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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 일상물 애니에 관한 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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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를 보다보면 미소녀 일상물은 너무 가볍다, 오타쿠 용이다 하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여자들이 꺄하하 우후후 하는 내용이 태반이라 그런가. 아니면 머리 알록달록한 미소녀가 모에 취향 행위를 하는 게 오글거려서 그런가.





그래서 그런지 유튜브 등지에서 '봇치 더 락!' 같은 물건을 보고 감상 댓글을 남길 때 "정말 재밌는 일상물" 이라고 하면 꼭 대댓글로 "진지한 밴드물인데요?" 하면서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봇치 더 락'이 정말 진지한 밴드물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이러한 반응을 보다보면, 어째 사람들이 일상물이라는 말에 은근히 혐오감을 느끼는 듯 하여 슬픕니다. 미소녀 일상물이라는 장르에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인듯 해요. 어쩌면 야마칸이 싸지른 '미소녀 동물원' 이라는 단어가 안 죽고 2023년까지 살아남아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생각해보면 '러키 스타' 나 '요츠바랑!', '아즈망가 대왕', '케이온!' 때도 비슷한 반응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가볍고 오타쿠 노린

작품, 만들기 쉬운 물건이 뭐가 좋냐?' 이런 식으로요. 저는 이 작품들을 즐긴 세대보다 좀 더 뒤에 태어나서 잘 모르겠지만, 당시 반응이나 증언들을 뒤지다보면 대충 어떤 느낌일 지 감은 옵니다.





이처럼 미소녀 일상물이라는 카테고리에 어떠한 거부감을 느끼는 반응을 보다보면 의아해집니다. 더 나아가 '돈 벌려고 만든'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는 위화감마저 듭니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들고 오는 소위 '옛날 애니들' 도 태반은 돈 벌려고 만든 거니까요. 차라리 그 속에 어떤 메세지를 담을거냐는 논거를 들고 오면 조금이라도 이해는 가겠지만, 그럼 모든 일상물은 서사와 메세지가 없을까요?





그럴리가 없죠. 짬뽕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벌어지는 일도 서사라고 말할 수 있고, 이 서사를 통해서 메세지를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미소녀물의 대부분은 갈등구조가 없어보일 뿐이지, 사실은 어떠한 작은 갈등이나 사건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가벼워진거죠.





하지만 가벼운 내용을 가벼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정말 나쁩니까? 제가 보기에 정말 악질인 작품은 무거운 내용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는 작품들인 것 같은데요. 아니면 스토리를 쓸데없이 과잉으로 풀거나.









캐릭터만 있고 서사는 없다는 말도 웃깁니다. 서사는 캐릭터가 어떠한 캐릭터인지 탐구하는 과정만으로 충분하고 굳이 화려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아니면 캐릭터라는 개념을 담당 성우 성대하고 디자인만으로 판단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미소녀 일상물에 관한 시선이 꽤나 납득가는데.





만들기 쉽다는 말도 굉장히 착오적인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클리셰대로 가는 모에 작품' 은 안 팔려요. 2010년대 초반이면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힘듭니다. 거기다가 작화도 정말 힘듭니다. 사람이 하는 감정 연기를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인간이 하는 행동 속에서 뉘앙스를 정확하게 잡아서 표정과 움직임을 그려내야 하는데 그게 말이야 쉽지...... 지브리가 받는 호평에는 분명 이러한 일상 작화면도 있을겁니다.





결국 세간에서 말하는 일상물 애니에 관한 비판 중 합당한 부분은 '메세지나 표현의 얇팍함' 이나 '미소녀만 나온다' 는 점 뿐인데, 글쎄요. 이 부분은 그냥 10년대 초반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이 공통으로 가진 문제 아닌가요?





물론 속칭 "모에돼지용기분나쁜미소녀관음작품" 에 속하는 물건이 많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팔리는 물건에 현실도피적인 작품이 많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요. 하지만 여기에도 두 가지 맹점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첫번째로 쉽게 관과하는 점은, 일상물 - 속칭 'CGDCT' 에존재하는 공식은 정말 미소녀와 일상 관련 요소가 나온다면 뭐든지 OK라는 점입니다. '미소녀가 나오면 뭐든지 OK' 라는 말과 '미소녀가 나오면서 이런 내용이어야만 한다.' 라는 말은 품고 있는 뜻이 명백히 달라요. 전자하면 일상 속에 어떤 메세지를 담느냐, 일상을 통해서 '뭘 묘사하느냐' 는 자유입니다.



몇 년 전에는 후자에 가까웠죠. 언제나 후자에 안주하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쇠퇴되기 마련이고, 실제로도 일상물 판도 한 때 그렇게 됐어요. 하지만 결국 후대에 언급되는 작품들은 어느 정도 전자 방향성을 추구한 작품들이고, 요즈음에도 전자에 가까운 작품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습니다.



'길모퉁이 마족' 은 작품이 진행된 현재 (만화판 기준) 마마마류 아포칼립스 미스터리 마법소녀 장르를 일상물으로 포팅한 만화고, 만화판 '스텔라의 마법' 은 '일상물이 끝난 다음 일상물 주인공' 포지션 캐릭터를 보여주며 일상물이면서도 일상물의 안티테제로 변모했고, '봇치 더 락!' 은 사이토 케이이치로의 해석을 통해 꽤 괜찮은 애니로 만들어졌고, '소녀종말여행' 은 일상물적인 행보를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포팅해서 굉장히 좋은 결과물을 얻었죠.



그런가하면 야마노스스메처럼 꽤나 정석적인데도 좋은 작품도 있어요. 애니판이 보여주는 캐릭터 움직임과 심리 묘사가 훌륭해서 고정 팬층이 있죠.



일상을 통한 현실 도피를 추구하던 팬덤이 대부분 완전 상위호환격인 버츄얼 유튜버로 대피한 현 세대를 감안하면 이러한 시조는 더욱 눈에 띌 전망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쇠퇴할테니까요.







두번째로 간과하는 점은, 어떠한 작품을 평가할 때에는 무언가를 어떻게 다뤘느냐를 포함한 복합적인 요소를 봐야하며, '어떤 소재인가' 나 '어떤 방식인가' 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사실 굉장히 의아합니다. 인터넷만 보면 다 아는 사실 같거든요.





명작은 비단 진지하기 때문에만 명작이 아니라는 사실은 DCFU가 이미 증명했고, 유머도 작품에 손해 안 입힐 정도로 정도껏 해야한다는 사실은 MCU가, 딱히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다 명작이 아니라는 사실은 '스타워즈'가, 히어로물도 나름대로 수작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은 '팀 버튼' 과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미 증명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예요.





그런데 아직도 소재와 장르에 지겹도록 연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재가 참신하면 작품도 재밌다. 장르가 이거라면 이 이상은 호평 받을 수 없다. 반전이 나오고 슬프고 명대사가 나오면 문학적이다. (전혀 그렇지 않지만요.) 이런 식으로 일단 어떤 인상을 짜두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창작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뭘 어떻게 했냐' 이지 '이름이 뭐냐' 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소녀들이 나와 일상을 지냈다.' 보다는 미소녀들이 '뭘 어떻게 했다' 라는 부분이 더 중대한 논쟁거리라고 생각해요.





결국 미소녀 일상물이라는 장르만으로 어떠한 거부감이나 평가절하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내실인거에요. 야마노스스메는 그냥 미소녀가 산을 타서 좋은게 아니에요. 미소녀들이 산을 오르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냐, 왜 산을 오르느냐. 이런 점이 합쳐져서 좋은거지.





물론 아닐수도 있고요. 어쩌면 그냥 제가 씹덕이라 그런걸지도 모르죠. '오빠는 끝!' 애니판은 다시 봐도 수치스럽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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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7

아스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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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학습만화랑 결이 비슷한 느낌이군요. 그쪽도 '학습'에 집중하고 '만화'적 가치는 축소평가하려는 감이 좀 있죠.

로우필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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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체면차리려는 사람들은 항상 있죠... 누구든 한번씩 앓고 지나가는 열병같은거라 생각하는지라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미소녀 동물원이 만들기 쉬운 장르다, 라고 한다면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람 지갑은 정직하거든요. 만만하게 보고 대충 만들면 큰코 다칩니다

슈이네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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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 동물원 장르는 왜 유행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 중 하나가 미연시 애니화의 반작용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다.

미연시는 주인공=게이머라는 법칙상 주인공이 대체로 무개성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죠.

이러한 미연시가 애니화된 결과 개성이 넘치는 히로인들과 개성이 부족한 주인공이라는 언밸런스한 조합이 되죠.

게임일 때와는 달리 주인공은 시청자가 아니게 되고, 그 결과 언밸런스한 주인공을 제거한 게 미소녀 동물원이다. 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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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맞는 말씀입니다.

미소녀가 많다면 일본 서브컬쳐에 미소녀가 없는 장르가 어디 있으며, 주제나 작중 갈등이 심각해야 반드시 좋은 작품이 되는가? 그런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일상물은 정적인 내용과는 다르게 꽤 동적인 장르로, 단순한 일상 코미디가 여러모로 분화되고 발전해 왔죠. 개인적으로는 최근 쏟아지는 타카기양 류의 썸타기 관찰물도 일상물의 한 발전이라고 보는데, 이 장르가 단순한 미소녀 구경이 목적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끝장났을 겁니다.



ps. <오빠는 끝>은 누가 말했던 "오타쿠는 미소녀와 사귀고 싶은게 아니다. 미소녀가 되고 싶은 것이다!" 라는 말을 직구로 실현한 작품이라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봅니다ㅎㅎ

비비RU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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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물이 안좋은 의미로 불리는 시대가 되었는가……

쟌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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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존중이 필요한데, 이것을 안해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터나이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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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고작(?) 부먹 찍먹 이런 걸로도 싸움 나는거 보면...취존이란 건 진짜 글른거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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