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_네타]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헤븐즈 필 감상 뒤 남은 건.............음몽? 엉덩이??

2017.11.1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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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상영을 보고나니 버스가 끊겨서 택시로 집에 와야 했습니다.
젠장, 상영관이 역이라 혼잡해서 차를 두고 간게 되려 독이 되었네요;
여하튼 어찌어찌 헤븐즈 필 극장판을 봤습니다.
가오갤 2때부터 봐야지봐야지만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 상영들을 싸그리 놓쳤는데 몇개월 만에 겨우 한편 봤네요.
가장 근래 봤었던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걸즈 앤 판처였던가 너의 이름은이었던가...여하튼 간만에 일본산 애니 극장판을 극장에서 봤군요.
뭐, 소감은 여러 회원분들이 이미 감상게에 많이 올리셨으니 구구절절한 스토리 묘사 따윈 집어치우고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만 열거해보겠습니다.
0. 공기가 끈적끈적하게 느껴지는 작중 분위기
뭐랄까, 말 그대로입니다.
가장 이질적으로 가장 어두운 루트를 답습하는 편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그간 유포터블이 만들었던 페이트와는 천차만별이에요.
시종일관 묵직한 분위기가 '화려한 연출과 수려한 캐릭터들, 격렬한 전투씬'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TV판에서처럼 발을 굴러대며 점점 템포를 높히려는 작품의 대전제에, 녹슨 쇠사슬을 몇 겹 감아놓곤 스스로가 질질 딸려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게 헤븐즈 필의 분위기야'하고 어필합니다.
벌써 몇번이나 봐온 페이트의 초반부 전개인데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해요.
현실의 일본에서 벌어지는 과거의 영웅들을 초환해 대결하는 소환 대전이 아니라 마치 마을에 숨어있는 도시 전설틱한 악령이라도 으스스하게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를 살풋 깔고갑니다.
프롤로그 틱한 전개임에도 화려한 전투가 몇번이나 벌어지는데 '화려하다! 멋있다! 신난다!'라는 느낌보다는 문자그대로 목숨을 걸고 상대를 처치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피와 땀에 젖은 배틀로얄 적인 공기가 어두운 밤 배경을 위주로 퍼져나갑니다.
인물들의 표정에 어려있는 감정은 투지나 결의보다는 현실감, 적의, 두려움, 증오, 광기 따위가 물씬 배어나오는 면면들입니다.
초반에 가차없이 목숨을 잃고 탈락하는 영령들의 애통한 표정이나 비탄에 잠긴 읊조림이 피카레스크 틱한 분위기 속으로 자꾸 관객의 발을 잡고 끌어들여요.
그 어떤 요소보다도 이 어두운 드라마에 제일 집중하라고 들이미는 것 마냥요.
1. 인물 작화가 묘하게 TVA와 다르다
TV상영판이랑 극장판이랑 작화 퀄리티 차이가 나는게 당연한 거 아니냐...라고 하신다면 배경 작화는 당연히 그랬다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극장판 배경 작화는 진짜 본디 고퀄 작화를 자랑하는 유포터블에서 더더욱 힘을 줘서 그렸다는게 팍팍 느껴졌고요. 헌데 인물 작화는 묘하더군요.
퀄이 구려....라는 소리가 아니고, TVA의 작화가 다소 날렵하면서도 묘하게 소년만화적인 느낌이 판타지스런 연출과 어울리는 인물들의 외견을 그려냈다면, 극장판의 인물 작화와 디자인은 좀 더 '현실적'이랄까 리얼하게 짜맞춰서 다듬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시로가 세이버와 함께 외출할 때 입는 갈색 반코트 상의의 수수한 느낌이라던가 세이버가 린이 의복을 제공하기 전까지 입고 있던 시로의 일본식 복식(기모노인지 유카타인지...)이 금발 외국인 여성이 동양 화복을 풍덩하게 걸친 탓인지 리얼하게 살짝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라던가.
뭣보다 조금 놀란 건 신지의 인물 작화였는데, 찌질한 면모는 여전히 극장판에서도 변함 없었지만 그냥 얍삽하고 얄미운 모습이 대부분이었던 UBW 방영판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에미야 시로와의 미묘한 분위기랄까, 살짝 과장하면 우정적인 애증 같은 감상을 풍기는 표정을 곳곳에서 보여줍니다.사쿠라보단 날 봐줘 에미야
차라리 시로가 감정적으로 처음부터 궁도부에 있던 시절의 신지와 치고 박았다면 어쩌면 둘의 사이는 다른 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타이가가 꺼내왔었던 앨범 장면에서 유년기의 시로와 신지가 운동회 때 같이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진이 나왔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성배 전쟁 속에서 점점 적대하게 되는 둘의 모습이 살짝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더군요. 다소 오만함에 취해있는 미역머리의 모습은 여전했지만 UBW와는 다르게 그 오만함 뒤에 여러가지 감정이 살풋 감춰져있다는 감상이 들었고 신지의 여러가지 표정은 그걸 관객에게 암시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사쿠라는......왜 보고 오신 분들이 '여신이다 여신!'이러는지 알겠네요. 진짜 예쁘게 뽑았어요.
위에서 말했던 TVA판보다 살짝 둥글어졌달까 날카로운 터치가 줄어든 맛의 작화가 되려 사쿠라가 등장할 때는 살짝 가라앉는 듯한 은은한 화사함을 연출해줍니다.
여기가 내 루트다! 하고 온 몸으로 주장하 듯이 갸날픈 목소리와 함께 그야말로 환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상적인 순종적인 여후배의 모습을 연신 보여주는데...
성배전쟁의 영령들보다 사쿠라의 존재가 더 판타지 같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신지가 시로의 집에 찾아와 사쿠라의 뺨을 때렸을 때 관객석 어딘가에서 'C8'이라는 작은 중얼거림이 들렸는데 아마 착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조켄 할아범은 작중 진행이 될 수록 왜 머리 형태가 점점 육각 주사위화 되가는지 모르겠네요.
벌레의 힘을 이용한 네모네모 인간인가[...]
2. 전투씬은 확실히 고퀄리티. 하지만 살짝 미묘한 감도?
애초에 고퀄 작화로 유명한 제작사가 극장판으로 제작했는데 '아 구렸어~'라는 말이 나오는 컷을 뽑았을리가 없겠죠.
근데 느꼈던게, 의외로 전투씬에서 엄청난 박력이라던가 새로운 놀라움을 체감하진 못했어요. 물론 'TVA판에서부터 미친 작화를 보여줘서 익숙해졌기에 그런게 아니냐' 하고 묻는다면 물론 그런 것도 아주 없잖아 있긴 한데....뭐랄까 TVA에서와는 다르게 극장판에서는 연출이나 작화에 좀 더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했다는 느낌을 준달까요.
무엇보다 특정 전투에서 느껴졌던 가장 큰 이질감이란, 빠른 공세의 교환과 함께 칼과 창이 치고받고 높은 건물과 넓은 거리를 펄쩍펄쩍 도약하는데....페이트 특유의 스피디한 무게감이랄까 영령이란 초인들의 파워가 잘 안 느껴져요.
영체인 영령들이지만 실체화를 하면 강철을 자르고 돌바닥에 족적을 남기는 물리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마력의 육체를 덧입고 싸우는데, 그 인간의 모습을 한 신체로 수십 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육신을 수십미터씩 도약시키고 쭉 뻗은 굵은 팔 다리로 바위조차 으깨버리는 완력이 역동적으로 발휘된다는 느낌을 잘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버서커와 세이버의 짧은 교전과 신지가 이끌고 나타난 라이더가 세이버에게 한방에 침몰하던 씬을 제외하면.......나머지 전투들, 특히 도심에서 벌어진 어쌔신과 랜서의 대결이 가장 그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네요.
도시의 밤거리를 도약하면서 가로등이 켜진 도로를 질주해 커다란 차량 운반용 트레일러에 올라타 단검과 창날이 교차하는 전투씬은 분명 작화에 크게 공을 들였을 것이고, 본디 뛰어난 연출력에 더욱 또 다른 시도를 가미해보려고 했다는 느낌은 분명 오는데, 뭐랄까 박력이 2%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먼저 트레일러에 올라타서 멀어지는 어쌔신을 랜서가 도로변을 질주해 따라잡는 곳에서의 속도감이라던가, 트레일러를 따라잡아 도약한 랜서가 2층 칸 부분에 척 하고 내려서는데 연출이 지나치게 가벼웠어요.
'영령 특유의 강인함 탓에 수십미터에서 떨어져도 무릎 조차 굽힐 필요 없다!' ...이러면 뭐 할말은 없는데 영체화 중도 아니고 실체화 한 상태에서 도약해 금속 구조의 차체에 뛰어올라탔는데 소리조차 제대로 안 울리고 바로 꼿꼿하게 서 있는 걸 보자니 최근 욕 먹고 있는 저스티스 리그에서의 배트맨이 날아와 착지하는 움짤 컷이 떠오르더라고요.
팬 커뮤니티에서도 '여태껏 본 배트맨의 착지 씬 중에서 최고로 멋 없고 무게감 실종이다' 라고 하는데, 랜서의 전투씬에서의 움직임도 분명 최속의 영령이 자랑하는 스피디함은 유감없이 보여주는데 반해 그에 따르는 날카로운 무게감과 빠른 격돌의 충격이 화면 너머의 관객에게 잘 전해지질 았았어요.
판타지적인 연출과 함께 영웅들이 치고 받으면서도 있을 수 없는 속도로 말도 안되는 무거운 일격을 교차시킨다....가 제가 페이트에서 느낀 서번트들 간의 백병전이었는데 이번 극장판은 이 요소를 붕 떠오른 풍선마냥 잡아챘다 놓쳤다 하는 느낌이더라고요.
환상적인 배경 작화와 맞물려서 전투씬의 분위기는 굉장히 멋졌기 때문에 그 2%의 미묘함이 더더욱 작은 가시 같은 이질감을 느끼게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구 등의 연출은 매우 멋졌던지라 다음 후속 편에서는 이 점을 좀 더 보강해서 나와주면 좋겠네요.
그리고 사족이지만, 2D 작화와 3D 작화를 잘 조율해서 화려한 연출을 하는 것이 유포터블의 장점이긴 한데 이번 극장판은 그것이 살짝 어긋나는 씬도 조금씩 보였다는게 아쉬웠습니다.
랜서가 진 어쌔신에게 심장을 뽑히고 물속으로 촉수에 감겨 끌려들어가기 전, 사체가 된 채로 구속당한 랜서의 얼굴컷은 뒤에 따라오는 마지막 독백의 아련함까지 고려하면 극장판 수준의 작화라기엔 해당 장면의 2D와 3D의 조합이 너무 어색했어요.
3. 결락된 영웅 지망자가 아닌 평범한 소년으로서의 면모
시로는 린에게 곧잘 지적당하곤 했죠. 자신보다 타인의 행복과 안위를 무조건 적으로 우선하는 너는 분명 망가진 인간이라고.
실제로 여태껏 방영된 시로의 모습은 멋있고 소년들이 동경할 만한 주인공의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어필했습니다. 처음으로 간장 막야를 투영한 쿠즈키와의 전투나 고유결계 속에서의 아쳐와 벌인 존재 증명 대결은 그 절정이었죠.
헌데 이번 헤븐즈 필에서의 시로는 주인공 보정을 받아 움직이는 소년 주인공! 이라기보다는 순수하고 어리숙한 소년으로서의 면모를 더 많이 보여줍니다.
타이가에게 부끄러운 점을 지적 당할 때마다 얼굴을 붉히고,
남을 좀 지나치게 도와주긴 하지만 그 외엔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자신을 돌봐주러 찾아오는 친구의 여동생과 교류를 할 때마다 여러가지 감정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 소녀에게 점점 두근거리는 마음을 자각하고 그것이 커져나가는 것을 자각하기 직전의 사춘기 틱한 분위기도요.
어둡고 일정 수면 위로는 떠오르질 못하는 작중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면모나 소년 소녀 간의 살짝 드러나는 연심은 관객에게 일말의 부드러운 감상을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불안감 또한 키워줍니다.
어떤 비극적인 폭탄이 터져서 이 얼마 안되는 따스함이 날아가버릴지 자기도 모르게 불안해지거든요. 이건 극장판에게 손뼉을 쳐주고 싶은게 원작을 플레이해서 해당 루트의 스토리를 다 아는 관객조차도 그러한 분위기에 취하게 만들어주려는 제작진의 열의가 보이는 듯 했어요.
그리고, 시로가 세이버와 외출했다가 귀가 할때마다 계속 상처를 입어서 돌아오는 것을 걱정한 사쿠라가 대놓고 세이버에게 거부감을 표하고, 마침내 작중 후반부에서 그 세이버를 잃어버린 채 라이더의 조력을 받아 겨우 살아남은 시로가 홀로 사쿠라가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추운 날씨임에도 발가락이 빨갛게 곱은 채 자신을 기다리는 보랏빛 머리칼의 한 소녀를 봤을 때 보여준 시로의 얼굴은, 서로의 그 표정은...........애달프면서도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다행이라고 보듬는 지인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습니다.
그랬기에 시로는 꺾이려던 마음을 다잡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조리에 고민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아니 포기하지 않습니다. 엔딩롤 뒤 나온 다음 편의 예고에서 흘러나온 시로의 대사 '이대로는 끝낼 수 없어'
이건 단순히 '세이버를 이렇게 잃어버리고 조켄 같은 미친 영감이 뻔히 속내를 드러낸 채 버티고 있는데 성배전쟁에서 발을 뺄 순 없다' 라는 정의감 가득한 주인공의 결의라기보다는-
'이대로 아직 위협이 잔뜩 남은 성배전쟁에서 토오사카만 남긴 채 내가 손을 떼버리면 사쿠라에게 어떤 위협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가까운 근미래를 향한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여하튼 이번 1부와는 달리 2부는 훨씬 더 처절한 경황이 여지없이 벌어질 것이고 시로와 사쿠라도 대전환을 맞이하겠죠. 그 때의 소년과 소녀는 과연 어떤 파격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뭐 다소 중구난방 적인 소감이긴 했습니다만 확실히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새벽 감상을 할 정도의 의의는 충분히 있었던 것 같네요. 페이트 골수팬이고 유포터블이란 제작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진어쌔신은 페제에서 길가메쉬에게 광탈당하고 이스칸달에게 뭇매맞던 하산 놈 따윈 잊으라는 듯 기괴하면서도 살벌한 면모의 광기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사사키 코지로의 가슴팍을 절개하며 태어나는 스플레터한 씬에서 자신의 어두운 광기를 핏방울과 함게 흩뿌리는데 좀 싼티나게 말하면 다크한 간지가 느껴지더군요.
정통 스토리와는 다른 이질적인 루트라는 감상을 처음부터 품고 보러가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참마대성 데몬베인 시리즈의 산달ㅍ....아니 라이카 루트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왕도적인 전개와는 완전히 다른 작가 취향의 어둡기 그지없는 전개로 관객까지 빨려들어가게 하는 사도적인 루트의 그 맛이란....
최근 애니플러스 채널에서 한창 UBW가 매주 방영 중인데 그것과 대조하면서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번 프레시지 플라워의 수입사로 스크린에 떡 하고 애니플러스가 뜨는 걸 보니 더 웃겼고요.근데 상영관이랑 상영일 일정이 왜 이따구여;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볼 생각을 가지신 회원분들은 속히 극장으로 왕림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상영관이 미칠 듯한 속도로 줄어들고 있거든요[...]
솔직히 다음 헤븐즈 필의 2부나 3부가 과연 제대로 국내 개봉이 되련지 걱정되는 수준이라 좀 기분이 찝찝합니다 그려;
ps: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도 같이 수원 롯데시네마 상영관에 남아있던 20~30여명 가량의 달덕분들.........집에 잘 들어가셨기를. 진짜 미친 듯이 추웠는데;
ps2:사실 위의 감상은 다 구라고 글 제목대로 이번 헤븐즈 필 극장판에서 눈에 들어온 건 시로가 꾼 음몽 밖에 없어요!
시로의 무릎에 걸쳐진 토오사카의 둔덕이 움찔거리는 컷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젠장, 상영관이 역이라 혼잡해서 차를 두고 간게 되려 독이 되었네요;
여하튼 어찌어찌 헤븐즈 필 극장판을 봤습니다.
가오갤 2때부터 봐야지봐야지만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 상영들을 싸그리 놓쳤는데 몇개월 만에 겨우 한편 봤네요.
가장 근래 봤었던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걸즈 앤 판처였던가 너의 이름은이었던가...여하튼 간만에 일본산 애니 극장판을 극장에서 봤군요.
뭐, 소감은 여러 회원분들이 이미 감상게에 많이 올리셨으니 구구절절한 스토리 묘사 따윈 집어치우고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만 열거해보겠습니다.
0. 공기가 끈적끈적하게 느껴지는 작중 분위기
뭐랄까, 말 그대로입니다.
가장 이질적으로 가장 어두운 루트를 답습하는 편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그간 유포터블이 만들었던 페이트와는 천차만별이에요.
시종일관 묵직한 분위기가 '화려한 연출과 수려한 캐릭터들, 격렬한 전투씬'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TV판에서처럼 발을 굴러대며 점점 템포를 높히려는 작품의 대전제에, 녹슨 쇠사슬을 몇 겹 감아놓곤 스스로가 질질 딸려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게 헤븐즈 필의 분위기야'하고 어필합니다.
벌써 몇번이나 봐온 페이트의 초반부 전개인데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해요.
현실의 일본에서 벌어지는 과거의 영웅들을 초환해 대결하는 소환 대전이 아니라 마치 마을에 숨어있는 도시 전설틱한 악령이라도 으스스하게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를 살풋 깔고갑니다.
프롤로그 틱한 전개임에도 화려한 전투가 몇번이나 벌어지는데 '화려하다! 멋있다! 신난다!'라는 느낌보다는 문자그대로 목숨을 걸고 상대를 처치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피와 땀에 젖은 배틀로얄 적인 공기가 어두운 밤 배경을 위주로 퍼져나갑니다.
인물들의 표정에 어려있는 감정은 투지나 결의보다는 현실감, 적의, 두려움, 증오, 광기 따위가 물씬 배어나오는 면면들입니다.
초반에 가차없이 목숨을 잃고 탈락하는 영령들의 애통한 표정이나 비탄에 잠긴 읊조림이 피카레스크 틱한 분위기 속으로 자꾸 관객의 발을 잡고 끌어들여요.
그 어떤 요소보다도 이 어두운 드라마에 제일 집중하라고 들이미는 것 마냥요.
1. 인물 작화가 묘하게 TVA와 다르다
TV상영판이랑 극장판이랑 작화 퀄리티 차이가 나는게 당연한 거 아니냐...라고 하신다면 배경 작화는 당연히 그랬다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극장판 배경 작화는 진짜 본디 고퀄 작화를 자랑하는 유포터블에서 더더욱 힘을 줘서 그렸다는게 팍팍 느껴졌고요. 헌데 인물 작화는 묘하더군요.
퀄이 구려....라는 소리가 아니고, TVA의 작화가 다소 날렵하면서도 묘하게 소년만화적인 느낌이 판타지스런 연출과 어울리는 인물들의 외견을 그려냈다면, 극장판의 인물 작화와 디자인은 좀 더 '현실적'이랄까 리얼하게 짜맞춰서 다듬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시로가 세이버와 함께 외출할 때 입는 갈색 반코트 상의의 수수한 느낌이라던가 세이버가 린이 의복을 제공하기 전까지 입고 있던 시로의 일본식 복식(
뭣보다 조금 놀란 건 신지의 인물 작화였는데, 찌질한 면모는 여전히 극장판에서도 변함 없었지만 그냥 얍삽하고 얄미운 모습이 대부분이었던 UBW 방영판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에미야 시로와의 미묘한 분위기랄까, 살짝 과장하면 우정적인 애증 같은 감상을 풍기는 표정을 곳곳에서 보여줍니다.
차라리 시로가 감정적으로 처음부터 궁도부에 있던 시절의 신지와 치고 박았다면 어쩌면 둘의 사이는 다른 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타이가가 꺼내왔었던 앨범 장면에서 유년기의 시로와 신지가 운동회 때 같이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진이 나왔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성배 전쟁 속에서 점점 적대하게 되는 둘의 모습이 살짝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더군요. 다소 오만함에 취해있는 미역머리의 모습은 여전했지만 UBW와는 다르게 그 오만함 뒤에 여러가지 감정이 살풋 감춰져있다는 감상이 들었고 신지의 여러가지 표정은 그걸 관객에게 암시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사쿠라는......왜 보고 오신 분들이 '여신이다 여신!'이러는지 알겠네요. 진짜 예쁘게 뽑았어요.
위에서 말했던 TVA판보다 살짝 둥글어졌달까 날카로운 터치가 줄어든 맛의 작화가 되려 사쿠라가 등장할 때는 살짝 가라앉는 듯한 은은한 화사함을 연출해줍니다.
여기가 내 루트다! 하고 온 몸으로 주장하 듯이 갸날픈 목소리와 함께 그야말로 환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상적인 순종적인 여후배의 모습을 연신 보여주는데...
성배전쟁의 영령들보다 사쿠라의 존재가 더 판타지 같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신지가 시로의 집에 찾아와 사쿠라의 뺨을 때렸을 때 관객석 어딘가에서 'C8'이라는 작은 중얼거림이 들렸는데 아마 착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조켄 할아범은 작중 진행이 될 수록 왜 머리 형태가 점점 육각 주사위화 되가는지 모르겠네요.
2. 전투씬은 확실히 고퀄리티. 하지만 살짝 미묘한 감도?
애초에 고퀄 작화로 유명한 제작사가 극장판으로 제작했는데 '아 구렸어~'라는 말이 나오는 컷을 뽑았을리가 없겠죠.
근데 느꼈던게, 의외로 전투씬에서 엄청난 박력이라던가 새로운 놀라움을 체감하진 못했어요. 물론 'TVA판에서부터 미친 작화를 보여줘서 익숙해졌기에 그런게 아니냐' 하고 묻는다면 물론 그런 것도 아주 없잖아 있긴 한데....뭐랄까 TVA에서와는 다르게 극장판에서는 연출이나 작화에 좀 더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했다는 느낌을 준달까요.
무엇보다 특정 전투에서 느껴졌던 가장 큰 이질감이란, 빠른 공세의 교환과 함께 칼과 창이 치고받고 높은 건물과 넓은 거리를 펄쩍펄쩍 도약하는데....페이트 특유의 스피디한 무게감이랄까 영령이란 초인들의 파워가 잘 안 느껴져요.
영체인 영령들이지만 실체화를 하면 강철을 자르고 돌바닥에 족적을 남기는 물리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마력의 육체를 덧입고 싸우는데, 그 인간의 모습을 한 신체로 수십 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육신을 수십미터씩 도약시키고 쭉 뻗은 굵은 팔 다리로 바위조차 으깨버리는 완력이 역동적으로 발휘된다는 느낌을 잘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버서커와 세이버의 짧은 교전과 신지가 이끌고 나타난 라이더가 세이버에게 한방에 침몰하던 씬을 제외하면.......나머지 전투들, 특히 도심에서 벌어진 어쌔신과 랜서의 대결이 가장 그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네요.
도시의 밤거리를 도약하면서 가로등이 켜진 도로를 질주해 커다란 차량 운반용 트레일러에 올라타 단검과 창날이 교차하는 전투씬은 분명 작화에 크게 공을 들였을 것이고, 본디 뛰어난 연출력에 더욱 또 다른 시도를 가미해보려고 했다는 느낌은 분명 오는데, 뭐랄까 박력이 2%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먼저 트레일러에 올라타서 멀어지는 어쌔신을 랜서가 도로변을 질주해 따라잡는 곳에서의 속도감이라던가, 트레일러를 따라잡아 도약한 랜서가 2층 칸 부분에 척 하고 내려서는데 연출이 지나치게 가벼웠어요.
'영령 특유의 강인함 탓에 수십미터에서 떨어져도 무릎 조차 굽힐 필요 없다!' ...이러면 뭐 할말은 없는데 영체화 중도 아니고 실체화 한 상태에서 도약해 금속 구조의 차체에 뛰어올라탔는데 소리조차 제대로 안 울리고 바로 꼿꼿하게 서 있는 걸 보자니 최근 욕 먹고 있는 저스티스 리그에서의 배트맨이 날아와 착지하는 움짤 컷이 떠오르더라고요.
팬 커뮤니티에서도 '여태껏 본 배트맨의 착지 씬 중에서 최고로 멋 없고 무게감 실종이다' 라고 하는데, 랜서의 전투씬에서의 움직임도 분명 최속의 영령이 자랑하는 스피디함은 유감없이 보여주는데 반해 그에 따르는 날카로운 무게감과 빠른 격돌의 충격이 화면 너머의 관객에게 잘 전해지질 았았어요.
판타지적인 연출과 함께 영웅들이 치고 받으면서도 있을 수 없는 속도로 말도 안되는 무거운 일격을 교차시킨다....가 제가 페이트에서 느낀 서번트들 간의 백병전이었는데 이번 극장판은 이 요소를 붕 떠오른 풍선마냥 잡아챘다 놓쳤다 하는 느낌이더라고요.
환상적인 배경 작화와 맞물려서 전투씬의 분위기는 굉장히 멋졌기 때문에 그 2%의 미묘함이 더더욱 작은 가시 같은 이질감을 느끼게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구 등의 연출은 매우 멋졌던지라 다음 후속 편에서는 이 점을 좀 더 보강해서 나와주면 좋겠네요.
그리고 사족이지만, 2D 작화와 3D 작화를 잘 조율해서 화려한 연출을 하는 것이 유포터블의 장점이긴 한데 이번 극장판은 그것이 살짝 어긋나는 씬도 조금씩 보였다는게 아쉬웠습니다.
랜서가 진 어쌔신에게 심장을 뽑히고 물속으로 촉수에 감겨 끌려들어가기 전, 사체가 된 채로 구속당한 랜서의 얼굴컷은 뒤에 따라오는 마지막 독백의 아련함까지 고려하면 극장판 수준의 작화라기엔 해당 장면의 2D와 3D의 조합이 너무 어색했어요.
3. 결락된 영웅 지망자가 아닌 평범한 소년으로서의 면모
시로는 린에게 곧잘 지적당하곤 했죠. 자신보다 타인의 행복과 안위를 무조건 적으로 우선하는 너는 분명 망가진 인간이라고.
실제로 여태껏 방영된 시로의 모습은 멋있고 소년들이 동경할 만한 주인공의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어필했습니다. 처음으로 간장 막야를 투영한 쿠즈키와의 전투나 고유결계 속에서의 아쳐와 벌인 존재 증명 대결은 그 절정이었죠.
헌데 이번 헤븐즈 필에서의 시로는 주인공 보정을 받아 움직이는 소년 주인공! 이라기보다는 순수하고 어리숙한 소년으로서의 면모를 더 많이 보여줍니다.
타이가에게 부끄러운 점을 지적 당할 때마다 얼굴을 붉히고,
남을 좀 지나치게 도와주긴 하지만 그 외엔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자신을 돌봐주러 찾아오는 친구의 여동생과 교류를 할 때마다 여러가지 감정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 소녀에게 점점 두근거리는 마음을 자각하고 그것이 커져나가는 것을 자각하기 직전의 사춘기 틱한 분위기도요.
어둡고 일정 수면 위로는 떠오르질 못하는 작중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면모나 소년 소녀 간의 살짝 드러나는 연심은 관객에게 일말의 부드러운 감상을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불안감 또한 키워줍니다.
어떤 비극적인 폭탄이 터져서 이 얼마 안되는 따스함이 날아가버릴지 자기도 모르게 불안해지거든요. 이건 극장판에게 손뼉을 쳐주고 싶은게 원작을 플레이해서 해당 루트의 스토리를 다 아는 관객조차도 그러한 분위기에 취하게 만들어주려는 제작진의 열의가 보이는 듯 했어요.
그리고, 시로가 세이버와 외출했다가 귀가 할때마다 계속 상처를 입어서 돌아오는 것을 걱정한 사쿠라가 대놓고 세이버에게 거부감을 표하고, 마침내 작중 후반부에서 그 세이버를 잃어버린 채 라이더의 조력을 받아 겨우 살아남은 시로가 홀로 사쿠라가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추운 날씨임에도 발가락이 빨갛게 곱은 채 자신을 기다리는 보랏빛 머리칼의 한 소녀를 봤을 때 보여준 시로의 얼굴은, 서로의 그 표정은...........애달프면서도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다행이라고 보듬는 지인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습니다.
그랬기에 시로는 꺾이려던 마음을 다잡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조리에 고민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아니 포기하지 않습니다. 엔딩롤 뒤 나온 다음 편의 예고에서 흘러나온 시로의 대사 '이대로는 끝낼 수 없어'
이건 단순히 '세이버를 이렇게 잃어버리고 조켄 같은 미친 영감이 뻔히 속내를 드러낸 채 버티고 있는데 성배전쟁에서 발을 뺄 순 없다' 라는 정의감 가득한 주인공의 결의라기보다는-
'이대로 아직 위협이 잔뜩 남은 성배전쟁에서 토오사카만 남긴 채 내가 손을 떼버리면 사쿠라에게 어떤 위협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가까운 근미래를 향한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여하튼 이번 1부와는 달리 2부는 훨씬 더 처절한 경황이 여지없이 벌어질 것이고 시로와 사쿠라도 대전환을 맞이하겠죠. 그 때의 소년과 소녀는 과연 어떤 파격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뭐 다소 중구난방 적인 소감이긴 했습니다만 확실히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새벽 감상을 할 정도의 의의는 충분히 있었던 것 같네요. 페이트 골수팬이고 유포터블이란 제작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진어쌔신은 페제에서 길가메쉬에게 광탈당하고 이스칸달에게 뭇매맞던 하산 놈 따윈 잊으라는 듯 기괴하면서도 살벌한 면모의 광기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사사키 코지로의 가슴팍을 절개하며 태어나는 스플레터한 씬에서 자신의 어두운 광기를 핏방울과 함게 흩뿌리는데 좀 싼티나게 말하면 다크한 간지가 느껴지더군요.
정통 스토리와는 다른 이질적인 루트라는 감상을 처음부터 품고 보러가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참마대성 데몬베인 시리즈의 산달ㅍ....아니 라이카 루트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왕도적인 전개와는 완전히 다른 작가 취향의 어둡기 그지없는 전개로 관객까지 빨려들어가게 하는 사도적인 루트의 그 맛이란....
최근 애니플러스 채널에서 한창 UBW가 매주 방영 중인데 그것과 대조하면서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번 프레시지 플라워의 수입사로 스크린에 떡 하고 애니플러스가 뜨는 걸 보니 더 웃겼고요.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볼 생각을 가지신 회원분들은 속히 극장으로 왕림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상영관이 미칠 듯한 속도로 줄어들고 있거든요[...]
솔직히 다음 헤븐즈 필의 2부나 3부가 과연 제대로 국내 개봉이 되련지 걱정되는 수준이라 좀 기분이 찝찝합니다 그려;
ps: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도 같이 수원 롯데시네마 상영관에 남아있던 20~30여명 가량의 달덕분들.........집에 잘 들어가셨기를. 진짜 미친 듯이 추웠는데;
시로의 무릎에 걸쳐진 토오사카의 둔덕이 움찔거리는 컷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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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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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9
용장님의 댓글
3개 멀티플렉스다 잡은게 문제였나
천미르님의 댓글의 댓글
새누님의 댓글
blaky님의 댓글
호에~님의 댓글
노히트런님의 댓글
사진 속 쇼타시로가 참 귀여웠는데(응?)
붉은연철님의 댓글
<div>뭐 그래도 신지 실드는 무리였습니다만.</div>
푸우님의 댓글
<div>다음주 주말까지 상영관에 걸려 있었으면 좋겠네요. <img style="margin: 1px 4px; width: 50px; height: 50px; vertical-align: middle" alt="" src="/cheditor5/icons/em/em21.gif" border="0" /></div>
<div>요세는 일주일만에 내려가는 일도 종종 있어서...</div>
인토깽이님의 댓글
<div>달리는 트럭 짐칸 맨 끄트머리에서 무게중심을 뒤로잡고선 한발로 서있기란...</div>
<div>나루토마냥 발바닥으로 차크라 흡착이라도 했는지..</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