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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여행] 장안, 화산,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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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곁들인 중국 여행, 세 번째 글입니다.

중국여행은 네 번째지만, 일전에 백두산에 갔던 것은 체력을 회복하며 차분히 정리해볼까 했더니 어떤 분이 글을 재촉하더군요. 글 맡겨뒀음?

그 때 기분이 상해서 안 썼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다른 글들에 써먹었으니 별로 다를 바도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때는 혼자 갔고 술도 안 먹었습니다. 이전의 글들에서 죄다 술 얘기에만 반응하시던데 뭐.....

그런 제가 글을 쓰고 있다? 네, 맞습니다. 이전 여행들과 마찬가지로, 술 좋아하는 작은아버지와 같이 갔습니다.(그 분과만 간 건 아님)




서안 여행은 4박5일이었습니다. 마지막날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여유롭게 비행만 했으니 실질적으로는 4일.

이전 여행들은 기본적으로 장강삼협, 장가계, 백두산 등 자연환경을 구경한 것에 비해 서안에서 주로 보고 다닌 것들은 문화 쪽이었죠.

그게 무슨 말인가? 대부분 서안 시내나 주변이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짧고 돌아다니기도 편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현지 주민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안이 위치한 관중 지방은 대륙성 기후입니다. 규칙적이고 주기적으로 4~5일은 맑고 하루는 비가 온다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가 몇박 했죠? 4박5일. 비가 하루도 안 왔습니다. 여행사가 날을 아주 잘 맞췄나 봅니다.

대신 일교차는 크더군요. 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녀도 될 만큼 덥고 햇살이 강했습니다. 습기 없는 초여름 날씨랄까요. 하지만 오후 5시가 넘으면 슬슬 온도가 낮아지더니 밤에 나가면 쌀쌀했습니다.

그.......뭐랄까요. 뭔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서버 관리자가 '여기서 번성하십시오 휴먼' 하고 딱 정해둔 느낌이에요. 황하문명의 발원지 운운하는데, 확실히 스타팅 포인트가 이런 곳이라면 '우리는 하늘에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오만해질 만도 합니다.


날을 잘 맞췄다는 것은 날씨 주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4월 7일 출국해 11일에 귀국한, 평일이 대부분인 스케줄인데(그래서 사전투표를 해야 했죠), 이게 청명 직후였어요. 그 덕에 관광지에 사람이 붐비지 않았습니다.

............붐비지 않았단 건 대륙 스케일로 말한 겁니다. 사람은 충분히 많았습니다. 아니 솔직히 미친 듯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몇 시간씩 대기하며 시간 낭비한 적은 없습니다.

청명이 중국에서 큰 명절이었던가 본데, 서안이 유명 관광도시다보니 평소에도 중국 전역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합니다. 동시에 서안 자체도 그냥 대도시라서 주민들도 많고.

그러니까 제가 관광지에서 본 사람들의 절반은 서안 주민들이고 절반은 중국 내국인 관광객일 겁니다.

그리고 관광객들 중 특히 여성분들(남자도 있음)은 당나라 시기 옷을 빌려입고 돌아다니는 분이 많습니다. 옷은 예뻐요, 옷은. 사진 잘 찍어서 인터넷(자국 한정) 스타가 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직접 본 미인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게,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입던데 뭐. 젊은이들만의 특권 같은 게 아니에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담배도 많다는 뜻입니다. 어딜 가도 담배냄새가 심심치않게 납니다. 라이터가 금지된 곳에서도 버젓이 담배를 피우며, 산을 타면서도 담배를 피웁니다.

........흡연자이신 작은아버지만 편하시더군요.




서안 첫날에는 소소하게 돌았습니다.

먼저 공항에 가까운 곳에 있는 실크로드 출발지에 가서 기념 석상을 보고, 소안탑에 갔습니다. 바로 옆에 박물관이 있는데 어째선지 지하로 내려가더군요. 서안에서 공사하다가 출토된 유물들을 모아뒀는데 춘추전국시대 유물부터 명나라 청나라 시기 물건까지 연대가 다양합니다.

이 유물들은 딱 그냥 박물관 가서 보는 그런 느낌입니다만, '여러 시대'의 유물이 '서안 한 곳'에서 나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장안이라는 유서깊은 대도시, 저 옛날부터 현대까지 계속해서 융성해온 저력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소안탑에서 나온 다음에는 장안성 중심, 종루 근처에 있는 회족 거리로 갔습니다. 종을 치는 종루와 북을 치는 고루가 거리를 약간 두고 함께 있는데, 종루는 그 둘레에 차도가 깔려 회전교차로가 되어 있는 반면 고루는 인도 사이에 있습니다. 그 고루에서부터 쭉 걸어내려가면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중국 특유의 맵싸한 향신료 냄새가 진동합니다. 다행인 것은, 예전 장가계 때는 관광지마다 취두부 매점이 있어서 그 냄새에 진저리를 쳤지만 서안에선 취두부는 없었어요. 이 향신료 냄새 자체는 나쁘지 않아서 익숙해지면 괜찮습니다.

특기할 만한 건 여기도 그랬지만 서안에서는 대부분 꼬치구이를 가공된 꼬지가 아니라 손가락만한 굵기의 나뭇가지에 꽂아서 굽는 것일까요. 저는 첫날에는 여기가 회족 거리니까 회족들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냥 대부분의 노점에서 그러더군요.

그 외에는.......과일이 자랑이라면서 생과일꼬치(이건 나무젓가락)는 팔지만 탕후루는 없던데. 4박5일 동안 탕후루 파는 건 한 곳 봤습니다. 별로 맛있어 보이지도 않았....


회족 거리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장안성 중심가인 만큼 유서깊은 곳이며 서태후와도 연이 있다고는 하는데 어차피 다 현대식 시설이잖아. 별로 옛날 느낌 안 나던데요.

그리고 여기서 드디어 서안의 첫 술을 마시게 됩니다. 가이드 분이 한 잔씩 나눠마시라며 선물한 건데, 다른 팀도 그러는 걸 봐서 대략 공식으로 정해진 것 같습니다.

서안에서 제가 마신 건 총 네 개인데, 전부 서봉주라는 한 브랜드입니다. 다섯 번째도 있는데 그건 사왔을 뿐 아직 맛은 못 봤습니다. 네? 맥주는 안 마셨냐고요? 맥주가 술임?

......아니 뭐 객기를 부리는 건 아니고, 맥주도 두 종류 마시긴 했지만 맛도 밍밍하고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외합니다.

첫날에 마신 술은 그 중에, 마오타이와 콜라보를 진행한 술이라고 합니다만..............................맛없어.

기본적으로 이 브랜드는 향은 좋아요. 농향이라 하던데, 포도가 떠오르는 향입니다. 다만 제가 마신 중국술은 기본적으로 이 종류의 향이어서 딱히 가산점은 없습니다.

맛은, 혀가 아픕니다. 처음 혀에 닿을 때부터 강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야만적인 산적놈이죠. 그래서 홀짝홀짝 조금씩 마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산적처럼 한 번에 탁 털어넣으라고 강요하는 술입니다. '얌마 술을 무슨 쫌생이처럼 마시고 있어? 싸나이라면 말이야 어?' 이러는 느낌이에요.

.......같이 술마시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은 많아도 술에게 그런 강요를 받게 될 줄은 몰랐어.


제가 마셔보고 싶은 중국 명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소위 죽엽청, 여아홍 같은 술은 무협지에서 나오니까 궁금해서 한 번 먹어보고 싶은 쪽.

그와는 달리 현실에서 명주라고 소문이 나니까 그걸 마셔보고 싶은 쪽이 마오타이 같은 술입니다.

..........근데 어째 마오타이는 여태까지 저를 실망시키는군요. 진짜 마오타이가 아니니까 그런 거라고 납득하고 있습니다만........



2일차에는 진시황릉부터 갔습니다.

본래 진시황릉은 잔디로 뒤덮여 그 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코로나 기간 중에 숲이 조성되어 올라가지 못하고 주위를 돌게만 해두었다 합니다.

가이드분 추측으로는 한 번 팠다가 무슨 일인지 사고가 나서 다시 덮었을 거다 하는데........진시황릉에서 사고면 수은 유출 아닌가 그거.

여하튼 진시황릉은 겉에서 보면 그냥 동산 같은 거라 앞에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문제는 나무가 가려서 진시황릉의 모습도 제대로 안 나오더군요.

진짜는 그 옆에 있는 병마용 갱입니다. 3호갱까지 공개가 되어 있으며 1호갱이 가장 크고, 2호갱에는 온전하게 출토된 병마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병마용들이 줄지어 늘어선 것을 찍었다면 1호갱입니다. 다만 그 사진들은 각도를 잘 조절해서 수가 많아보이도록 찍은 것으로, 병마용이 그 넓은 1호갱을 꽉 채우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 깨졌음. 직사각형 모양의 1호갱은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입구로 들어가면 보이는 첫번째 구역은 복원이 끝난 병마용들을 세워놓았습니다. 중간의 두 번째 구역에선 산산이 조각난 흙인형들의 잔해를 볼 수 있죠. 출구로 나가기 전의 세 번째 구역에선 복원작업이 진행중입니다. 여기서 복원을 해서 첫번째 구역에 세우고 두번째 구역을 줄여가는 거죠.

2호갱은 1호갱의 옆, 3호갱은 1호갱의 뒤에 있습니다. 1호갱은 보병, 2호갱은 전차부대, 3호갱은 지휘막사로 당연히 3호갱이 가장 작죠. 1호갱에서 나오면 3호갱으로 가서 바로 한 번 훑어보고 2호갱으로 갈 수 있습니다.

1호갱의 전례를 생각해 2호갱은 발굴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2호갱의 일부에 산소차단 챔버를 만들어서, 그 구역의 병마용을 채색된 그대로(산소와 닿으면 얼마 안 가 색이 사라진다 합니다) 전시하려는 작업이 진행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2호갱의 한켠에 전시된 다섯 개의 온전한 병마용들이 2호갱의 아이덴티티입니다.

그 다섯 개는 각기 보병, 말, 장수, 책사, 궁병입니다. 병마용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인데, 복식이 상당히 세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의외로 책사는 어째 옷 안에 갑옷을 받쳐입은 게 아니라 옷 위에 갑옷을 입은 것 같은데, 몸통에는 갑옷을 안 입었.......?


점심을 먹고 근처의 화청지를 봤습니다. 여산 밑에 있는데 진시황의 여산릉과는 다른 곳입니다. 만일 같았더라면 재밌었겠죠. 수은중독 양귀비라거나(?!)

온천이 솟는 곳으로, 양귀비의 겨울 궁전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물론 양귀비 이전부터 당 황실이 이용한 곳입니다만.

이 온천은 아직도 샘솟으며, 근처의 호텔로 온천수가 끌려가 거기서 양귀비의 온천을 경험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가지 않아도 온천수 자체는 욕탕 앞에 마련된 급수대 비슷한 곳에서 만져볼 수 있습니다. 수온은 따로 뭘 하지 않아도 40도 정도라 하는데 확실히 딱 좋은 온도였습니다.

욕탕구역에는 건물이 몇 개 있습니다. 양귀비가(양귀비만 쓴 건 아니지만) 쓴 곳, 황제 혼자 쓰는 곳, 원천을 뽑아서 다른 욕탕에 보내는 시설, 신하나 궁인들이 단체로 옹기종기 들어가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 세워진 건물은 크지만 안의 탕과 기둥 흔적을 보면 원래는 그리 크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건물이 없이, 야외에 그냥 노출된 탕이 있습니다. 대대로 태자들이 들어간 곳이라 하는데.......아니 왜 여긴 건물 안 세워줘? 차별 심하네.....

화청지는 들어가기 전에 앞에 세워진 동상도 그렇고 욕탕 구역 한가운데에도 그렇고 양귀비랍시고 피규어를 세워뒀습니다만, 별로 안 예쁩니다.....

궁전인 만큼 당연히 욕탕 구역만 있는 건 아닙니다. 왠지 모르게 우왕, 하우씨를 모신 도관이 있고(치수의 신아라 모신 건가? 온천도 치수에 속하나?) 연못과 정원도 있습니다. 연못에는 공연시설이 되어 있는데 이게 그 장한가 공연장인 건가?

별로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버드나무가 너무 많았거든요. 개인적으로 버드나무의 생김새는 좋아합니다만, 풍매화 부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미친 버드나무놈들이 제가 간 시기에 꽃가루를 마구 흩뿌려서 알레르기가........

화청지 외곽의 담장 덕에 밖에는 그리 꽃가루가 많지 않았지만, 그 말은 화청지 안에는 그 놈들이 부카게(....)해놓은 게 많다는 거죠. 부카게라 한 이유는 바닥에 엄청나게 쌓였기 때문입니다. 공중에도 마구 떠돌아다녀 눈오는 것 같지만, 바닥에도 눈 온 것처럼 쌓였습니다. 꽃가루가 뭉쳐서 먼지나 쓰레기처럼 굴러다니는 게 아니라 진짜로 눈처럼 쌓입니다......


저녁은 대안탑 광장 근처에서 먹었습니다. 서안 최고의 번화가입니다.

대안탑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봤는데, 무너진 부분이 있는 소안탑보다 더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서봉주 12년산을 마셨습니다. 이 놈은..........밀수꾼이나 사기꾼 같은 술입니다.

처음 입에 머금으면 아무 느낌도 나지 않습니다. 네, 밍밍하다고 할 정도로, 이거 술 아닌 건가 싶은 게 있습니다.

계속 머금고 있으면 계속 그대로 밍밍합니다. 이 놈의 본모습은 삼키면 알 수 있습니다.

무해한 얼굴로 문지기를 속이고 들어온 놈이 본색을 드러내는 느낌입니다. 전날 먹었던 산적놈과 똑같이 목구멍과 위장을 쓰리게 만드는 난폭한 범죄자입니다.

저는 술의 맛은 입 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닿는 혀의 느낌, 입에 머금으며 스며드는 맛과 퍼지는 향, 그리고 목넘김으로 이별하는 과정, 인후부와 위장에서 살짝 올라오는 잔향.......그런 면에서 이 술은 전부 낙제죠.

입에 있을 땐 아무 것도 없어요. 넘길 땐 난폭해요. 그냥 알콜이 마구 인후부와 위장을 찌르며 내려갈 뿐입니다. 잔향이 아니라 뒤끝이에요.


저녁을 먹고 나서는 대안탑 광장과 그 길건너편을 구경했습니다. 소위 불야성 거리죠.

서안 최고의 번화가란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둘째날이니 월요일인데, 평일 저녁인데 무슨 축제날처럼 사람이 바글댑니다.

4박5일의 일정 중에서 이 때가 가장 사람에 치였던 때입니다.........

여기가 사진빨이 먹어주는 곳인지, 야경과 대안탑을 배경으로 사진찍는 사람들(ver.당나라)이 많았습니다. 개인조명과 개인 발받침을 가진 사진사들이 포즈 지도까지 하면서 찍어주더군요.

대안탑이 삼장법사와 관련되어서 그런지, 불야성 거리에는 승려들의 동상이나 당나라 시절 문인들의 동상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공연도 하더군요........왜...? 축제 아니고 평일인데 대체 왜......?



사흘째에는 화산으로 갔습니다. 공항 오갈 때 빼면 가장 장거리 이동이었습니다.

도착한 곳은 화음현입니다. 무협지에서 자주 나오는 그 화음현 맞습니다. 드넓은 평지와 높은 진령산맥이 만나는 곳입니다.

진령산맥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제가 예전 충칭에서 산간열차를 탔을 때에는 '산이 위로 한 겹 더 있다'고 했는데, 진령산맥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 평범하게 한국에서 높은 산 봤을 때 느낌입니다.

다만 화음현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녀석은, 암반으로 세워진 악산임에도 불구하고 표면이 묘하게 반들거리더군요. 얼마나 풍화작용을 겪었으면.....


화음현 산기슭에서부터는 셔틀버스를 타고 산길을 따라 한참 꼬불거리며 들어갔습니다.

이미 장가계 천문산에서 익숙해진 바 있죠. 천문산 셔틀버스와는 달리 화산 셔틀버스는 관광버스 사이즈라 불편하지도 않았습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며 보는 풍광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다만 아직도 화산이 아닐 뿐.

천문산이 높고 넓다면, 백두산은 드넓은 산지이며, 화산은..........부하들이 많습니다. 겹겹이 감싸여 있죠.

그래도 세 명산 중에서는 화산이 가장 성품이 온화한 것 같습니다. 백두산의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어째서 사람들이 산신에게 벌벌 떨었는지 알 것 같고, 천문산은 그 정도는 아니어도 적당히 맑고 적당히 변덕부리는 느낌이죠. 그러나 화산은 위에서도 말했듯 이 주변 기후 자체가 대단히 규칙적입니다. 원칙을 잘 지키는 모범생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낮에 올라갈 때는 햇살이 따갑습니다. 근데 뭐..........24시간 개방되는 곳이니까 밤에는 괜찮지 않겠나 싶군요.

물론 밤에 올라갈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셔틀버스에서 하차하면 케이블카 매표센터(매표소라기엔 시설이 잘 돼 있음)입니다. 표를 사고 2층으로 올라가면 여기서 또 계단으로 제법 올라가야 합니다.

천천히 올라가면 30분쯤? 햇살이 따갑다는 건 여기서의 이야기입니다. 올라가면 그깟 햇살....더구나 사람 몰리면 여기에 대기열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제법 심각한 얘기일 겁니다. 땡볕에서 몇 시간 기다리는 거니까요.

다 올라가면 케이블카 탑승센터(여기도 시설이 잘 돼 있음)입니다. 케이블카 한 대 당 여덟 명씩 탈 수 있습니다. 내려올 때는 널널하게 조금만 타도 되지만 올라갈 때는 여덟 명을 꽉 채우더군요.

탔습니다. 무섭습니다. 천문산 케이블카 때도 느꼈지만 편하기는 한데 오금이 저린단 말이죠. 더구나 천문산 케이블카는 산기슭에서 좀 떨어진 평지에서 시작해서 처음에는 주택가 위로 지나가며 적응할 수 있는데 화산 케이블카는 시작부터 그냥 산지입니다.


천문산 때도 겪어봤기 때문에 '응? 아직도 도착이 아니야?' 같은 촌스러운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몇 겹의 산을 지나면 이제 나무의 지분이 줄어들고 바위만이 날카롭게 솟아있는 암벽산이 나옵니다. 흥, 어차피 아직도 도착이 아니겠지.

네, 도착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놀란 건 그 부분이 아니라 그 암벽들도 화산이 아니라는 부분이었습니다.

튤립처럼 겹겹이, 바위산들만 세어도 세 겹을 지나서야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화산입니다. 이게 억지로 산을 나눈 것도 아닌 게, 다른 산들과 화산 사이에는 충분히 거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딱 '이웃에 있는 산' 정도의 거리를 두고요.

그러니까 화산은........몇 개나 되는 목책으로 구역을 나누고, 그 안에 삼중성벽을 쌓은 뒤, 한가운데에 솟은 아성(牙城, keep)인 겁니다. 뭐야, 이거 난공불락 아님?

케이블카에서 내려보면 계곡따라 옛날에 만들어진 계단이 까마득하게 아래에 보이는데, 제가 본 것만으로도 천 개는 될 것 같은데 그것조차 화산 들어가기 전 한 겹의 바위산 부분입니다. 걸어서 들어가려면 화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며칠은 산을 넘어야 한단 소리죠.

.......왜 화산논검이 화산에서 일어났는지 알겠습니다. 화산에 도착하는 게 예선전인 거예요.......왜 2차 화산논검 당시 떨거지들이 화산에 오르지도 않고 그 앞에서 깃발들고 와와 거렸는지 알겠어요. 저건 사람 올라갈 곳이 아니야. 화산이 아니라 그 근처도 못 가.

그리고 왜 풍종호가 화산파도 모르게 화산에서 살 수 있었는지도 알겠습니다. 무공 없으면 못갈 곳 많아요. 사람 숨으면 못 찾아요. 저런 배경에서라면 무슨 일이 있다고 뻥을 쳐도 다 믿을 수 있습니다. 잘 찾아보면 만년화리나 공청석유 정돈 정말 있을 것 같아요.


화산에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북봉과 서봉에 각각 있습니다. 제가 간 건 서봉 연화봉인데, 엄밀히 말하면 남봉 아래라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남봉과 서봉이 이어져 있거든요.

위에서 아성이라고 한 건 화산이 정말 중세 유럽의 성채 구조에서 아성처럼 깎아지른 듯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외곽의 경사가 90도에 가깝습니다.

서봉 케이블카는 남봉으로 올라가는 그 아래쪽의 암벽을 파고 들어가서 내립니다. 자연파괴인 건 인정하는데 안 그랬으면 못 올라가는 것도 인정.

장가계에서 저는 케이블카를 보고 '여기 건설노동자들은 다 무공이라도 배우나?' 했습니다. 근데 화산 케이블카에서는 '이 ㅅㄲ들 사람 몇 명을 갈아넣은 거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이거 설치하다 사람 몇 명, 아니 두 자릿수는 죽었을 겁니다. 안 죽었을 수가 없어요.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동굴따라 나가면 매점 겸 도관에 도착합니다. 화산의 서악대제를 모신 곳입니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먹고, 계단을 따라 10분 넘게 올라가면 화산 외벽으로 나옵니다. 여기서 서봉과 남봉으로 갈라지는데, 남봉이 더 높지만 서봉은 길이 별로 안 좋습니다.

화산은 높이만 따지면 해발 2100미터도 안 되는 산입니다. 대부분은 케이블카로 올라왔죠. 그렇지만.........힘듭니다.

도시락을 막 먹은 뒤라 소화가 안 될 것 같은데, 오르다보면 오히려 소화가 됩니다. 오, 화산 도인의 양생법....!


먼저 남봉으로 갔습니다. 추천은 서봉 갔다가 내려와서 남봉으로 가는 건데, 남봉을 먼저 갔습니다. 제 결정 아닙니다.

남봉으로 가면서 저 건너편 산을 보면 진짜 성벽처럼 보입니다. 특히 산 정상부에 보면 능선따라 사람 이빨 모양의 바위들이 하나씩 있는데 그게 마치 성가퀴처럼 보이거든요.

남봉 등산로는 시멘트 계단을 오르게 됩니다. 묘하게 단차가 높고 계단의 넓이가 좁아졌다 넓어졌다 해서 다리가 피곤합니다. 산 안쪽으로 꺾이는가 싶으면 매점이 있고, 쉬지 않고 올라가면 석조 건물이 있는데..........페이크다! 이것도 매점입니다. 야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보다 더 올라갑니다. 중간중간에 쉴 곳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런 곳에는 흡연자들이 있습니다. 못 쉬죠.

여기서까지 당나라 시절 옷을 입고 올라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통복을 입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예 촬영용 옷을 빌려주고 사진을 찍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컨셉은 당나라가 아닙니다............'화산논검'이죠.

.......진짜 화산논검이라고 새긴 석비가 두세 개는 있습니다. 그 앞에서 장난감 검이랑 옷을 빌려서 포즈를 취하는 거죠.

아니 소오강호는 어디 갔는데. 영호충 어딨냐고.


남봉 꼭대기에는 시퍼런,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 물빛의 샘이 있습니다.

이 샘을 퍼내서 없앴더니 다음날 다시 솟아있었다고 합니다. 대체 수맥이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렇다고 합니다.

이 위는 혼잡합니다. 사람도 당연히 많지만, 서있을 공간이 별로 없어요. 경사에 글자를 새겨놨는데........여하튼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동선이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꼭대기에서 내려가는 계단이 없습니다. 올라가는 계단은 한 사람 폭으로 좁아서 그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어요.

여기서 길이 갈리는데, 왔던 길로 돌아가면 서봉으로 갈 수 있고 가던 방향대로 가면 아마 동봉일 겁니다. 저는 서봉으로 돌아갔지만, 나중에 서봉에서 보니 동봉쪽으로 가는 길에 금빛 지붕의 도관이 있더군요. 못 봐서 아쉽습니다.


다시 한참 내려온 다음에는 서봉입니다.

서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남봉으로 가는 길의 초입과 같이(당연한 게, 양쪽이 바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외벽을 따라 올라갑니다.

'능선'이라고 했지만 그보다는 '절벽길'이라 해야 할 겁니다. 별로 넓지는 않은 암벽 능선이고, 경사가 애매해서 계단도 자연암에 끌을 대어 깎아낸 건데 단차가 거의 없는 데다 많이 닳아 없어졌습니다.

그 능선길을 올라가면 제법 적당한 넓이의 휴게시설이 있습니다. 물론 산 위의 휴게시설이니 뭘 바라긴 힘들죠.

산 외벽에서 위로 우뚝 솟은, 그러니까 손을 살짝 굽혀서 위로 받치면 손바닥쪽이 휴게시설을 비롯한 통로고 손가락쪽에는 뭔가 옛날에 수련하려고 파놓은 동굴 같은 게 있는 것 같은데 폐쇄되어 있습니다.

그 바로 옆에 또 도관이 있습니다. 본전이 닫혀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여신을 모시는 것 같더군요. 어쨌든 그 옆길로 올아나가니..........부벽석이 있습니다.

몇 층짜리 높이의 바위가 얹혀 있는데 그 왼쪽이 도끼에 쪼개진 것처럼 쪼개져 나가 있습니다. 흠, 신기하군.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그 바위로 올라가는 암벽등반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암벽등반이라기에는 별로 높진 않습니다. 사람 두 명 키도 안 될 겁니다. 근데 잡을 게 옆의 쇠사슬이고 디딜 건 바위를 깎아내서 만든 틈이야. 걸어올라가는 게 아니라 기어올라가는 느낌입니다. 화산파는 벽호공에도 능하겠군......

화산파 신법은 암향표가 아니라 제운종이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벽석은 얹혀있는 바위라서 그런지 정상 표식이 없습니다. 근데 어차피 부벽석이랑 이어진 곳에 정상 표식이 있어요.

서봉에서는 주변을 둘러싼 산보다는 저 아래, 그러니까 북쪽의 드넓은 평지가 내려보입니다. 나쁘지 않은 풍경이에요.

..........다만 뭐, 대체 이딴 곳에서 살겠다니 화산파 도사란 놈들은 미친 놈들인가?


백두산 때도 그랬지만 한백무림서에 실망하는 게 이런 부분입니다.

명나라 시절 인문환경이니 사회경제적 고증이니 운운하지만 정작 무대가 되는 자연환경의 고증은 부족해요.

무당마검에서 백두산 은환호(=소천지)가 나왔지만 실제 은환호는 도망나온 패잔병들이 옹기종기 모여살 공간이 못 됩니다. 연병장처럼 호숫가에서 훈련하고 그럴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화산도 그렇습니다. 도사가 없으면 군벌이나 도적이 있을 거다? 사냥할 짐승 자체가 살 수 없어! 벽곡하는 도사가 아니면 이런 데서 못 살아!

무협지에서 그나마 비슷하게 화산을 이미지하려면 천산파나 곤륜파 같은 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정도로 벽지예요. 정말 궁벽합니다. 솔직히 소오강호의 화산파도 너무 과장된 거 아닌가 싶어요. 벽혈검의 거의 일인전승 수준으로 묘사되는 화산파가 현실적입니다.

직접 무대에 가볼 수 없는 한국 무협지의 어쩔 수 없는 한계겠죠. 무협 작가들의 상상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현실이 인간의 상상을 넘어설 뿐입니다.


다만, 뭐......'연화봉(=서봉) 측사면의 취운암' 같은 건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엉엉 청풍이 자라난 곳 보고 싶은데 못 봐 엉엉

화산질풍검에서 나온, 앞에 무공 연마할 수 있는 마당까지 마련된 취운암과 풍암당 같은 곳은 완전 1등급 호텔이에요. 화산이라는 거대한 성의 내부에 있다는 거니까. 외벽이야 성벽처럼 깎아지른 곳이라 살지 못한다 쳐도, 천덕꾸러기 제자에게 가장자리 석벽 파고 들어가 동굴에서 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게 화산의 자연환경입니다.

아니면 화산 본산이 아니라 그 둘레의 다른 산들로 쫓아낼 수도 있겠네요. 오히려 그쪽이 더 살기 편할 것 같...........

​굽이굽이 들어간 산골에서 또 몇 겹의 산을 넘고, 바위산 계곡을 따라 또 며칠은 들어가고 나서 드디어 화산 입구에 도달한다..........이게 화산파의 환경입니다.

이딴 곳에서 산다? 뭐 도사라면 그럴 수도 있지.....

이딴 곳에서 살면서 문파 내부에서 눈칫밥 먹는데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산다? 보통 또라이가 아니구나......

이딴 곳에서 사는데 문파를 크게 융성하게 하고 주위를 다스리며 구파의 수위로 올라선다? 미친 놈인가? 그게 되면 화산파 장문인이 아니라 옥황상제(진짜 신)겠지.

이딴 곳을 부대를 이끌고 침입한다? 미친 놈인가????? 아, 강시 있으니 걔들에게 태워달라 하면 되려나.....?

어쨌든 화산에 오르니 생각보다 화산질풍검의 초반 사건들이 미쳐 돌아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걸.......습격한다고? 경비설 사람들이 있든 없든 난이도는 별로 안 달라지는데? 야 그 정도 신심이면 사방신검 빼앗겨 줘야지. 정성이 갸륵하잖아.


화산에서 내려와서 간 곳은 서왕묘입니다. 바로 근처입니다.

삼황오제 중 백제인 소호금천씨를 모시는 사당인데, 화산을 일직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화산에 제를 지낸다고 하니 당연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제사를 지내는 곳 뒤로 침궁이 있습니다. 황제가 머무르는 곳이며, 당연히 이쪽 구역은 황족과 환관, 궁녀 등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니 법도가 안 맞지 않나? 화산을 바라보고 제사를 지내면 그 뒤쪽 너머로는 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침궁으로 올라가보니.............거기 3층에 앉아서 문을 열면 정면으로 화산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지내는 방향이 반대인 거죠.

..........어쩐지 서왕묘 앞 광장에 정사각형의 단이 마련되어 있다 했더니, 황제용 제사는 거기서 지내는 건가 봅니다. 신상을 모신 건물은 황제 없을 때 평소에 제를 지내는 거고.

묘의 건물 구성이 일직선인 이유는 건물의 축선을 맞춰서 화산의 기운이 똑바로 올 수 있게 방향을 맞춘 거겠죠.

날이 좋을 때는 햇빛이 화산을 비춰 황금색으로 빛난다고 하는데......그건 못 보고, 주변의 드넓은 평야를 보며 외벽 담길을 걸어서 돌아나왔습니다.


사흘째 밤에는 서봉주 15년산을 마셨습니다.

산적놈하고 사기꾼놈의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춘 느낌입니다.

나쁘지는 않고 안주가 있으면 그럭저럭 마실 만합니다. 평가가 박하다고요? 뒤끝에 올라오는 알콜기는 변함이 없었거든요.



나흘째에는 다시 시내를 돌았습니다.

흥경궁공원의 4분의 1 정도를 둘러봤습니다. 여기도 양귀비 관련인데, 화청지보다는 연못이 크니 호수라고 불러야겠군요. 호수가 절반은 차지하는 곳입니다.

전부 돌지 않은 이유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체감상 불야성거리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높았습니다. 이게 수요일 오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풍경은 좋습니다. 호젓하게 사람 적을 때 유유자적 돌아보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근데 평일 오전에 이 인구밀도면 사람 적을 때가 없다는 얘긴데.

시내에 있기 때문에 주변 주민들이 나와서 공원에서 취미생활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근데 그것만으로도 적정인구를 다 채우고, 관광객들은 그 이상의 부담을 주는 거죠.

여러 민족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복식만 약간씩 다를 뿐이지 다 그냥 중국사람인걸요 뭐.


다음은 장안성 성벽을 올랐습니다.

장악문? 아마 그 이름이 맞을 겁니다. 거기로 올라갔는데, 성벽 위의 길이 왕복 2차선 도로 정도로 넓더군요. 이건 과장일 것도 같은데, 왕복 1차선보다는 확실히 넓었습니다. 대충 차선 3~4개 가량.

성벽을 따라 걷다가 중간에 내려간 곳이 영흥방 거리라고, 식당가입니다. 여길 이용하려면 중국의 스마트폰 페이 시스템을 쓰든가, 거리 입구에서 선불카드를 만들어서 쓰든가 해야 한다고 합니다. 현금은 안 받아요.

기억에 남는 건 술을 마시고 술잔을 깨트리는 가게입니다. 건강운이니 가족운이니 하는 식으로 메뉴를 정해 술을 팔고, 술잔이 깨지면 기원이 이뤄진다는 대충 그런 퍼포먼스의 가게입니다. 그 잔해가 마치 병마용 잔해처럼 쌓여 있어요.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흥선사로 갔습니다.

불교 밀종 사원으로, 일반적인 불교 사원과는 다소 다릅니다.

입구 가장 근처에는 양쪽에 지장보살을 모셨습니다. 한쪽은 구선(求善)지장이고 반대쪽은 평안(平安)지장입니다........그냥 다 지장보살 아님? 왜 둘로 나눔???

정면을 막아선 건 천왕전....뭐 사천왕 모시고 있는 건 같은데, 가운데에 포대화상이 있네요. 포대화상 이퀄 미륵보살.........이제 슬슬 미륵보살이 고소해야 하는 거 아닐까.

천왕전 건물을 통해 뒤로 나오면, 포대화상의 등을 지키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위타천입니다. 어.......왜지?

아니 뭐 위타천이 불법을 수호하는 건 맞으니까......이상할 건 없죠. 아마도.....


천왕전에서 나오면 보이는 것은 새까만 명왕상을 모신 불각입니다. 네 방향에 네 명왕을 모셨는데, 음, 다 아는 이름들이네. 근데 이 조합이 맞나 싶은......

애염명왕과 군다리명왕은 여기 있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왜 대흑천이 여기 있어........? 너 명왕 아니잖......

지장보살을 양쪽으로 갈라놓은 건 나오면서 봤기 때문에, 제가 위화감을 느낀 건 여기서부터였습니다. 포대화상? 뭐 중국에선 그런 법이지 하고 넘어갔었죠.


안으로 들어가면 오방오불을 모신 대웅보전이 있습니다.

.......미묘하게 모르는 부처님들이 계신데. 난 아미타불과 대일여래밖에 모르는데........

대웅전을 돌아서 뒤로 가보면, 불상 등뒤를 지키고 있는 것은 관세음보살입니다.

음, 뭐, 원래는 부처마다 보살 둘씩 딸려가는 게 맞지만, 불상이 다섯이나 있으면 그것도 곤란하겠지.......


대웅전 뒷마당에는 새카만 금속상이 서 있습니다. 지장보살입니다.

음, 그럴 만하군. 다시 말하지만 저는 지장전이 따로, 그것도 두 개나 있는 걸 나오면서 봤기 때문에 이 때는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대웅전 뒤의 관세음보살과 마주보는 위치가 되니까 나름대로 생과 사를 보살피는 두 보살들의 위상에 맞지 않겠나 싶습니다.

......지장상 양 옆에는 각기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고, 지장상 뒤쪽에 있는 건물에 다시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걸 보기 전에는요.

..............................아니 관세음보살이 여기 있으면 대웅전 뒤에는 왜 있는 거야?! 게다가 다른 보살들은 다 따로 불전에 모셔두면서 지장보살만 왜 푸대접이야?!(다시 말하지만 저는~생략)

그 외에 와불전 등등 다른 곳도 들어가 봤지만 이 혼란 때문에 별로 마음에 남진 않았고, 결정적으로 한 가지를 발견하고 모든 혼란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뭔고 하니............


재운(財運)보살. 


네, 재물운을 주는 보살.

................어떤 경전에도 나온 적 없으며, 신도들이 재물운을 비는 보살들이 있기는 한데 그게 메인은 결코 아니며, 심지어 동상에 노골적으로 金자가 새겨진 구슬이 묘사되어 있는 보살.

그야....뭐 중국에서는 재복을 중시하니까, 그리고 살아가는 데 돈 많으면 좋긴 하니까........그걸 기원하는 거 자체는 나쁘다고 할 일은 아닙니다. 불교 가르침과는 좀 많이 동떨어져 있긴 한데 무지몽매한 사람이 기원할 수야 있지.

근데 ㅅㅂ 그걸 빌기 위해 전담 보살을 창조해내면 안 되지.

저는 그걸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 밀교고 나발이고 이 ㅅㄲ들은 교리나 전통을 제대로 이어서 재현한 게 아니라 그냥 가라로 했구나. 말 그대로 사이비구나.

이게 제가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둘로 나눠진 지장전을 보고도 별로 동요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 재운보살 같은 짝퉁보다야 지장보살 반갈죽이 그나마 불교답다.



4일째의 마지막, 그러니까 서안 여행의 마지막 콘텐츠는 실크로드 쇼입니다. 사실 그 전에 팔로군 기념관을 갔는데 님들 관심 없잖아요. 저도 관심없었음. 학교 단체여행은 많이 오더라. 근데 왜 항일전쟁기 권총 사격체험 행사 같은 걸 하는 건데....?

어쨌든 실크로드 쇼. 원어 명칭은 타령(駝鈴, 낙타방울)전기인데, 거대규모 어트랙션 뮤지컬이라 하겠습니다.

거대한 원구형 건물 가운데에 객석이 있고, 배우들이 공연하는 무대는 건물 내벽 전체입니다. 객석은 각 막이 바뀔 때마다 옆으로 회전하고 배우들은 옆무대로 건너가 무대시설만 바꿔서 공연을 이어갑니다.

딱 봐도 알 수 있듯 중국이니까 하는 돈지랄입니다. 무대의 대도구는 미리 만들어놓고 장면바다 바꿀 일 없으니 얼마든지 더 크고 더 무겁게 만들어도 되는 거죠. 그거 자체는 상당히 참신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다만.........그렇게 돈을 퍼부어서 만든 것이...........유치한 프로파간다 쇼라는 게 문제지........


쇼의 제목인 낙타방울은 어디서 나온 말인가 하면, 시진핑이 서안 와서 한 연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내 고향 섬서성에 오니 낙타방울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라는 한 문장 듣고 거기서 착안해 만든 거죠.

그럼 이걸 제가 어떻게 아냐면, 쇼 시작 전에 아주 자랑스럽게 육성 녹음까지 재생해주며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아무리 사업하려면 정치권에 아부해야 한다지만............

음, 뭐..........시설도 신기하고 시각효과도 재밌고, 진짜 낙타와 늑대(아마 개겠지만)도 나오고 하는지라 값어치는 하는 공연입니다.

다만........어설퍼. 프로파간다를 내보이는 방식이 어설퍼......!


스토리는 심플합니다. 낙타꾼이 실크로드 따라 유럽으로 가면서 화산, 눈보라, 도적떼, 정령의 환상 등을 헤치고 동료도 잃고......다시 돌아오면서 절벽에 조성된 거대석굴의 불상에 예불도 하고 집에 돌아와 당나라는 성세를 이뤘다는 내용입니다.

중심인물은 있지만 주인공은 사람이 아닙니다. '국가'이며 '화하민족'입니다. 까놓고 말해 실크로드는 일대일로 얘기잖아요. 실크로드가 연결되어 서역 각국에서 황제에게 인사를 온다는 최종막의 구성 자체가 여태껏 주인공인 것 같았던 낙타꾼은 엑스트라(황제를 알현하러 왔다는 소개로 끝)가 되고 천하 위에 군림하는 국가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이 너무도 뻔합니다. 덧붙여 주인공에게 비를 내려주는(수천 톤의 물을 진짜로 쏟아내는) 거대불상의 얼굴이 묘하게 시진핑을 닮았죠.

요컨대 메시지 자체가 '젊은이들이 외국 나가서 고생하고 죽어나가고 해야 중국이 영광을 얻는다'입니다. 힘들여 일하고 목숨바치고 하면 너도 부자가 되니까 윈윈 아니냐, 뭐 도중에 죽으면 그 유족은 니네가 연대해서 책임지고 영광은 국가가 얻으니까 좋은 거 아님? 정도.

.............이러니까 어설프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요.


각본도 어설프고 대사가 유치합니다(영어와 한국어 번역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번역기 돌린 듯). 노래 가사야 뭐 시경 때부터 그랬던 동네니까 그렇다 쳐도 배우들 연기톤도 쓸 데 없이 감정과잉이라 촌스러운 느낌이 많이 나요.

전형적인 캐릭터만 좀 제대로 투입했어도 극이 정립되었을 겁니다. 실크로드 저편을 보고 싶다는 모험심에 연인을 두고 험난한 길에 나서는 청년, 눈먼 노모를 편히 봉양하기 위해 돈을 벌려는 아들, 뭐 이런 식으로요. 캐릭터 비중에 균형을 잡고 초반에 뮤지컬의 황금공식대로 엑스트라들의 합창 속에서 각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독창, 이중창, 사중창을 잘 버무려줬으면 제대로 스타트를 끊었을 텐데......청년은 연인과 몇 곡이나 노래를 몰아받고(감정과잉 심함), 효자 아들(죽을 게 예정됨)은 낙타행렬 출발할 때나 불쑥 나와서 사연 잠깐 보여주고 존재감이 사라집니다.

그건 아니지. 

엑스트라들이 저 멀리 가서 부를 가져오겠다는 내용의 남성 합창과 화려한 장안의 겉모습을 찬양하며 남자들을 부추기는 여성 합창을 하는 가운데 부유함보다는 직접 세상의 여러 가지를 보고 싶어서 나서는 순수한 느낌이 더 강한 남주와 어머니를 봉양하려는 효성 깊은 남조가 이중창을 부르며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되고, 남주를 떠나보내는 불안과 그 모험심에 대한 이해를 표현해 양쪽 면모를 모두 보여주는 여주와 실크로드에서 남편을 잃었는데 아들까지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슬픔을 노래하는 여조가 나와서 서로를 다독이는(그리고 부드럽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곡조의) 이중창을 부르고, 그걸 다시 엑스트라 합창이 뒤덮으며 광기처럼 팽창하는 기세로 낙타꾼들이 나가게 몰아붙이는 느낌을 살리면서 이 때 남조와 여조가 서로를 생각하는 모자의 대화로 이중창, 남주와 여주가 기다려줘/기다릴게 대화로 이중창, 이게 서로 섞여들며 사중창을 만들며 클라이막스로 치달아 여기서 합창과 합류해야지. 오페라만 봐도 이 정도 구성은 나온다!

키 아이템도 낙타방울과 붉은 주머니로 두 개인데, 하나는 남주가 처음부터 갖고 있고 또 하나는 여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이걸 차라리 여조가 남조에게 주면 나중에 남조가 죽고 남주에게 이를 물려주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남조가 죽을 때 남기는 게 출발할 때 어머니한테 받는 빵인데.......멋이 없어.

뒤이어지는 정령들의 장난이나 화산폭발(...), 눈보라, 도적, 늑대 등의 난관들도 둘이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느낌으로 구상하는 게 맞지, 그저 볼거리를 보여준답시고 누가 누군지 모르게.......에휴.

사실 극의 재미나 개연성을 생각하면 저 난관들도 '갈 때'와 '올 때'로 나눠서 넣는 게 맞는데, 무대를 옮겨가야 한다는 제약을 생각해서 하나로 몰아넣은 건 어쩔 수 없겠죠. 그 대신에 그런 난관들이 캐릭터들을 드러내고 서로의 감정교류를 깊어지게 해야 의미가 있고 남조가 죽었을 때 그 시신을 집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다짐이 의미가 생깁니다.


유럽 파트는.....이건 보면서 호두까기 인형에서 인형들이 춤추는 파트가 떠올랐습니다. 대사도 없고 맥락도 극의 줄기에서 벗어났거든요.

호두까기 인형에서야 축하공연이라는 작중의 설명 덕에 부드럽게 이어지지만, 이건 그냥 유럽에는 이런 문물이 있구나, 와 신기하다, 이걸로 끝이 납니다.

차라리 무슨 남조2를 만들어서 '저 서역에 검투경기라는 게 있다던데 내 무공을 시험해 보겠다! 그러려면 낙타꾼이 되어서 가는 게 가장 빠르겠군!'이란 식으로 섞여들게 하고 앞선 난관들도 그 캐릭터의 활약을 보여주며 비중을 넣었다면 이 유럽 파트에서도 검투사 복장을 한 남성 무용이 나오는 등의 뜬금없는 진행을 납득시킬 수 있는데요.

그런 것이 없더라도, 하다못해 낙타꾼들이 객석 앞(여기도 소규모 인원이 올라가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는 작은 무대가 있습니다)에서 유럽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며 놀라고 신기해하는 대사라든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대사 등을 쳐줬으면 의미가 생겼을 겁니다.

귀환 도중에 시진핑 부처 나오는 파트나 돌아와서 연인과 재회하는 파트에는 힘 빡 줬으면서.......(그리고 꼽사리처럼 들어가는 어머니의 슬픔) 아, 물론 힘 빡 줬다 해서 고퀄이란 소린 아닙니다.


최종막인 황제 파트가 굳이 나와야 했다면, 저 줄거리 도중에 황제에게 중요한 일을 해결(물건을 배달하든 사람을 구해 데려오든)해서 특별히 초청받는 식으로 가는 게 맞지 않았을까.

그리고 거기서 낙타방울과 붉은 주머니를 바치고, 황제는 그 초라한 선물을 기쁘게 받으며 대충 너희를 잊지 않고 항상 생각하겠다는 정도의 미사여구를 쳐주면 좋잖아.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중국의 현실이 그러든 아니든 일단 문화 콘텐츠에서는 그런 성군 무브를 보여줘야죠. 프로파간다잖아. 대중을 가스라이팅하는데 왜 '우리도 여러분 생각 많이 해요' 정도의 달래는 내용이 없는 건데?

이제 공감하시겠죠. 이 실크로드쇼는 프로파간다용으로 돈 퍼부어서 만들었지만 프로파간다를 받아들이게 하지는 못하고 그냥 눈요기나 즐길 뿐인 어설프고 유치한 쇼입니다.

단점은 단 하나. 세련되지 못해.



서안에서 마신 마지막 술은 서봉주의 화산논검(...) 라인 10년산입니다.

호텔 근처 양꼬치집으로 가서 양갈비를 안주로 해서 마셨는데, 서안에서 마신 것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마시기 쉬우면서도 향이 좋고 목넘김........은 뭐 서봉주 중에서는 그나마 자극이 덜하네요.

특히 이건 향이 미묘하게 다른데, 똑같은 포도향인 것 같으면서도 향의 끝이 뭔가 묘하게 레몬즙을 살짝 뿌리거나 아니면 포도 발효가 살짝 심해서 약간 썩은 듯한......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새큼한 느낌입니다. 이 향이 재밌어요.

다른 술들과 도수는 비슷할 겁니다. 이걸 가장 많이 마신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네 개의 술 중에 제가 마시고 취한 건 이게 유일합니다.

솔직히 맛없는 술에 취하는 건 굴욕이에요. 제가 소주를 안 먹는 것도 그 때문이고.

물론 여전히 주귀주-레드보틀이 원탑입니다만, 이 술은 충분히 '좋다'고 평가해도 좋겠습니다. 아니 어째 12년 15년 하는 놈들이 10년짜리보다 못해?


일단 아직은 서안에서 사온 서봉주 30년산은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산 게 아닌 만큼 제 마음대로 마실 수가 없죠.

그런 만큼 서봉주에서 베스트는 화산논검 10년산인 것으로 확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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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통조림 게으름뱅이 편집자 아스펠입니다

댓글목록 7

TZ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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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묘사 보니 예전에 누가 저런 절경 사진 올리고는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절벽에서 떨어지면

'다신 못 살아나겠지' 하며 적이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거라던 글이 생각나네요.

그런곳에서까지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냥 못이기는 상대니 단념해야한다는 글도...

그리고 재복신이라... 그러고보니 관우도 재복신앙 때문에 신으로 승격되었다던 얘기도 생각나네요.

아스펠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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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대로입니다. 화산 외벽에서 밀면 2천 미터를 그냥 떨어지게 됩니다.

물론 외벽이라고 나무나 풀이 안 자라는 게 아니긴 한데(!) 암벽에 거의 붙어있는지라 의미없죠.

그런데도 살아남았다? 그건 그냥 그 놈이 강한 겁니다.

쟌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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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올라가는 길 중에 위험한 것이 있다고 하던데 괜찮으셨는지...

그런데 중국 여행 갔다오신 것이였군요.

아스펠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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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잔도라고 사고가 많이 나는(사진 찍는데 구명줄 걸고 찍으면 구명줄 나와서 가오 안 산다고 구명줄 벗고 찍다가 추락->시신수습을 하든 살아있으면 구하든 하려고 내려갔더니 언제 떨어졌는지 시신이 몇 구나 있음) 곳이 있으나, 안 갔습니다. 일단 무서워.....

쟌리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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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장소는 피하라고 구사기에도 적혀있는...(응?)

TZ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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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중국 술 하니 생각난건데 구온춘주는 혹시 드셔보셨나요? 뭔 맛인지 궁금해서 검색해보면 조조가 만들었다느니 무슨 대회에서 이겼다느니 하는건 있어도 개인적인 리뷰는 못봐서요.

아스펠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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