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 최근 읽은 책 감상
본문
모든 것의 가격
에두아르도 포터란 사람이 쓴 책입니다. 최근 경제학 쪽에선 행동경제학이란 새로운 경향이 대두하고 있는데, 몇 년 전에 나왔던 넛지도 이러한 맥락의 책이지요. 현대 주류경제학에서 이야기 하는 많은 것들 - 신자유주의 시장이 들어서야 하는 이유라던가 자유무역을 함으로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들과는 상당히 다른 논점과 예시가 많이 쌓여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마침 이거 읽으면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함께 읽었는데. 두 책의 기저에 벤담의 공리주의 이론이 자리잡고 있는 게 흥미롭더군요. 정의는 무엇인가는 '어떤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인가'란 질문으로 뻗어나가고, 모든 것의 가격은 '어떤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인가'란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둘 다 흥미로운 이야기지요.
각설하고, 이 책은 많은 것의 가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여성의, 행복의, 노동의, 공짜의, 미래의 가격. 각각의 꼭지가 현실적인 예시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이 책은 경제학 책이면서 각 나라의 문화에 관한 이야기기도 합니다. 한국의 노동 강도는 얼마나 되는지, 인도의 신부 지참금은 무슨 문제를 일으키는지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풀이할 수 있으니까요.
책에서 흥미로웠던 예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 시장에 나와서, 돈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과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이 둘 다 그 상품을 살려고 합니다. 헌데 그 상품 판매처를 잘 찾아보면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두 계층의 선택이 발생하지요. 돈이 있는 사람은 충분한 돈이 있기에 시간을 더 들이지 않고 바로 상품을 사고, 돈이 적은 사람은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발품을 팔지요. 여기서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에 비해 상품을 사는데 시간을 좀 더 투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을 돈이 많은 사람은 다른 행위를 하는데 쓸 수 있었겠지요.
각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인지, 가장 이익이 되는 행위인지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모든 행위가 이러리라고 재단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식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고, 즐거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글리머
이전 다른 곳에서 희망의 인문학, 프리덤 라이터즈 다이어리라는 책 두 권에 대해 말한 일이 있습니다. 두 책은 작은 것에서부터 세계가 변한다는, 사소하지만 가슴 뜨거워지는 내용이었지요. 글리머 역시 그러한 책입니다.
글리머는 세계 유수의 디자이너들을 찾아다니며 디자인이 무엇인지, 디자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차곡차곡 모아냈습니다. 작게는 자신의 인생부터, 크게는 세계의 행방까지. 거창하다는 이야기가 나올법하지만 글리머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책의 주요 저자 중 하나는 몹시 바쁜 사람입니다. 세계 각지에 사무실이 있고, 한달의 반은 여기저기 날아다니지요. 그러던 중 그는 생각합니다. 내가 길 위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나 많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일하는 패턴 자체를 바꾸기로 합니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일을 팩스로 처리하거나 온라인으로 해결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요.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되기도 했지만, 이건 그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지요.
발명품 하나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나와 있습니다. 일단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영문 위키페디아)
아프리카에서는 마을이 식수원에서 떨어져 있기에, 매일 먼 길을 걸어 물을 길러 가는 일이 많습니다. 종전까지는 좌측처럼 물을 이고 오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래서 몸은 고되며, 길어오는 물의 양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하지만 우측의 히포롤러가 보급되며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물 수송 자체가 수월해졌고, 한번에 나를 수 있는 물의 양도 늘어났습니다. 더욱이 일이 덜 힘들어지고 '멋있어'보여서 남자들이 저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게 크지요. 히포롤러가 보급되고 얼마 뒤에 학자들은 놀라운 변화를 실감합니다. 여성의 문맹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매일 주기적으로 빼앗기는 시간이 줄어들자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이것 관련해서는 장하준 교수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이야기했었지요. 근대 여성 인권의 발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세탁기라고.
비단 물건에만 얽힌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 텍사스 주에서는 고속도로에 버려지는 쓰레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처음에야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캠페인을 했지만 주로 버리는 계층은 20~40대의 남자, 그것도 텍사스의 말 더럽게 들어먹지 않는 마초스러운 남자들이지요. 여기서 또 디자인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텍사스의 기풍에 맞춰 '텍사스를 더럽히지 마!'라는 강렬한 캐치프레이즈로 캠페인을 전개한 거지요. '그 편이 멋있다'는 이미지도 계속 전파하고요. 그 이후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이 크게 감소했다고 합니다.
세상은 놀라운 일의 연속입니다. 글리머는 그러한 단면을 보여주지요. 아주 매력적이고, 즐거운 이야기입니다.
사기열전
문장은 장천마지(莊天馬地)란 말이 있습니다. 장자의 문장은 하늘처럼 자유롭고, 사마천의 문장은 땅처럼 굳건하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사기를 보고 있으면 번역을 거쳤음에도 무척이나 단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역사책인데도 이야기책 같아서 읽는 맛이 훌륭하기도 하고요. 새삼 이야기의 배치에 따른, 편집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어떻게 편집하냐에 따라 이야기가 맥락을 가지고 편집자의 뜻이 살아나며, 나아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알 수 있는 거겠지요.
하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묻는 백이 숙제 열전부터 시작해 각양각색의 많은 인간 군상이 나옵니다. 유방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숙청당한 한신, 합종연횡책을 말하며 천하에 이름을 떨친 소진과 장의, 자신을 알아준 이를 위해 목숨 버리는 것도 아깝지 않게 여긴 자객들의 면면. 흥미로운 자들이 몹시 많지만 전 그 중에 상군열전이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상군, 상앙은 역사책에선 변법을 시행해 진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끌었다..고 짤막하게 언급되는 경우가 많지요. 마지막에 그 자신이 시행한 법에 걸려 죽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지만... '왜' 그렇게 되었냐고 의문을 던지는 건 퍽 재미있는 일입니다.
처음에 상앙이 유세를 위해 진나라 효공에게 갔습니다. 상앙은 요순의 도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지만 효공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두 번째로 효공 앞에 나간 상앙은 부국강병을 논합니다. 효공은 그것을 받아들이지요.
전 저 부분이 몇 번이고 마음에 걸리더군요. 군주에게 감히 요순의 도를 논했다면 처음에 그가 가진 뜻은 어떤 것이었을지, 첫 진언이 받아들여졌다면 어떤 일을 행했을지. 역사에 만약은 없는 거지만, 이상주의자였던 상앙이 현실과 타협해서 조금씩 변해가다,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펭귄하이웨이
올해 최고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 모리미 도미히코가 좀 더 차분해졌다는 느낌도 들었고, 본인의 말마따나 스타니스와프 렘이 생각나기도 했던 책. 몹시 즐겁고, 아련하고, 잔잔한 책.
소설 최고의 덕목인 재미를 아쉬움 없이 만족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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