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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물] 최근 읽었던 책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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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썼던 거 들고와서 반말과 존대가 섞여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0시를 향해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입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여사님 소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캐릭터 조형과 속도감은 정말 굉장해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내면을 묘사하는 느낌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반전까지. 시간을 훌륭하게 보내는 글이고,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면 즐거울 글입니다.


  지식채널 E  4


  보면서 FOX TV가 생각났습니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폭스 티비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자극적인(그리고 보수적인) 소스를 가지고 오는 걸로 유명하지요. 언론이 가지는 힘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잘 쓰는 실례이지요.

  지식채널도 어쩌면 그런 위험을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경쓰지 않았던 세계의 단면을 언뜻언뜻 보여주지만 그 정보 역시 송출자의 기호에 맞춰 왜곡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여태까지의 EBS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생각하면 그런 우려가 덜하지만,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법이지요. 그런 우려를 제하고 본다면 지식채널 E는 훌륭한 '세계를 보여주는 창'입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경로의존성에 대한 이야기, 소록도의 사람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위에 감정을 느낍니다. 뭇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전 공부의 필요를 느낍니다.


  정범태

 

  작년 말부터 학교 도서관의 열화당 사진문고를 하나씩 빌려봤다. 한 번 책을 빌릴 때마다 한 권씩. 재미있는 게 많았다. 유진 스미스에 머이브리지, 최민식, 유진 리처드. 당장 생각나는 건 이 정도. 아무튼 사진 찍는 건 못하지만(장비도 없고) 사진 보는 건 좋아한다. 정범태의 사진도 그렇다.

  사진 속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광원이 어디 있느냐, 프레임은 어떻게 나뉘냐, 사진을 트리밍해서 구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 문외한이라 주워들은 것만 말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느낌이다. 정범태는 그런 풍부한 표현 한 가운데에서 '오직 사진'에 충실했다는 느낌이다.

  사진으로 이런저런 장난을 치는 사람은 많다. 인화지를 과노출한다거나 네거티브 현상을 하기도 하고, 노출시간을 늘려 사진이 늘어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정범태는 그러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사진으로 찍는데 주력했다. 최민식의 사진과 비슷하지만 다른 층위에 있다. 최민식이 인간의 깊은 내면을 끌어내려고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찍었다면, 정범태는 현실의 한 단면을 드러내려고 했다는 느낌. 구본창의 절제된(나 개인은 인공적이라고 느끼는) 표현과는 또 다른 영역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정범태의 사진이 퍽 마음에 들었다. 긴 말이 필요한가. 관심이 있으면 보고, 취향이 아니면 덮고, 좋다면 찾아본다. 좋다. 좋다.


  레퀴엠


  진중권의 레퀴엠을 봤다. 2003년에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책. 얇은 하드커버.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전쟁 레퀴엠이란 곡의 형식에 맞춰 서술했다. 전쟁을 미학의 관점에서 보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은 것. 8년전의 진중권은 지금의 진중권보다 치기 어리고 자신을 더 많이 드러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어떤 인간의 글과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건 분명 배워야할 점이지만 그 사람의 인격이며 삶까지 배울 필요는 없다는 것. 당연한 일이지만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진중권은 적을 많이 만들었다. 그 본인은 다르겠지만 난 그런 태도에 완전한 지지는 보낼 수 없다. 

  많은 인간과 책과 경험이 나를 구성한다. 나는 그 모든 파편을 이어붙인 존재다. 하지만 다른 것이 더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라즐로-모홀리 나기 


  정범태와 마찬가지로 열화당 사진문고에 있던 책이다. 다른 작가를 보다 라즐로를 보고 느낀 건, 이 사람이 사진 찍는 '피사체'보다 사진 찍는 '기법' 쪽에 좀 더 몰입했다는 것.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 개개에 대한 트리밍, 인화과정에서 색을 보정한다던가 네거티브 인화, 빛에 과노출 같은 다양한 기법은 후대에 분명히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일찍이 랭보는 베를렌에게 말했다.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

  무엇을 어떻게 찍고 말하고 쓰며 그릴 것인가. 어렵다.


  에드 반 데르 엘스켄


  역시 열화당 사진문고. 펴낸이 말중에 보헤미안의 사진이라던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본 엘스켄의 사진 역시 그런 느낌이다. 떠돌고 떠돌다 그저 자신의 눈에 보인 세계를 슬쩍. 그건 가공하거나 숨막히는 내면을 들춰낸 것이 아니라, 그저 눈 앞에 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사진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어떤 순간'을 잘라내 정지한 것이 사진이란 의견이 있고, 난 거기에 동의하며, 엘스켄은 멋진 순간순간을 남겼다. 좋은 느낌이다.


  맹자


  맹자가 말했다.

  "어질지 못한 사람과 함께 바른 도리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위태로운 것을 편안한 것으로 여기고 재앙을 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의 몸을 망치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어질지 않지만 함께 바른 도리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나라를 잃고 집안을 망치는 일이 있겠는가?
  어떤 어린아이가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고 노래했다. 공자가 그것에 대해서 '너희들은 저 노래를 들어보아라.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한다. 그런 차이는 모두 물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고 하셨다.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기고, 집안도 반드시 스스로 망친 후에 남이 망치고,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한다. 『서경』의 「태갑」에서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맹자, 이루 상편, 198p, 홍익 출판사, 박경환 옮김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다. 이천 년도 넘게 지난 지금 맹자의 도리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영역에서 '어떻게 수양하는가'는 쪽으론 좋은 책. 허투루 스무 세기를 버틴 게 아닌 거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논어만 못하다. 그래도 좋았다. 이걸로 사서는 다 봤다. 그런데 삼경이 너무 강하다... lllorz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의 에세이. 로맨티스트 과학자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느낄 수 있는 책. 감동했던 건 이 사람의 로망이 대책없이 지르는 게 아니라, 과학적 사실과 논리에 입각한 감상이란 것.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과학적 사고의 필요와 회의주의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분명히 해야할 것은 회의주의가 '반대하기 위한 반대'는 아니란 것. 조금 더 나은 세상, 혹은 조금 더 올바른, 더 많은 지식을 위해서. '우주를 거의 모른다는 것은 신을 거의 모른다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도 생각났다. 일단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을 빌려놓은 상태. 이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는 오래 전 별을 이루던 원소로 만들어져 있다. 두근거리는 일이다.


  펭귄하이웨이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신작. 

  어.... 작가 본인이 말하듯 모리미의 솔라리스란 느낌이다. 초4스러우면서도 똑똑한 주인공이 몹시 마음에 들고, 배경이 되는 마을의 묘사, 주변 인물들, 그리고 마주치는 신기한 일들. SF소설 대상을 먹은 게 단순히 운이 아니다. 

  소설 내용을 설명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드무니 직접 읽는 게 여러 모로 좋을 것 같은 책. 

  아주 그립고, 쓸쓸하고, 아련한 냄새가 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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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5 01:09:53 (7156일째)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파괴당하기를 거부하는 그 저항감의 강도일 것이다. 아베 코보, 타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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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해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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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책을 통 못 읽고 있는데 기억해둬야 겠네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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