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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_네타] [사울의 아들] 아우슈비츠를 간접경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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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에게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물어봅시다. 유태인 600만명 죽은 데 아니야? 라는 대답이 나올 수도 있고, 혹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쉰들러 리스트] 등의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유태인들이 겪은 참담한 환경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 영화들이 전해준 감동과 영웅적인
인물들에 대해 논할 것입니다. 스크린을 통해서 아우슈비츠를 접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곳을
이미지화 하면서 아우슈비츠를 드라마를 쌓아 올리기 위한 배경 정도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이런
이유 탓에 [쇼아]의 감독 클로드 란즈만은 아우슈비츠를 영화화
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사울의 아들]은 란즈만 감독의
주장에 반하는 동시에 독특한 연출을 통해 그의 정신을 계승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4:3 비율의 스크린이 눈에
들어옵니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한 시선을 향해 남자가 다가옵니다.
카메라는 그제서야 초점을 되찾고 180도 회전해 영화의 주인공 사울을 비춥니다. 카메라는 이때부터 사울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그의 시각과 청각을 관객에게 공유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울이 보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을 들으며, 그의 행동을
강박적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사울은 존더코만도(시체처리반)입니다. 그들은 동포들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하면서 몇 개월의 생을 더 연장 받습니다.
카메라는 묵묵히 사울을 따라다니는데, 이때 인상적인 것은 존더코만도로서의 작업을 하는 사울의
표정과 시선입니다. 동포들을 가스실로 들여보낸 후 카메라는 그들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울의 얼굴을 비춥니다. 스크린 밖에서는 유태인들의 비명소리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사울의 표정은 못이 박힌 듯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처형이 끝난 후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를 정리할 때 조차 그의 얼굴은 무덤덤합니다. 이때 카메라에 비치는 시체더미는 초점이 맞지 않는 듯 흐릿하게 보입니다. 사울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외면한 채 이 지옥을 부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관객에게 아우슈비츠를
간접경험 하게 하는 영화의 태도와 닮아있습니다. 네메시 라슬로 감독은 시각과 청각을 제한함으로써 관객이
섣불리 아우슈비츠를 이미지화 하는데 제약을 겁니다.





사울이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은 한 아이의 죽음을 보았을 때입니다. 가스실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아이를 독일 의사가 질식사 시킬 때 사울의 얼굴에는 예전에 죽었을 터인 표정이 스쳐갑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목표는 랍비를 찾아 아이에게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는 것입니다. 영화는 사울의
행동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아이가 정말로 사울의 친아들인 조차 알 수 없기에 관객은 사울에게
쉽게 공감할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그의 행동은 가장 비도덕적인 장소에서 이뤄지는 일말의 양심일 수도
있고, 동포의 죽음을 묵인했던 존더코만도로서의 속죄일지도 모릅니다. 카메라는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객에게 지켜보게 함으로써 판단을 떠넘깁니다.





[사울의 아들]은 분명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선정적인 장면은 오히려 적은 편이지만 영화가 풍기는 분위기와 사운드는
잔혹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영화는 분명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기꺼이 여러분을 이 지옥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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