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중 말 학대/사망 및 스턴트맨 부상 사건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미국 영상물 업계의 동물 보호 정책의 역사를 대강 정리해보겠습니다.

1. 미국 영화계에서 동물 보호가 최초로 크게 부상한 사건은 1939년 영화 <제시 제임스>에서 말이 주인공을 따라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 때문입니다.
약 20m 높이에서 강제로 떨어진 말은 물에 빠져 익사했습니다. 이후 1939년에 에롤 플린 주연의 <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 영화에서 총과 화살에 맞아 고꾸라지는 말들을 연출하기 위해 트립 와이어를 사용해서 약 25마리의 말이 죽었습니다. 이 두 영화의 말 사망 논란에 미국의 대표 동물 보호 단체 미국 인도주의협회 (American Humane) 는 강하게 반발했고, 미국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와의 계약을 통해 American Humane이 영화 세트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니터링하기 시작합니다.

2. 1980년 서부 영화 <천국의 문>에서 약 5마리의 말이 죽자, 미국 인도주의 협회(AH)는 영화계를 강하게 압박하여, 영화 촬영에 동물이 사용될 경우 미국 인도주의 협회가 무조건 모니터링하도록 미국 배우조합(SAG) 과의 공식적인 협약을 맺게됩니다. 이후 엔딩 크레딧 끄트머리에 이런 로고가 붙게됩니다.

https://legendsrevealed.com/entertainment/wp-content/uploads/2015/05/no-animals-were-harmed.png

현재 미국에서 제작되는 영상물 99%에 이 로고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나머지 1%는 어떨지 잘모르겠지만.

3. 그렇다고 이 정책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호빗: 뜻밖의 여정> 촬영장에서 약 30마리의 동물이 사망하는 사건을 미국 인도주의 협회가 묵인했다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화 촬영 중에 동물이 실제로 다칠 수 있는 스턴트나 촬영 기법은 기본적으로 금기화되고, 동물이 실제로 다치는 장면은 절대로 찍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최소 1980년대부터 업계에 깔려있었습니다.

4. 위에서도 서술되었지만 와이어를 사용해 말을 고꾸라트리는 촬영 기법은 미국에서는 이미 1939년 이후로 금지되었습니다. 이런 기법이 2022년 공영 방송의 드라마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게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CG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데, 촬영중 말이 다치는게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 촬영에서 문제화 되지 않았다는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하루빨리 개선되었으면 좋겠네요

유사품(?)으로는 픽션 면책 조항(본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도 있습니다. 이건 명예훼손 같은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PS. 개인적으로는 리얼리티 추구한답시고 사람과 동물의 목숨을 위협하고 환경을 불필요하게 파괴하면서 촬영하는 감독들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모든 걸 대충 cg로 떡칠한 게으른 연출도 문제지만, 리얼리티 추구한다면서 위험하게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모두에게 해가 가지 않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찍을 수 있을만큼 기술이 발전한 요즘에는 더더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