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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물] <엔딩 이후의 세계>: 상업성과 플롯의 타협

본문

 블로그에 쓴 글을 복붙해서 어조가 쌍스럽습니다.(...) 양해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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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딩 이후의 세계>는 한국산 라이트노벨은 물론이고 일본산 라이트노벨까지 통틀어도 가장 잘 만들어진 라이트노벨 중 하나이다. 내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세 가지인데, 셋 다 정말 간단한 이유이다.


 (1) 독자를 만족시키려 노력한다.

 (2) 캐릭터를 살리는 데 유념한다.

 (3) 플롯을 짜는 데 고심한다.


 (1)번은 상업성을 달성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해내야 하는 사항이겠다. 여기서 언급하고픈 게 있다. 독자를 만족시키는 게 '재미'라는 말로 표현된다면, 사실 '소설'의 재미란 라이트노벨 독자가 기대한 재미와는 전혀 별개일 수 있다. 솔직히 소설의 재미는 (2)와 (3)에서 비롯한다. <엔딩 이후의 세계>와 류세린이 쓴 다른 글 <당신과 나의 어사일럼>을 언급하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나는 여기서 왜 <엔딩 이후의 세계>가 잘 만들어진 라이트노벨인지를 (2)와 (3)의 요소를 분석함으로써 말해보려 한다. 먼저 (1)번 요소가 왜 라이트노벨에서 그토록 중요한지를 간략하게 언급할 텐데, 이걸 언급함으로써 미소녀 및 오타쿠적 요소가 소설이라는 매체와는 전혀 별개의 사항이라고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다. 이러한 주장에는 많은 이가 동조하리라고 생각하며(별 주장이 아니니까) 따라서 좀 쓰잘데기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에선 1의 결과로 왜 캐릭터와 플롯이 서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지, 또 둘이 분리됨으로써 왜 소설의 주제 자체가 설득력을 잃는지를 논하겠다. 요컨대 작가 류세린이 어떤 문제 지점에 서 있는지를 그려보겠다. 마지막으로 3에서는 캐릭터와 플롯이 분리되는 결과를 최대한 무마하려면 어떤 플롯을 고안해야 하는지를, 류세린의 글을 모범으로 삼아서 제시해보겠다.



 1

 '(1) 독자를 만족시키려 노력한다'라는 요소가 소설의 재미와는 따로 노는 국밥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소설의 핵심을 캐릭터+플롯이라고 말할 때――왜 그러한지는 귀찮으니까 논하지 않겠다――미소녀라는 외관적 특징은 캐릭터+플롯이 못 되기 때문이다.


 외관적 특징이 캐릭터+플롯으로 거듭나려면 이 특징 자체가 캐릭터의 핵심이자 플롯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가령 미녀로 태어났기에 온갖 불행을 겪으며 성장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라이트노벨은 이런 방식으로 미소녀를 다루진 않는다. 한 라이트노벨을 잡아서 문장과 대사는 전부 털어내고 글의 뼈대만 잡는다고 해보자. 그 뼈대는 미소녀라는 특징이 있든지 없는지 상관없이 유지된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나 <개와 공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서 미소녀라는 특징을 털어낸들 글의 뼈대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스즈미야 하루히라는 캐릭터에게 핵심적인 요소는 '비일상적인 것을 기대하고 자신이 기대한 바를 직접 얻으려 한다' 등의 특징이고 바로 그 특징이 플롯으로 이어진다. 스즈미야가 예쁜가 못 생겼는가는 플롯에서 작동하지 않는 요소인 게다. 이와 달리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는 어떨까? 여기선 여자 주인공 라일라가 아름답다는 사실은 플롯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라일라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은 그녀를 욕망하고, 라일라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려 한다. 이 욕망과 도주가 <황금 물고기>의 플롯이다. 이 이야기에선 라일라가 미소녀라는 요소를 뺄래야 뺄 수가 없다.


 이처럼 캐릭터의 핵심을 이루고 플롯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상, 소설에서 미소녀라는 요소가 굳이 강조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라이트노벨에서 미소녀가 강조되는 이유는 소설 바깥의 요소라는 뜻인데, 이거야 다들 아는 사실이지 않는가. 매체와 전혀 상관없는 요소가 강조되는 이유야, 내가 생각하기로는, 엔터테이먼트밖에 없다. 엔터테이먼트는 말 그대로 오락이고 여흥이고 위로이다. 독자들이 예쁜 애들 보고 싶으니까 예쁜 애 넣는 거지, 소설에서 예쁜 애가 없으면 안 되기에 예쁜 애들 기용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뭐 되게 미소녀라는 요소를 나쁘게 씹어대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는데, 씹는 거 맞으니까 안심하시라. 미소녀라는 요소가 라이트노벨에서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독자뿐만이 아니라 작가들도 이 요소를 즐기는 덕분이다. 그럼 달리 생각해서, 만약 어떤 작가 A가 미소녀라는 요소를 즐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라이트노벨 때려쳐." 이렇게 대답하는 건 쉽다. 그런데 만약 작가 A가 꼭 라이트노벨을 쓰고 싶어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천만다행으로, 그 작가가 그나마 미소녀라는 요소는 좋아한다고 쳐보자. 문제는 라이트노벨에서 소설 외적인 요소가 미소녀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요소는 하렘이 될 수도 있고, 츤데레가 될 수도 있고, 개그가 될 수도 있고, 암튼 다양하겠지. 그중엔 많은 독자가 지지하는 요소도 있고 적은 독자만 지지하는 요소도 있겠고. A는 그중에 미소녀라는 요소는 받아들이고, 몇몇 요소들은 거부하고, 또 무진장 적은 독자만 지지하는 특정 요소 x를 무진장 좋아한다.


 A에게 요소 x는 참 소중하다. 어느 정도로 소중하냐면, 그 요소 x가 캐릭터의 핵심이 되고 플롯의 원동력이 될 정도로, 즉 글을 쓰는 이유이자 목적이 될 정도로 소중하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대다수의 독자는 x를 지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A에게 "야, 그건 라이트노벨스럽지 않으니까――상업적이지 않으니까――글 속에 집어넣지 말지 그래?"라고 말한다면 그건 A의 귀에는 "야, 너가 쓰고 싶은 캐릭터 버리고 플롯도 버리지 그래?"라고 자동적으로 번역될 것이다.


 이제 문제가 발생한다. "x를 버릴 것인가 살릴 것인가?" 이 물음은 A의 귀에는 이렇게 번역된다: "상업성과 타협할 것인가 말 것인가? 또 타협한다면 어느 정도로, 타협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로?"



 2

 지금 A에게는 대체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상업성과 타협한다는 건 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우리의 작가 A가 "x를 어느 정도 버리자"라고 결정했다고 가정하자. 프로 라이트노벨 작가다운 결정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많이 지지하는 요소들, y, z 등을 최대한 수용했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상업성을 받아들인 걸로 나타나고, 소설 내부적으로는 캐릭터와 플롯이 분리되는 걸로 나타난다.


 라이트노벨 독자들이 많이 지지하는 요소 y 등은 대부분 캐릭터와 관련되어 있다. 하렘이니 츤데레니 뭐니 다들 알잖어. 따라서 y 등을 수용한다는 것은 곧 'y 등의 요소에 따라서 캐릭터들을 창작한다'라는 말이 된다. 츤데레니 뭐니 하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 만담이니 개그스러운 문장을 집어넣는 거다.


 그런데 애당초 작가 A가 그리고 싶은 플롯은 y 등과는 별개로 있다. 가령 그는 "자신의 목적을 너무 빠르게 이루어낸 바람에 많은 것을 무시해버린, 따라서 이제부터 그 많은 것을 하나씩 채워나가야 하는 소년"이라는 캐릭터+플롯을 쓰고 싶다. 이러한 캐릭터와 플롯에 츤데레니 뭐니 하는 요소 y 등은 전혀 상관없는,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다.


 이제부터 이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A는 자신이 그려내려 한 캐릭터+플롯에 덧씌워야 한다. 결과물은 간단하다. 이야기엔 정작 쓸모가 없는데도 히로인이 츤데레가 되어버리고, 주제랑은 전혀 상관없는데도 문장이 개그스러워진다. 라이트노벨 독자들이 흔히 작품을 감상하고는 "캐릭터가 붕 떠 있다" "캐릭터가 억지스럽다"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런 반응이 y 등의 요소가 소설에 덧씌워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라이트노벨 작가들한테도 성향과 수준이라는 게 있어서, 저렇게 y 등의 요소가 소설과는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도 있고 못 깨닫는 사람도 있다. 못 깨닫는 사람은 어차피 글을 더럽게 못 쓰는 작가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 내가 관심 있는 부류는 저 이질적인 걸 깨닫는 작가들인데, 일단 깨닫고 나면 작가들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겠는가? 여러 해결책이 있을 수 있겠는데,


 -1. 완전 타협: 소설에서 아예 플롯을 삭제해버린다. 오직 y 등의 요소로 점철된 캐릭터들만 밀고 나간다. 아오이 세키나의 <헤키요 고요 학생회 의사록> 시리즈가 이런 경우겠다. 이 사람은 아예 플롯에 해당하는 부분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만 국한시키는, 정말 상상도 못할 짓을 저질렀는데, 그게 잘 먹혔는지 안 먹혔는지는 둘째치고 아무튼 이질성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식이겠다.

 이게 이른바 상업성과 완전히 타협하는 방식인 것 같다. 근데 플롯을 포기한다는 건 소설가임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므로, 아오이 세키나 같은 글쟁이를 가리켜 '소설가'라고 부르기보다는 '엔터테이너'라고 부르자. 라이트노벨인데 뭐 어때. 정체성 따윈 버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


 -2. 작가로서의 쫀심 지키기: y 등의 요소가 어떻게든 캐릭터+플롯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하게끔 만든다. 말하자면 작가가 쓰고픈 캐릭터+플롯의 요소 x와 그닥 쓰고 싶진 않지만 아무튼 집어넣어야 하는 요소 y를 융합하겠다는 작전인데, 대부분의 라이트노벨 작가가 선택하는 길이기도 하며, 따라서, 매우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라이트노벨 작가가 실패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다루려는 류세린의 <엔딩 이후의 세계>도 여기에 속한다. 사실 <당신과 나의 어사일럼>은 더더욱이나 여기에 속하는데……쩝. 어쩌겠는가. 시드노벨이 택하지 않아준 것을. 참고로 <소나기x소나기>밖에 보진 않았지만 시드노벨의 류작가도 이 부류.


 -3. 중도: 많은 작가들이 처음엔 2번으로 가다가 엉뚱하게 1번으로 빠지고, 또 처음엔 1번인듯 하다가 나중에 부랴부랴 2번을 시도하거나 하는데, 이 경우 치고 성공한 라이트노벨을 아직까지 보진 못했다.


 -4. 허장성세: y 등의 요소가 캐릭터+플롯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할 뿐만이 아니라 아예 x 등의 요소를 배제해버린다. 무슨 뜻이냐 하면은, y 등의 요소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고서 이걸 플롯으로 사용하기까지 한다는 거. 사실 2번 작전이 성공하면 4번이 되는 것도 같은데……둘을 구분할 수는 있다. 4번 같은 경우엔 잘 생각해보면 소설에서 주제랄 게 없다. 그런데도 뭔가가 있어 보인다.(...)

 바로 이 '있어 보임'이 4번에선 중요하다. 분명히 캐릭터도 있고 플롯도 있는 것 같은데 주제가 없다. 왜냐하면 y 등을 최대한 멋지고 예쁘고 매력적으로 펼쳐내는 게 작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캐릭터도 적당히 멋져 보이게끔 서술하고, 그러면서도 얼 빠진 모습도 보여줘야 하고, 히로인들도 때로는 천진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보여야 하고(←요게 중요하다)……. 내가 보기엔 <바케모노가타리>가 이 경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2번 노선을 선택하면 결과적으로 4번 노선으로 빠지게 될 경우가 제법 있을 법하다. 혹은 1번 주제에 4번처럼 보이려고 <학생회>처럼 무리할 수도 있고.

 독자들은 4번 글을 보고 "이야말로 상업성과 소설성이 잘 결합된 모범적인 사례다"라고 칭찬할지 모르겠는데, 사실 그 반대이지 않을까 싶은데... 왜냐면 주제에 아무런 알맹이가 없으면서도 y 등의 요소를 적당히 꾸미고 입혀서 사람들을 속이는 짓 같다. 물론 이 속임수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사실 라이트노벨 독자들은 저런 속임수를 강렬하게 원하는 것 같다. 플라톤이 맞다고! doxa야 doxa! (...)


 -5. 승화: 만약 A가 4번을 속임수라고 느낀다면, 또한 독자들을 속이는 것은 싫다고 생각한다면, A는 2번을 끝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x와 y를 결합시키고, 따라서 주제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뿐만이 아니라 재미있게 전달시키려 할 것이다. 죄송하지만 이 5번은 거의 이상적인 목표입니다.(...)

 이 5번을 달성했다면 그 글은 더이상 라이트노벨이라고 부르기엔 죄송할 지경일 것.

 5번을 달성할 뿐만이 아니라 아주 엄청나게 훌륭하고 겁나게 깊이 있고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달성했다면 <일리아스> 만한 작품이 될 텐데――지금 내가 <일리아스>를 꺼내드니까 시껍한 당신! 그렇다. 시껍할 정도로 드문 예다. 가령 <일리아스> 10권에서 오뒷세우스랑 디오메네스가 트로이군 진영에 잠입해서 활극 치고 나오는 파트 있잖아. 그거 플롯이랑 전혀 상관없지. 일종의 팬 서비스에 해당하는 파트.


 그리고, 좀 조심스럽긴 한데, 난 <당신과 나의 어사일럼>이 비록 5번에는 전혀 다다르지 못했다고는 해도――이건 비난조가 아니다――적어도 5번을 목표한 흔적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센스 있는 방식으로. 이 센스 넘치는 방식이란 애시당초 플롯을 라이트노벨스럽게 설계하는 것이다.


 이걸 5번이라 부르기엔 분에 넘칠 뿐더러 경우에 맞지도 않으니, <엔딩 이후의 세계>와 <당신과 나의 어사일럼>을 묶어서 2번이 성공한 경우라고 말하겠다. 즉, 애당초 플롯을 라이트노벨스럽게 설계함으로써 y 등의 요소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만드는 수법.



 3

 이쯤 되니까 글 쓰기 귀찮다. 내가 뭐 얻을 게 있다고 이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왜 글을 쓰는지를 생각하면 더 글을 못 쓸 것 같으니까, 얼른얼른 요지만 전달하겠다.(...)


 <당신과 나의 어사일럼>은 감금과 탈출이라는 플롯을 선택했다. 탐정물과 게임물 비스무리한 요소를 사용하여. 감금과 탈출이라니까 영화 <빠삐용>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그거랑은 전혀 다른 의미에서 감금과 탈출이다. 즉 주인공을 감금시킨 대상을 전면적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주인공이 그 대상과 게임하고 협상해야지만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그런 의미로 감금과 탈출 플롯을 썼다는 거다.


 이게 왜 라이트노벨스러운 플롯 설계냐면, 이렇게 등장인물과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대립시키는 구도를 만들어놓으면, 당연히 등장인물과 상대방이 서로 면대면으로 대화하고 승부하는 장면들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장면들이 플롯의 일환이니까.


 Q: 캐릭터들이 서로 전면적으로 마주하는 상황들이 많아진다는 것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A: 캐릭터들을 노골적으로 부각시킬 기회가 아주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말하자면 캐릭터들이 서로 승부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지닌 개성이나 재미난 점을 유감 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보통 라이트노벨에선 저런 개성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좀 억지스러운 장면들을 구상해낸다. 왜 캐릭터들이 말도 안 되는 것 가지고 유치하게 싸우거나 엉겨붙거나 하는 장면 많지 않은가. 라이트노벨 독자들이 보통 "만담"이라고 부르는 것들. 그런데 이 만담이라는 것이 소설의 전체적인 플롯과 어울리지 않으면 좀 뜬금 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부작용도 있는데, 한참 만담하다가 갑자기 캐릭터들이 진지해지면――요컨대 소설의 본 궤도, 플롯으로 캐릭터들이 옮겨타면――저런 진지한 부분까지도 영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토끼 잡으려다 사슴 놓친 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류세린은 플롯에서부터 캐릭터들이 서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만들어놓고, 그 상황들 속에서 캐릭터들이 각자 매력을 발산하게끔 했다. 이게 세련된 방식이 아니면 뭐겠는가. 덕분에 만담 파트나 플롯 파트가 서로 이질적이지 않고 잘 섞여 있고, 결과적으로 y 등의 요소를 대폭 끌어안은 캐릭터들이 플롯과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여기사가 부녀자라서 은사자 백작을 배반했다는 건 진짜 무리수였지만. 그거 빼고는 딱히 지적할 부분이 없는 듯하다)


 <엔딩 이후의 세계>도 마찬가지.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 엔딩에 도달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건 무척 매력적이다. 소설 내내 신경써야 할 플롯이라는 거대한 축을 뒤로 제쳐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미 끝나버린 플롯'을 기준으로 해서 캐릭터들은 창작되었는데, 덕분에 용사니 전사니 하는 캐릭터들이 "왜 그들이 용사이고 전사인지"를 보여주는 플롯이 없는데도 용사나 전사로 성립하고 있다.


 말하자면 패러디물이다. 타입문이나 조아라에서 쓰이는 많은 패러디물을 떠올려보자. 패러디 작가들에게 가장 유리한 점은 그들이 캐릭터들을 성립시키기 위해 플롯을 고안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플롯이 완성되어 있고, 자신들은 그 플롯에 덧씌워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그만이니까. 따라서 플롯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캐릭터들을 마음껏 활개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있다.


 이건 고대 비극에서도 사용한 방식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은 호메로스나 여타 신화 작가가 만들어놓은 플롯의 지꺼기들, 혹은 호메로스가 말하지 않은 여백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만든다.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에서 아가멤논이 누구고 캇산드라가 누구고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누구인지, 뭐 작중에서 소개가 되나 묘사가 되나. 다들 그 캐릭터들을 알고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를 봐보자. 누구나 헬레네를 알고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헬레네의 캐릭터를 성립시키기 위해 별다른 공을 들일 필요가 전혀 없지. 이미 성립되어 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되니까 이게 얼마나 신나는 작업인가. 정말,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들> 봐보자. 솔직히 너무하지 않는가? 플롯 그딴 거 전부 배경에다가 처넣었다. 그냥 멋있는 장면들이랑 멋있는 캐릭터 한명 보여주고 끝난다. 그런데도 플롯이 느껴진다. 왜냐면 읽는 독자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후맥락을, 플롯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엔딩 이후의 세계>는 자기 자신을 패러디한 경우... 한국어로 뭐라 표현해야 할지 좀 모르겠으니까, Self-parody라고 이름 붙여두자.


 류세린이 그리스 비극 작가들과――둘의 수준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오해하지 말아주라――경우가 똑같지는 못하다. 그리스 비극 작가들에게야 호메로스가 있었지만, 류세린에겐 자기 자신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류세린은 작중 군데군데에서 '이미 끝난 플롯'을 언급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솔직히 그 방법밖에는 없지 않나 싶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류세린이 캐릭터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y 등의 요소를 아낌없이 내보이면서도 동시에 플롯에 해를 가하지 않는 방식을 고안했다는 점이다. 그게 잘 성공했는지 안 했는진 둘째 치고, 아무튼 좋은 의미로 기가 막힌 방법 아닌가.


 여기에 더해서 류세린은 y 등에 해당하는 츤데레 같은 요소를 캐릭터의 핵심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왜, 그 희진인가 하는 소꿉친구……사람 이름에 자신이 없습니다……가 츤데레지 않는가. 1권의 주요 스토리는 바로 저 츤데레에서 비롯한다.


 2권에선 히어로라는 주인공의 정체성에서 플롯이 비롯하고.


 3권에선 부잣집 딸내미라는 미연쓰……죄송, 캐릭터 본명은 기억이 안 납니다(...)……의 y 요소에서 플롯이 비롯하고.


 나는 이처럼 플롯을 배후에 깔아두고그럼으로써 캐릭터들의 성격을 구성해놓은 채그런 캐릭터들이 개성을 발휘해가며 활극을 펼쳐나가게끔 하는, 따라서 플롯과 캐릭터 사이의 이질성이 안 느껴지는, 류세린의 이런 전략이 다분히 의도된 거라고 생각한다. 끗.



 0

 ――이라고 끝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가치평가는 하자. 맨 마지막에 평가 없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니되 아니면서도 아니고 아니니까.


 근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류세린 작가를 칭찬할 수밖에! 내가 여기서 '칭찬'이라는 낱말을 쓴 건 순전히 작가 본인이 계면쩍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사실 '찬사' '격려' '경탄' '감탄' 등의 수식어를 넣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라이트노벨 작가 중에 저만큼 의식적으로 캐릭터와 플롯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없음이 분명하다. 없다.


 솔직히 <엔딩 이후의 세계>보다는 개인적으로 <어사일럼>이 더 세련된 라이트노벨이라고 보는데... 그거야 내 개인적인 판단일 수도 있으니까... 그냥, 하고픈 말은, 이거다.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바에 따라 류세린 작가는 잘났다. 아주 좋은 의미로 잘났다.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자로선 그가 더욱더 잘나게 되기를 바란다.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이 라이트노벨에도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어떤 정점이란 게 있을 수 있다면, 류세린과 같은 작가가 그 정점을 보여주기를 작게나마 기대한다.



 참. <당신과 나의 어사일럼>은 조아라에서 찾아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 타입문넷이니까 덧붙이는 말이긴 한데, 지금 창작게시판에서 연재되는 <에로게의 세계에서 조연이 되었습니다>도 추천합니다. 자기를 패러디하는 방식처럼 루프하는 플롯도 캐릭터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도 매번 개성을 발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라노벨스러운 형식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뭐냐면: 민지가 귀여움 민지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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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8

떠돌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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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설에 감탄하고 있다가 마지막줄만 남고 표백됐다.<div>민지는 귀엽죠. 저도 좋아합니다.<img src="http://www.typemoon.net/skin/board/mw.basic.review/cheditor/icons/em/18.gif" style="width: 50px; height: 50px; margin: 1px 4px; vertical-align: middle; " border="0" alt=""></div>

만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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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줄은 저도 동감 민지는 귀엽죠.<br>

레존드달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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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ike>이사람들이 딴 감상을 내뱉고 있어....</strike><br>

사심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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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래도 마지막 문장은 이해할수 있었어요.....ㅜㅜ</DIV>

<DIV>중요한 것은 이해할수 있었으니까, 괜찮을지도. </DIV>

Brunestud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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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눈에 쏙쏙 들어오는 감상문 잘 봤습니다. 1234로 분류해놓은 방식이 우왕.. 저 엇비슷한 생각만 해보았을 뿐이고&nbsp;정리해보진 못했는데, 이 글을 보면서 단번에 정리가 되는군요. 어사일럼도 재밌었지만 될만한 부분에서 끊겼기 때문에 엔딩의 이후의 세계는 사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까 사고 싶어졌습니다.</DIV>

<DIV>&nbsp;</DIV>

<DIV>4번 니시오 이신에 대한 평가도 극히 동감.. 근데 이 작가는 x가 없는게 아니라 본인을 문장가라고 말하고 다닐만큼 플롯이나 주제에 별 관심없고 '문장'을 꾸미는걸&nbsp;(대표적으론 의미를 중의적으로 만들기)&nbsp;최우선으로 여기는거 같습니다. 전작인 헛소리꾼 시리즈 1권인 잘린머리 리사이클을 예로 들자면 '뒤바꾼다'라는 키워드 하나를 위해 소설 전체를 쓴듯한 느낌이 팍팍 들거든요. 바게모노가타리도&nbsp;대동소이...&nbsp;</DIV>

<DIV>이 인간 글을 보면 1.&nbsp;가지고 놀만한 문장이나 키워드를 생각해낸다&nbsp;2. 캐릭터를&nbsp;만든다 3. 캐릭터에 따라 적당히 플롯을 만들어낸다. 순으로 글을 쓰는게 보인다니까요. 그러니 공장장이 가능한 거겠지만서도.</DIV>

혁월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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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사실 전 이런 류의 소설보다는.. 전파적그녀라던가... 쿠레나이라던가... 몬스패닉..? 뭐 그런류가 재밌더라구요.. 그런류 있음 추천좀 부탁요.. 쪽지로라도..</DIV>

모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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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 특정 요소 x....고민 되는 부분이네요. 그것과 타협하느냐. 포기하느냐. 5가 됐으면 좋겠는데요.

카르나스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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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엔딩 이후&gt;는 한국인이 쓴 라이트노벨 중에서도 특별히 쳐주고 있었는데, 논평하신 글을 보니까 어느 정도 공감이 가네요(<STRIKE>말인즉슨 어느 정도는 이해를 못했...!</STRIKE>).</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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