인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며 적을 꾸준히 소모시키는 이순신 보다는 <br />당장 자신에게 닥쳐올 위협을 줄여줄 수 있는 원균을 택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br />그리고 그랬기에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후 나가서 싸우려 하지 않자 권율이 장을 치고 나가서 싸우라고 재촉했겠죠. <br />선조 입장에선 저놈이 시선을 끌어서 내가 더 안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바뀌니까 아예 집안에 틀어박혀서 나가려고도 하지 않으니까 기가 막히는 겁니다. <br />물론 그 결과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br /><br />

으와하르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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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적합한 가정은 아니어 보입니다.&nbsp;

<div>임진년 초에 선조가 의주까지 도망가지만 이미 계사년 초에 왜군은 남쪽으로 밀려 내려갔고 당해에 선조 역시 한양에 환도했습니다. 그 임란 초기 시기에는 선조에게도 이순신은 가끔씩 승수 챙겨주는 이뻐죽는 신하였지, 원균과의 교체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가 원균이 오히려 잘려 충청병사로 밀려나는 결과로 나왔고요.</div>

<div><br /></div>

<div>그리고 정유재란 당시 또 왜군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것은 그 이순신 자르고 원균이 다 말아먹은 결과이므로 말씀하신 가정과는 크게 관계가 없어보입니다&nbsp;</div>

에레니아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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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나 줄줄이 적었지만 적어놓고 보니 역시 뭔가 어긋난데다가 안 맞는곳이 있군요.<br />특히 시점이 엉망진창이라서 원인과 결과가 뒤죽박죽인 글이 된 것 같습니다.<br />역시 새벽의 텐션은 무섭...!<br />

나이트해머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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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 해체론이 나온건 임진왜란 전 신립의 건의고, 원균이 이순신과 동급의 신뢰라도 받기 시작한 건 계사년 이후입니다. 둘의 충돌이 나타났던 임진~계사년 시기 선조는 이순신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입니다. 계사년 후 정유년까지 3년여간 일본은 부산포에만 수천 정도 올려놓고 강화협상으로 시간 떼웠고 군사적 충돌은 거의 없었습니다.

에레니아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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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댓글에도 적었지만 아무래도 새벽이라 그런지 기억이 뒤죽박죽에다가 텐션이 이상해져서 뻘글을 쓴 것 같습니다!<br />

Tachicom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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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런 경우는 역사에서 은근 흔하죠. 그 유명한 마속도 있고.

네잎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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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설득력 있다!?<img src="/cheditor5/icons/em/em2.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

Lyudmil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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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충무공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을겁니다. 심지어 왜적(일본)에 의해 망해갈때 이름을 날린 장수라는 점에서....태조 이성계가 어떻게 고려를 밀어버리고 왕이 되었는지를 감안해야하죠.

<div><br /></div>

<div>총체적 국난 -&gt; 왕실과 조정이 민심을 잃음 -&gt; 민심과 화려한 전공을 두루 갖추고 인품도 훌륭한 장수의 출현 -&gt; 사실상 국가를 강제캐리하는 수준으로 칭송되다가 간판을 바꾸고 왕이 됨.</div>

<div><br /></div>

<div>이 테크 탄게 다름아닌 태조인데다가, 그 태조가 왕을 시해했다고 쓰여있던 명나라 기록들을 수정하려고 미친듯이 노력한 끝에 이뤄낸 것이 종계변무고 그게 선조의 자랑거리기도 했으니 오죽했을까요.</div>

나코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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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분들처럼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거의 공통적인 거라면

<div><br /></div>

<div>선조는 전쟁만 본게 아니라 전쟁 이후의 자신의 왕권까지도 생각했다는거죠.</div>

<div><br /></div>

<div>유성룡이나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한 원균이였으니까요.</div>

<div><br /></div>

<div><br /></div>

아우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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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욕먹는 건 파천한 뒤에 책임은 안지고 명나라에 망명할려고 했던 거나

<div><br /></div>

<div>아무 공훈도 없는 자들에게 공신책봉을 남발한거====특히 수군을 말아먹고 탈영해서 행방불명인 된 원균을 다 반대하는데 자기 고집으로</div>

<div><br /></div>

<div>충무공과 같은 반열에 올린거는 진짜 이해가 안가죠.</div>

<div><br /></div>

<div>그 탓에 현재에도 원균명장론으로 설치는 원균 후손들...</div>

MrCan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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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없고 해석만이 존재한다고 할 수 밖에 없죠.

<div><br /></div>

<div>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임금 이연은 참 자기 중심적인 작자였다고만 봅니다.</div>

<div>왕권에만 집착해서, 이순신은 필요하지만 그와 반대급부로 아주 무능한 놈으로 집어들었던게 원균이었고 말이죠.</div>

<div>(명량해전 이후 김억추의 행보를 감안하면, 옵저버같은 사람들을 띄운것 같단 말이죠...)</div>

지어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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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원균을 밀어준건 아마 이순신의 견재가 주목적이었을 겁니다. 딱 이순신 견재만 목표로 하면 원균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인재였거든요. 이순신과 원균이 사이가 나쁜 건 당시 선조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br /><br />더구나 이순신에서 원균으로 삼도수군통제사가 교체됐을 때는 조선 수군이 충분히 재해권을 장악한 다음이었죠. 즉 이순신은 이미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 선조가 토사구팽을 한 겁니다. '원균이 평균정도만 해도 이제 바다에서 밀릴 일은 없다'라는게 아마 선조의 생각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선조가 이순신과 원균 중 어느 쪽을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는지는 아직 선조가 이순신을 견재하기 전에 두 사람을 대한 것만 봐도 딱 답이 나옵니다.<br />문제는 원균이 평균도 못돼는 인물 이었다는 거죠.<br /><br />결국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인물을 그래도 평균은 되는 인물로 생각한게 선조의 오판인 겁니다. <br />사실 사람이 아무리 인재보는 눈이 뛰어나도 모든 인선에서 성공할 수는 없는데 원균은 그 한번의 오판이 대박을 친 경우죠.<br /><br />사실 선조는 무능과 유능으로 구분하자면 유능한 쪽에 속한 인물이라고 봅니다.<br />내치도 잘했고, 인재보는 눈도 뛰어났고, 왜의 침입도 미리 예상하고 대비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능한 인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가지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 단점 하나가 다른 모든 장점을 잡아먹었다는거죠.<br />

에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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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음 일단 선조의 경우 정통성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떨어지는 방계출신왕입니다. 더구나 왕위를 이어받은 시기는 명종 사후. 즉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계상황이나, 경제상황이 시궁창의 밑바닥인 상황이었죠. 그야말로 왕보다 신하의&nbsp;힘이 더 강력한 시기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당시의 인식상 사림출신이 주가 된 신하, 유생들은 조선의 왕을 찬탈자 출신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했고, 제도자체도 왕을 신하가 견제하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그 찬탈자 출신 왕이 적통이면 문제가 안되는데... 선조는? 왕의 자식도 아니요, 방계출신 한미한 왕족이 왕이 된 케이스... 그야말로 선조는 왕권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신하들을 적당히 견제하고 동인의 세력이 세지면 동인을 견제하고, 서인의 세력이 세지면 서인을 견제하는... 붕당정책이라고 하면 정말 무능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선조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게 자기 자식한테 까지 못되게 굴어서 문제였던거고... 그런 시궁창적인 정국에서 나름대로 나라를 잘 굴려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임진왜란이 터진거죠.&nbsp;<br /><br />&nbsp;그런상황에서 자기가 내려보낸 장수들이 죄다 얻어터지고, 자기는 수도도 버리고 상국이라지만 타국에 망명하냐마냐 이러는 찰나에, 국가적 히어로인. 제너럴 갓 충무공 이 '빠밤!'하고 등장한 겁니다. 불안할 수 밖에 없죠. 더구나 왕명을 내려도 전장의 장수는 왕명이 전장상황에 어긋나면 따를 수 없다며, 시킨 걸 제대로 하지않는 상황... 그런데 민심도 그친구한테 쏠려있고, 실적도 좋고, 심지어 군권까지... (자기는 백성들이 나라버린왕이라고 하는 판국에...) 불안할 수 밖에 없죠. <br /><br />&nbsp;무능한 왕이라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고 이미 나라멸망상황이었을 테고, 만약 여기까지 버텼어도, 충무공을 반역죄로 엮어 쳐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만 나름 보는눈이 있어서 '우리가 보낸 대타가 똥망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으로 백의종군시킵니다.<br />&nbsp;그리고 내려보낸 대타는 원균... 원균이 수전에는 정말 무능하고, 쓸모없는 오히려 마이너스적인 장군인 것은 확실합니다만. 그래도 나름 육전에서는 전과도 존재하고, 무엇보다 이 친구는 윗분들이 말씀하셨다시피, 정치장교입니다. 서인계통이죠, 이순신은 딱히 당파적 성향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동인쪽이 옹호하는 장교였고... 당시 정국은 동인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동인에 너무 많은 권력을 쥐어주면 자신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 서인쪽 정치장교 (그나마 자기 말 잘들을 가능성이 높은) 원균을 보낸거죠.&nbsp; 특히 당시 수군은 정말 대우가 안좋았고, 북방에서 육군 장군노릇하다 아래쪽 왜구 격퇴하기도 하는 등 전공이란게 없다시피 한 상황이니, (제너럴 충무갓도 북방에서 육군노릇 하다, 수군 맡은 경험은 없으니까요), 이놈을 육군에서 잘했으니 수군내려가도&nbsp;어느정도 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내려보낸거죠. 물론 전공의 차이는 컸습니다... 육전 수전 다잘하는 충무공이 사기인 셈이랄까요.&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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