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타입문넷

자유게시판

[역사]고려 말 요동 상황(1)고려:요동은 우리 땅!

본문


정사일. 도평의사사(使)에서 동녕부()로 다음과 같은 공문을 보냈다.

“기샤인테무르[]119)는 자기 아비가 반란 음모를 꾸미다가 처형당한 후 본국에 대해 깊은 앙심을 품고서 늘 반역을 획책해 왔다. 근자에 원나라 황제가 북쪽으로 피난했는데도 호종하려 하지 않고 동녕부와 요동 등지로 몸을 숨긴 채 분성()과 분원()의 관료들과 결탁했으니 그 속셈은 황제의 위세를 빌리자는 데 있는 것이다. 황제가 별세했어도 그 부음조차 알리지 않고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만을 채우려 했으니 이것이 어찌 공의()를 고려한 행동이겠는가?
또한 요심()(요동) 지역은 애초 본국의 옛 영토였으나 원나라를 섬기게 된 이후 장인과 사위의 관계를 맺는 바람에 행성()의 관할로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샤인테무르[]가 이 지역을 점거해 자신의 소굴로 삼고서 위로는 원나라 조정에 충성을 바치지 않고 아래로는 본국에 공연한 사단을 일으켰기 때문에 지난 해에 군대를 파견해 그를 뒤쫓아 습격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간악한 술책을 부리는 통에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데도 그는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다시 전과 같은 흉계를 꾸몄다. 이에 다시 군대를 동원해 죄를 징치하려 했는데 놈이 악에 받쳐 있는 힘을 다해 격렬히 항거해 오기에 사세가 부득이하여 마침내 진격해 격파했던 것이다. 정작 당사자는 도주해 버려 아직 체포하지 못하고 있다. 그 자가 이처럼 자신의 근본을 잊고 자꾸만 사단을 일으키니 성()과 원()의 관리()들이 장차 그 때문에 과오를 범할까 우려되는 바이다.
악행을 없애려면 그 뿌리를 뽑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기에 우리가 부득이 군대를 동원했던 것이며 그 때 일은 다만 기샤인테무르 한 사람만을 체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몽고인과 한인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니 그 자가 만약 포위망을 빠져나가 그 지역에 있으면 즉시 체포해 압송하기 바란다.”

공민왕 19년(1370) 경술년

요심은 원래 우리나라 땅으로, 대군이 또 출정하면 선량한 사람까지 피해를 입을까 우려된다. 압록강을 건너와 우리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자는 관청에서 양식과 종자를 주어 저마다 생업에 안착하게 해 주겠다.”



공민왕 19년(1370) 경술년




주원장이 중원에서 원을 몰아낸 이후 고려가 가장 먼저 한것이 요하 이동 지역은 고려 땅이라는 선포였습니다.

고려도 바보가 아닌지라 명이 요동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원나라가 북원으로 되자마자 한발앞서 침을 바른거죠.

제딴에는 요동에는 고려인도 많고 고려 영향력도 강한데다가 인식도 고려 땅에 요동 군벌들도 명보다는 고려에 우호적인지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거죠.

실제 심왕제도 부터 고려인이 관리 하고 옛 고구려의 땅이기도 한지라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할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명도 당시엔 요동보다는 중원 내부의 문제와 몽골 땅에 있는 북원을 직공하는 것에 신경을 썼던지라 요동은 경계정도에서 멈춰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고려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이기도 한거죠.


3d8e95e0ff6b651e4b23f69be70d3ccb4d99a5f0f21d90bfe498bf84eeae3b7b05160e96c313cf1ec13854a21efb7191395f57873103842b62ee829b87e79f011676f301421b16286683ea948236cbbf.jpg

 


이 때문에 고려가 1370년 요동 원정을 감행하고 당시 요동에서 세력을 가진 군벌들(이중에는 나하추도 포함.)에게 투항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동 군벌들이 명보다는 고려에 우호적이긴 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세력을 지키기 위해 명을 견제하기 위해 고려에게 우호적인거라 고려의 땅이 되는 걸 반기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고려가 요동 땅을 먹으려고 하자 그때까지 큰 마찰이 없던 군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덧붙여 나하추도 퇴각중인 고려 군을 추격했는데 예전에 동북면에 쳐들어왔다가 이성계 장군에게 당한 이후 처음으로 다시 고려군을 공격한겁니다.



어찌 어찌 이성계 장군의 계책으로 추격은 따돌릴수 있었지만 고려군은 요동 군벌들의 예상보다 심한 저항을 목격할수 있었고 요동 군벌들은 군벌들대로 고려도 잠재적인 적이 될수도 있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때를 보통 동녕부 정벌 혹은 1차 요동정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일부는 2차 요동 정벌이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같은해 1월달에 이미 압록강을 넘은 적이 있어서...)

이때 고려군의 실력에 요동 군벌들은 두려워했는데 남서쪽으로는 명이 남동쪽으로는 고려가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처하게 되는 거죠.
원래라면 북원에게 기대를 하고 싸워야 하는데 당시 북원은 대도에서 쫒겨나 이미 게임 끝이라고 인식이 되서 기대조차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요양행성의 유익은 이 틈 바구니속에서 명에 귀부합니다. 단순히 명에만 귀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려에게도 요청을 해서 양측 전부 어디에 들어도 쉽게 화를 못내게 한거죠.

이때 고려는 무응답 이었습니다. 불과 1년전 아니 반년도 안됬는데 요동은 고려 땅이다라고 한 고려가 무응답이었던 거죠.

그리고 유익은 명나라에 귀부를 했습니다. 고려의 재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떠오르는 태양인 명나라 밑으로 들어간 이상 안전하다고 생각한 유익.

그러나 유익은 너무 오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명과 고려는 분명 유익을 건들지 않았지만 유익은 어느 의미로 더 우선하고 염두해야할 상대들을 놔둔거죠.

바로 같은 요동 군벌들이었습니다.


요동군벌들은 그나마 있는 태풍전의 고요함같은 칼날위의 평화를 망치려는 유익에게 제대로 화를 내게 됩니다. 그야말로 위아더 월드로 유익 죽이자가 되는 거죠. 무려 4만 대군을 징발하여 유익을 치자고 약속했는데 이때 고가노라는 군벌의 군대는 지원보내지 말고 고려를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4만 대군 움직이는데 여기에 유력 군벌 하나는 고려의 개입을 염두하고 배치한 상태였던거죠.

당시 요동에 군대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요동 군벌들이 고려를 경계하고 있는 것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튼 이렇게 모두가 단합해서 유익을 죽이려고 암살자를 보내는데 결국 유익은 죽고 맙니다.

하지만 유익이 명에  귀부할대 요동 정세를 비롯한 정보를 많이 들고간지라 명은 요동의 상황을 눈치채게 됩니다.
그리고 명은 요동이 자신들을 칠 엄두를 못낸다는걸 알아버리고

1372년 카라콜룸 즉,북원을 완전히 끝내려고 명장 서달을 시켜 15만 대군을 움직입니다.


당시 명에 귀부한 유익을 죽인 요동 군벌들이었지만 명을 칠 엄두는 못냈습니다. 그야 그 넓은 원나라를 몰아낸 나라인걸요. 하물며 고려와도 제대로 화해를 못한데다가 그 고려는 명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요동 군벌들도 고려도 명의 불벌을 어쩌지 못하고 북원은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야 서달이라고 한다면 명나라의 이성계. 명 최고의 명장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명장의 지휘를 받으며 북원의 땅에 들어간 명군은...



2 편에서 계속.....
  • 10.7Kbytes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8

항상여름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려가 욕심내다가 다 같이 폭망...?

불타는감자밭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그런 문제보다는 요동의 상황이 상당히 복잡했다는 겁니다.

abc3511님의 댓글

profile_image
<p>당시 유익의 주장대로면 요동은 원래 고려 땅이고, 본인은&nbsp;고려 영토에 사는&nbsp;고려인이니 명이 간섭할 여지가 적어질 수 있었죠. 고려땅에 고려인인 유익이 땅을 다스리는건데 명에서 이주를 명할 수는 없는거니까요. 고려에서 정작 안받아들이니 명에 바로 항복하는 형식이 되서 말짱 도루묵이 되지만 말입니다.<br /><br />어차피 명의 압력이 강해지는 시점에서 명에 친교를 하거나 종래처럼 원에 친교하는 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텐데 나름 빅픽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잘만 됬으면 명도&nbsp;유익이 알아서&nbsp;북원이랑 관계 끊고 본인들과 친해지겠다는데다가, 이주 시킬 명분도 없으니 참 좋은 일이었겠죠.<br /><br />실제로 이 판단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던게 명이 북원 정권 박살내고 요동군벌들이 끝내 명군에게 쓸리는 것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구요.</p>

불타는감자밭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유익의 오판은 그 부분이 아니라 요동 군벌과 고려의 판단이었습니다.



너무 서둘렀고 너무 방비가 약했습니다. 유익은 당시 군벌들중  요동반도 가장 끝부분 즉,바다에 가까웠는데 유익이 먹히는 순간 요동은 명나라와 직면하게 됩니다. 귀부를 한다면 어떻게든 대응하거나 대안을 했어야 하는데 너무 명과 고려만 신경쓴거죠. 요동군벌들이 가용 병력만 4만이 족히 넘는 대군이 움직이는데 너무 서둘렀습니다.



의도는 이해되지만 서두르고 대책이 빈약한건 맞았죠.

abc3511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p>유익의 오판은 그렇죠. 정세 판단은 오히려 괜찮았는데 여타 요동군벌들을 너무 간과한 점과 고려가 무대응으로 나올 줄 몰랐다는 점이라고 할까요.<br /><br />본인은 죽고 그 세력기반은 그대로 명한테 넘어갔고, 또 명의 위협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하추 중심으로 뭉치게 된 면에서 나하추는 참 좋은 일이 됬지만 말입니다.</p>

불타는감자밭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p>예. 전 그게 오판이라는 거였습니다. 유익의 판단은 근본적으로 명과 고려, 그리고 요동 군벌을 너무 경시했습니다.<br /><br />자신 근방에 있는 고가노만 해도 홍건적이 요동에 넘어왔을때 4천명을 가볍게 격퇴할정도의 군세를 갖추고 있었고 다른 군벌들 또한 그와 버금가거나 이상이었는데 말입니다. 당장에 고려만 해도 이때 예상밖의 저항에 요동 의지가 한풀 꺾였는데 말이지요.<br /><br />ABC님 글대로 이후 나하추가 중심이 된건 맞는데&nbsp;본격적으로 나하추가 명의 문제가 되는건 유익이 죽은 이후 어느 사건 이후입니다. 그건 2편에서 적도록 하겠습니다.</p>

재계님의 댓글

profile_image
사실 중국의 제국들 입장에선 요동, 만주 일대는 대대로 골때리는 지역이었죠.



먹기는 힘들고 관리하는건 거기에 배로 힘들고. 그렇다고 내비두자니 그러면 또 위험해지고.

불타는감자밭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 당시 명은 아직 요동에 대해 정벌하거나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귀부한 유익이 죽임을 당했음에도 말이지요. 그러나 이랬던 명이 갑자기 태세를 바꿔 요동에 대해 크게 신경쓰게 된 이유가 있는데 이건 2편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전체 50 건 - 1 페이지
제목
불타는감자밭 3,454 0 2019.01.18
불타는감자밭 2,104 0 2019.01.01
불타는감자밭 1,741 0 2018.11.16
불타는감자밭 1,570 0 2018.10.30
불타는감자밭 1,384 0 2018.10.14
불타는감자밭 1,031 0 2018.10.14
불타는감자밭 1,587 0 2018.09.22
불타는감자밭 2,861 0 2018.09.19
불타는감자밭 922 0 2018.09.13
불타는감자밭 1,836 0 2018.09.08
불타는감자밭 2,151 0 2018.09.05
불타는감자밭 2,167 0 2018.09.05
불타는감자밭 877 0 2018.08.26
불타는감자밭 2,001 0 2018.08.26
불타는감자밭 1,202 0 2018.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