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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물_네타] [당신 인생의 이야기] 간단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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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어 330제 풀면서 답지의 번역된 해설을 읽는 게 그냥 영어 지문을 뇌내변환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에 빡친 나머지, 영어 공부 접고 책이나 한 권 읽었습니다. 제대로 번역된 건실한 문장을 보니 정화되는 느낌…… ㅠㅠ.

 여하튼 이 책, 학교 도서관에 들어와있길래 한 번 잡아봤는데, 상당히 재미있슴다.
 SF긴 하지만 광선총 뿅뿅! 레이저빔 발싸! 나 로봇이 반란을 일으켰드아아아! 같은 건 나오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런 걸 기대하고 잡은 책도 아니지만.
 그럼 몇줄씩만 감상을 늘어놓아보겠슴다.

 첫번째 이야기인 바빌론의 탑.
 초반 읽을 때만 해도 과연 탑을 쌓아올리던 바빌론 사람들이 맞이할 배드 엔딩을 기대하며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적어도 기원전에 세워지는 탑이 대류권을 돌파하는거나(…….) 구름이 '화강암'보다 딱딱하고, 그걸 밑에서 솥을 끓여 녹이며 올라가는 걸 보고 확실히 깨달았죠……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 소설이 아니라는 걸. 결말은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구름을 뚫고 올라갔지만 오히려 지상으로 튕겨져나옵니다. 문득 예전에 본 어느 신화가 생각나더군요. 신이었나 괴물이었나, 하여튼 인외의 존재에게 분노를 사 세계에 물이 계속 차오르고, 사람들은 세계를 꿰뚫는 거대한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 위에 세계가 하나 더 있고, 거기까지 물이 차오르자 한 번 더올라가는데 또 세계가 있고…… 즉 세계가 탑마냥 층층으로 이루어져있고 지금의 세계는 여섯번째인가 일곱번째라는 신화. 물론 이 바빌론의 탑의 세계관은 그거랑은 다르긴 합니다. 단지 하늘을 뚫고 올라가니 또다시 땅이 나왔다는 게 겹칠뿐.
 여담이지만 탑에 대한 묘사나 올라가면서 달라지는 풍경의 묘사가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보고 있는 제가 대류권을 뚫고 솟아있는 탑 한가운데에 서있는 느낌. 특히 탑의 아래쪽도 사라지고 위쪽도 아직 보이지 않는 높이가 제일 무서웠습...

 두번째는 '이해'인데… 사실 이건 저랑 코드가 좀 안 맞았습니다.
 게다가 여기에서까지 능력자 배틀물(?)을 보고싶진 않았어요! ㅠㅠ 

 세번째는 영으로 나누면.
 미리 말해두자면 저는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수학이 굉장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한한 수 속에서 규칙을 발견하고, 그 속에 세계를 이루는 근간이 있다… 멋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단편은 이 전제를 통째로 박살냅니다. 수학은 모순된 체계이며, 거기서 발견된 법칙은 모두 환영에 불과하다. 여주인공은 이것 때문에 멘탈이 완벽하게 붕괴해버립니다. 믿고있던 세계 모두가 통째로 무너져내리는 감각은… 솔직히 저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군요(…….)
 아, 그리고 마지막에 챕터명이 9a=9b로 바뀌며 '0'을 의미할 때는 좀 부왁! 했습니다.

 그 다음 단편… 아니 중편은 이 책에세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책 제목이 이 단편 제목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SF의 단골이라 부를 수 있는 외계인이 나오는 편인데, 주인공 루이즈는 바로 이 외계인에 대해 연구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딸이 자라나는 이야기가 겹치는데, 처음에는 '뭔 상관이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중에는 점차 이해가 되더군요. 여주인공은 외계인의 독특한 문자 체계를 연구하고 배워나가면서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점차 달리하게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뭔가 괴물이 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편입니다. 약간 운명론쪽으로 기울긴 합니다만,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함다. 중간에 이 세계 인식의 변화에 대해 '빛'이 수면에서 꺾여서 움직이는 것과 페르마의 정리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 나오는데 덕택에 이해가 좀 쉬워졌슴다.
 저만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시계열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딸에 대한 이야기가 회상 형식으로 들어가다보니 루이즈가 언어 연구를 하는 것은 딸이 죽은 다음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언어 연구를 하는 것이 바로 시작입니다. 아무래도 작가 양반이 일부러 그런 것 같아요. 주제가 주제다보니…. 끝부분 쯤에서 이거 깨닫고는 우왕쿡!
 어쨌든 굉장히 재미있었슴다. 작가분의 이해가 돋보였으요.

 '일흔 두 글자'는 의외로 클리셰틱한 부분이 많이 나왔습니다. 자동인형이나 언령으로 움직이는 세계 같은 것 말이죠. 다만 작가 분이 이 클리셰틱한 소재들을 워낙 잘 이용해놔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했습죠. 그리고 여기서 새삼스럽게 작가분의 방대한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사실 보기 시작했을 때는 과연 이 연구가 어떻게 파국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기대감(…….)에 두근거렸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도 생명 가지고 놀다가 패망하는 인간들이 많다보니 여기서도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런데 난자에 '자명의 언령'을 써놓으면 사실상 사람을 복사하는 게 아닌가요? 이 세계관에서는 임신하고 있는 여자가 둘러싼 환경이나 어떤 생각에 하느냐가 태아의 성격과 형태에 대단히 큰 영향을 주고, 그것으로 인해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태어날 거라고 믿는 모양인데…; 과연……;

 인류 과학의 진화는 무시무시하게 발전한 인류가 '신인류'를 만들어내고, 구인류가 신인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좀 짧긴 해도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게 많은 얘기였슴다.

 그리고…… 대망의 '지옥은 신의 부재'입니다만, 이것도 저랑은 조금 코드가 안 맞는 모양입니다. 신과 기적이 존재하는 세계, 그리고 그 기적으로 인해 아내를 잃은 남자, 그로 인해 고뇌하고 절망하다가 최후에 얻는 구원과 지옥으로의 추락까지, 굉장히 몰입하면서 볼 수는 있었습니다만 그 뿐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고, 독실한 신앙과는 연이 없는 인생을 살아오다보니 주인공이 마지막에 얻는 신앙에 대한 깨달음이 저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오히려 깨달음을 얻기 전의 주인공의 깊은 고뇌가 좀 더 와닿았는데……. 그래도 '신은 의롭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고, 자비롭지도 않다.'는 구절이나 타락천사들이 하는 말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떠오르는 건 많았는데, 그런 걸 쓰면 너무 길어질 것 같군요.
 이건 진짜 덤입니다만, 주인공의 아내인 '사라'는 정말 훌륭한 종교인이고 제대로 된 성인입니다…. 주인공이 아내를 잃고 왜 그리 괴로워하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마지막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 이건 정말 흥미로운 챕터였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니 더더욱.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만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 발명되고, 그것을 의무화해야하는가 의무화 하지 말아야하는가에 대해 첨예한 대립이 벌어집니다. 찬성도 반대도 이해되고 ── 중간에 나온 미용&성형 회사들의 원색적인 비난과 물타기용 광고만 빼면요 ── , 정말 그럴듯하게 이야기가 풀어져나갑니다.
 다만 저는 이 의무화에는 조금 반대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 기술의 의무화는 외모지상주의의 타파를 부를 수도 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굉장히 효과적인 기술이며, 어쩌면 '사람의 외모가 아닌 내면을 보는 사랑'이 가능해질 수도 있지만, 역시 그렇다고 해도'사람의 아름다움'을 원천적으로 틀어막아버리는 건 좀 안타깝군요. 작중에 나오는 말대로 이런 식의 원천 봉쇄는 진정으로 '성숙'해진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뭐, 그렇다고 해서 '외모는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고전적인 가르침이 인간의 성숙을 부를 가능성도 낮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사람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맞서기라도 하듯, 사람의 외면적인 매력이나 카리스마를 증폭시켜주는 기술도 나오더군요. 그로 인해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 히틀러급, 마틴 루터 킹급의 설득력과 카리스마를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의무화에 대한 투표 결과까지 뒤집힙니다. 몹시 섬뜩한 장면이었습죠. 하기사, 사람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을 강화해줄 기술을 못 만들 리는 없겠지. 그리고 이 기술로 인한 타메라의 깨달음도 인상적.
 여하튼 이 마지막 편은 굉장히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더군요. 다른 건 몰라도 이 편만은 꼭 봐야한다고 생각함다.
 그리고 승리자는 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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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1 14:54:17 (5801일째)
쩜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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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Euphratic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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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오, 오오!! 드디어 제목을 찾았습니다!! 이 책이 제가 군대에서 읽고 다시 읽고 싶엇지만 제목을 잊어 지금까지도 찾지 못햇던 책이었습니다!!! Wryyyyyy!! 이야, 이런 식으로 찾게 될 줄이야. &nbsp;&nbsp;<div>&nbsp;바빌론의 탑, 생각나네요. 하늘을 깨고 나니 물이 쏟아지면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던가요. 덕분에 이 책을 다시 찾아 읽을 수 있게 되엇네요. 감사합니다.&nbsp;</div>

은팔님의 댓글의 댓글

행인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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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게시판을 흝다 생각치도 못한 소득.jpg 인 상황인가요. 이런식으로 자신이 찾던가 찾으면 매우 기쁘죠. 하여튼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네요. 오랜만에 라노벨이나 판타지소설을 제외한 책을 읽고 싶어진달까. 하지만 도서관까지 가기 귀찮으므로 패스..

H소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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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해'에서 능배물의 참맛을 깨달았었..제가 그 책 읽을 때만 해도 그쪽을 별로 접하지 못 했었으니까요. 다만 결국 그 결말이 작품의 제목인가? 싶은 게 있었는데 뒤 후기를 보니 '이거 여러번 거절당하고 개작한 작품임'해서 아아 했었죠.<br>

<br>

영으로 나누면은 신학적 느낌을 받았었고<br><br>제가 꼽은 탑 2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지옥은 신의 부재였죠. 지금 읽으면 또 달라지려나? 외모 지상주의..는 소재는 재미있지만 이야기로서는 뭐..단편이니까요. 지옥은 신의 부재는 진지한 신앙 고백 혹은 종교에 대한 블랙 코미디 양쪽 다 될 수 있는 이야기였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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