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_네타] [이벤트]야간자유학습 리뷰입니다.
2012.05.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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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대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뭔가를 얻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해야합니다.
세상은 그것을 등가교환의 법칙이라고 부르곤 합니다만 그게 어디든 통용되는 건 물론 아니지요.
그렇다고 제가 라이트노벨 이벤트에 당첨되었는데 리뷰를 안 쓰고 배째는 일이 생긴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아무튼 책은 받았으니 리뷰를 작성하는 게 예의겠지요. 아무리 할 말이 만력제 공덕비 같아도 세상에는 의무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노블엔진에서 받은 책, <야간자유학습> 리뷰입니다.
신지유, 윤노리, 경이, 최민&최눈 자매. 파이쌤, 봉쌤.
1권에서 그나마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캐릭터라면 이정도가 떠오르네요. 헌정 단편은 일단 논외로 하고. 저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습니다만은...
...캐릭터들이 무지무지 X n 작위적이라 퍽 슬펐습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이야기에서 캐릭터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 관점에서는 '이야기 속의 캐릭터'로 가치가 있는 거지, '이야기 이상의 캐릭터'는 쓰는 본인이 통제를 못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위의 캐릭터 중 신지유를 제외하곤 그런 이야기 이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배경, 혹은 도구 이상으로 기능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는 거겠지요.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이공계 알고리즘 연산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을 던져주면 이렇게 반응한다. 그게 기계적으로 계속. 봉쌤이 대표적이겠네요. 잘만 굴리면 독립된 개성을 가진 캐릭터로 굴릴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신지유 역시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본인 입으로 로리콘이라고 계속 말은 합니다만은 너무 거기에 대한 어필만 있다보니 다른 면모가 너무나 약하게 드러납니다. 한쪽 팔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다른 교우관계 같은 것 말이지요.
경이와의 관계에서 역시 그렇습니다. 둘은 로리콘의 도를 설파하는데, 이게 이야기 전체의 전개와 어떤 관련 없이 그저 '이 캐릭터는 이렇다'는 식으로 던져지기만 해서 아쉬웠습니다. 정말 개연성 있는 캐릭터라면 전개 전체와 맞물려 돌아가야하지 않을까 싶었습죠.
이야기가 하나로 종합되는 것 같은데 다른 구성요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로봇 조립 전의 파츠마냥 흩어져 있고 늘어져 있는 그걸 순차적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것 같은데, 글쎄요, 소설은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고, 그건 응당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붕 뜬 캐릭터가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기이할 정도의 하이텐션으로 폭주하면 읽는 사람은 집중할 수 없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을런지.
다른 분도 말씀하리리라 짐작하지만 행갈이가 지나치다는 점도 있습니다. 물론 속도감이 붙는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건 산만하다는 뜻도 되겠지요.
캐릭터 조형쪽에서는 좀 안타까운게, 왜 굳이 그렇게 극단적인 캐릭터로 밀어붙여야 했나. 라는 겁니다.
라이트노벨을 보는 독자층이 아무리 야자에 찌들어 해방을 꿈꾸는 고등학생이라도, 매일 의상이 바뀌는 선생님에 팬티에 그렇게까지 목숨거는 봉쌤, 본문 말마따나 1+1 이상의 캐릭터를 지니지 못한 최씨 자매. 그리고 삼각건을(단어 선택은 작가의 재량이라고 하지만) 굳이 팔걸이라고 바꿔부르며 말끝마다 븅신븅신 붙이는 주인공. 아. 오프라인에서 '여어'라고 말하며 손을 들어올리는 경이.
글쎄요, 야간자유학습이라는 사건이 있다면 그 안에서 캐릭터들이 그렇게까지 폭주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정규루트를 타지 않고 탈출하다 발각되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도망친다던가, 야자 들어갈 때의 저녁 시간을 어떻게 써먹을지라던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그 정규 루트를 다루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학교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좀 더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문장 쪽은, 뭐랄까. 한국어 글쓰기의 대원칙은 최소한의 문장으로 최대한의 표현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라노베 분량을 늘려야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소리긴 하지만, 문장 전체에 깔끔한 맛이 없었어요. 이건 소수의견이겠지만 라노베를 읽는 입장에서도 문장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 분명히 있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야자학의 문장은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조차 아슬아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제가 맞지 않은 게 많으며 필요 이상으로 기름지고, 번역투가 많이 섞인 문장. 좋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유의 반전- 1년 늦게 학교에 왔다-는 게 묻힐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런저런 장치를 깔아놨다고 해도 그게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거든요. 제가 좀 짜긴 합니다만 초반과 후반의 분위기가 너무나 달라요. 이러니 '이 친구 왜 이리 왔다갔다 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요.
같은 맥락에서 희망이나 미래 같은 단어를 함부로 쓰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전체 서사가 붕 떠 가볍게 보일 수 있거든요. 갑자기 떠오르는 건 한국 코미디 영화가 왜 마지막 즈음엔 다들 감동 코드를 넣느냐-는 건데, 그러한 맥락에서 초반의 막장스러움을 계속 밀어버렸으면 차라리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덧. 일러스트는... 그 뭐냐, 인체 삐꾸가 좀 많이 보인 것 같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겠지요 뭐 (....)
결론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아쉬웠다는 겁니다. 다음에는 좀 더 나은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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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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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5 01:09:53 (7085일째)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파괴당하기를 거부하는 그 저항감의 강도일 것이다.
아베 코보, 타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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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2
은팔님의 댓글
<DIV>게다가 요즘 이런 류의 캐릭들이 너무 많다보니....</DIV>
Restar님의 댓글의 댓글
<DIV>학습능력따위 없어요..;;;;;</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