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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유쾌(?)했던 사이비 종교 퇴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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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겨울 정도에 학생회관에서 기말과제 때문에 노트북을 붙잡고 타자소리를 시끄럽게 내던 와중에 어떤 여성(20후반 정도)들이 다가오더라고요.
저를 붙잡고 나서 '예수님을 믿냐'던가, '하느님 말씀' 어쩌구 하는 걸 듣자마자 '아, 이거 휘말리면 큰일나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고, 원래 기도하는 날이 있으며 이 때 기도하면 만사형통 어쩌고 하는 말에는 '이건 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라는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흥미도 없는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니 관심을 가지는 척도 못하겠더라고요. 문득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자기 상품 홍보하는 사람과 이 사람들이 다를 게 뭔가를 진지하게 뇌내토론하는 게 더 재미있었습니다.
어느새 히로아카의 데쿠가 원찬스 다이브를 실제로 시전했을 떄 바쿠고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매장될까를 열심히 상상하던 도중, '혹시 흥미 없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에 교회나 성당 다닌 적 없냐'는 말은 덤으로 받았고요.
순간 머리가 아파서 이마에 손을 올리니, 제 머리에 흉터가 있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이거다!'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다음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렌델:네, 다닌 적 있었지만, 끊었어요.
전도사 A:끊으셨어요...?
렌델:(이마를 까면서)여어기, 흉터 보이세요?
전도사 B:......
렌델:제가 유치원 때인가, 초등학생 때인가, 꽤 어렸을 떄 생긴 거에요. 트럭에 부딪혀서 생긴 건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그 때 제 두개골 일부가 조각나서 튀어나왔다더라고요.
렌델:정말 큰일이었어요. 그때까지 마을 교회도 제법 성실히 다녔다고 부모님이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사고가 일어났지 뭐에요?
렌델:이보세요, 그렇게 정해진 날 정시에 기도를 해야만 구해줍니까? 믿지도 않는 사람이 그 때 기도했다는 것만으로 구해준다고? 애초에, 그거로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 있기는 해요? 마음의 위안이나 더 받는 게 다인데?
전도사 A:아니, 저흰 그게 아니라...
렌델:아니면 뭐라고 좀 설명해 주세요. 지금이야 무사히 컸다지만 그 때 두개골이 조각났다니까요? 유치원생 내지 초등학생 되는 애새끼가? 진짜로 예수님인지 하나님인지가 직접 구해주거나 그 날개 펄럭이는 천사님을 보내서 구해주시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만약에 제가 그 날 기도를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안 구해줬다면 그 신 정말 매정한 겁니다.
렌델:지금은 배 불룩 나온 돼지 한 마리나 다름없지만, 그 때 저는 제법 성실하게 기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가사도 뜻도 기억 안 나는 노래-그게 찬송가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구절 한 구절 외워가면서 부르기도 했고요.
렌델:만약 이게 '당신의 미읻으음을 시험하기 위한 거다', '인생사 새옹지마, 행복이 돌아온다'라고 말하실 거면, 전 그런 신 한번 낯짝이나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그게 성실히 기도하는 애새끼에게 할 짓이냐면서 궁둥짝이나 한 대 걷어차고요. 행복은 무슨, 십 년 넘게 지난 일인데 뭐 제대로 굴러간 일이 있어야지.
렌델:제가 그 때 기억하는 건 병원 침대에서 제 손 잡아주시면서 우시던 제 부모님이었습니다. 구원 하나 주지도 않은 신에게 기도하다 지치신 제 부모님이요. 그놈의 구원은커녕 윤회전생이나 시키려던 빌어먹을 신놈이 아니라.

여기에서 둘의 얼굴이 급격히 딱딱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왜요, 저도 제법 시달렸는데, 되로 받고 말로 주지는 못해도, 되 정도는 돌려줘야죠. 제 시간을 조금 더 써서 기말과제를 제 시간에 맞추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그건 저에겐 아무런 상관 없는 사소한 거였습니다.

렌델:믿던 사람이 버림받으면 얼마든지 삐뚤어지는 법입니다. 그게 애라고 해도요. 예수님 하나님 이렇게나 믿었는데 구해주지 않았구나 하고. 애새끼 하나 제대로 구해주지 못한 신을 믿어서 뭐한답니까? 차라리 도둑이 오면 짖어주기라도 하는 초롱이를 믿지.
렌델:그리고 전 조금씩 자라면서 깨달았습니다. 멋대로 기도하면서 멋대로 구해달라고 하는 게 되게 오만했다고요.
렌델:수억 수십억의 기도를 받을 신이 그걸 전부 들어줄리도 없잖아요? 있는지조차도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고 한다면' 말이에요.
렌델:그때 절 구해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전 그건 제 가족이었다고 대답할 겁니다.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다 지치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부활하고 억울해서 사흘만에 돌아간답시고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하던 예수가 아니라. 그러니 빌어도 가족에게 빌어야죠, 애초에 가족은 비는 대상이 아니지만.
렌델:고개를 돌려서 가족도 보시고, 때로는 등산이라던가 하시면서 주변 경치도 보시고, 두 분도 어서어서 정신 차리세요.
렌델:인생 단 한번입니다. 존재할지도 모를 사후의 광명찾으시는 건 자유신데, 지금을 제대로 살아가려는 주변 사람까지 말려들게 하지는 마세요. 십계명에 "거절해도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밀어붙여라"라고 적혀있기나 했습니까?

기가 차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안 잡고, 말 안 걸어서 그대로 학생회관을 나왔습니다. 왠지 말해놓고 나니 상쾌하더라고요. 아, 이래서 사이비 종교 퇴치하는 거구나, 하는 보람은 덤으로요.
아, 사고 부분은 진실이지만 기도 어쩌고는 거짓입니다.
여담으로 저는 딱히 종교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단지 설명도 제대로 못하는데다가, 버벅거려서 집중도 안 되는 조별과제 발표 미만급의 전도에 대한 복수심이 야악간 들어갔을 뿐이었어요.
아, 그 때 기말과제는 다행히 제시간에 냈습니다. 해피엔딩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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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8

뷰너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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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다고 해도 서로 대화도 제대로 되지 않는 마당에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을라나 하죠.(...) 

<div><br /></div>

<div><div>거기다 실제론 종교를 빙자한 사이비집단이 사람 등쳐먹는 게 더 큰 문제인 현실 부터 어떻게 해야 되겠죠.(이 사이비집단의 해악이란...)<img src="/cheditor5/icons/em/em64.gif" alt="" border="0"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div>

<div><br /></div></div>

나일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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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니체가 말했습니다.<br />신은 죽었다.고<br />그러니 인간찬가 하죠.<br />종교따윈 위안에 불과하죠.</p>

플라잉란코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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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터넷에서 본 개그스런 에피가 몇개 떠오르더군요



1) 전도하는 사람이 좀 예쁜 아줌마라서, 역으로 꼬셔서 물어보니 남편과 사실상 별거(정식 이혼 X) + 사이비 덕에 빚 짐. 우리집 금수저라 그 빚 갚아주고 남편과도 이혼 시킴. 지금 내 애 낳고 같이 알콩달콩 삶.

2) '아 그러세요? 저 은행원인데, 실적 없어서 그러는데, 신용카드 하나 해주실래요?' 전도사가 욕하고 도주

3) '....폰이 좀 옛날 기종이시네. 제가 폰팔이인데 폰 싸게 해드릴게~'

마찬가지로 전도사가 욕하고 도주.

jlwkrtg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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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번은 재치있는건데 1번은 진짜 현실을 얕보지 마라 판타지...!

가시가시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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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은 한번 보고 싶기는 한데 검색해도 안나오는거 보면 오래됐거나 검색어가 이상하거나... 여튼 다 재밌어 보이는군요.

플라잉란코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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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예전에 루리웹 유게에서 본 건데

그것도 아마 디씨 어딘가의 갤러리가 원출처였을 겁니다...

모래마녀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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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은 글을 봤던 기억이 나네요. 썰을 푼게 고등학생이던가. 자기 취향의 아줌마가 있어서 역으로 꼬시고 사이비 종교쪽에 신상정보는 자기 괴롭혔던 인간 전화번호를 줬었다고..

플라잉란코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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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전화번호 내용은 까먹었는데 감사합니다.

카이마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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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개인적으로 종교에 거부감이 있는 편 입니다.



<div>친할머니가 불교에 빠져 계신데, 항상 입버릇이 '기도해야 잘 된다.'라고 하시면서 억지로 부적 손에 쥐어주시고 하십니다.</div>

<div>그렇게 30년을 넘게 부처님께 기도하셨건만 부모님 모두 몸이 아프셔서 수술하신 적 있으시고, 지금도 후유증이 있으신데,</div>

<div>그때 하는 말이 아주 가관.</div>

<div>'그게 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거다.'</div>

<div>그러다가 제가 대학 붙었을 때 또 하는 말이,</div>

<div>'이게 다 내(할머니 본인)가 기도를 열심히 드려서 그런거다.'</div>

<div>...아니, 잘 되면 본인이 기도한 덕이고, 안 되면 남이 기도를 덜한 탓이라는 게 무슨 논리인지...</div>

낙엽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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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초딩때부터 이런거에 시달리다 보니 중2병 걸린 시절에는 아예 안티기독교 이론 공부에 심취했습니다. 중2병과 공부가 융합되면 어떻게 되는지 중2 시절을 겪어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상태로 끈질긴 종교권유 만날 때마다 공부한 걸 써먹었습니다.<br /></div>

<div>근데 어느정도 써먹다 보니 이런짓을 일일이 하는것도 귀찮고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2병이 나아서 더이상 이런 게 재미없기도 했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냥 종교권유 만나면 바로 대놓고 돈달라고 떼쓰는 쪽으로 컨셉을 바꿨습니다. 시간도 훨씬 덜 들고 효과도 직빵이더군요.</div>

<div><br /></div>

<div>...예, 위에 나온 2번 3번이랑 비슷한데 제 경우가 좀 더 직설적이군요.<br /></div>

플라잉란코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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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얼마/몇 자리수를 부르시나요? 6자리? 7자리?



5자리면 광신도일 경우 진짜로 줄수도 있을 것 같...

낙엽도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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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 7자리인데요<img src="/cheditor5/icons/em/em44.gif"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alt="" border="0" /><br />

플라잉란코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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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사이비가 곧장 GG치고 도망칠만 하군요

비슈바카르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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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대로 된 종교는 괜찮은 편이죠 항상 문제를 만드는건 종교인 이니까..&nbsp;</div>

<div>교리대로 살면 저렇게 될 리가 없는데 저놈들은 안지켜요 믿는다고 말하면서 보고 있으면 웃기죠<img style="margin: 1px 4px; width: 50px; height: 50px; vertical-align: middle" alt="" src="/cheditor5/icons/em/em6.gif" border="0" /><br /></div>

DrakeH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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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애드립이네요. <img src="/cheditor5/icons/em/em18.gif"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alt="" border="0" /><br />

바이스벨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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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전에 동생이랑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대사를 치며 방문 전도사를 멍때리게 했던 썰이 떠오르네요.

아키츠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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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저런 사이비 전도하는 사람들 장기매매하는것 처럼 속인다고 차에 태워가던 영상을 본 것같은데... 이정도로 당하면 그만 전도 할때도 된 것 같은데 조직에서 계속 시키나 보네요.

굴러다니는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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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인 애드립이엄청나신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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