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누군가 그러던가, 나이가 들수록 겪은 시간이 있기에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후안에게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겉은 젊으나 그 속은 아주 아주 늙었으니 시간조차 갈피를 잡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7월이 되었다. 마드리드 궁정도 쏟아지는 더위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시종들과 시녀들, 그리고 하인들이 돌아다니며 소위 말하는 고귀한 자들이 시원하게 느끼시기 위한 노력을 생각한다고 한들 떨어지는 햇빛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햇빛에 달궈지
왕에게 기름을 붓는 이유가 뭔지 알아? 사람들의 염원으로 불이 붙으면 더 오래 타라고 붓는거야. 그러면 왕은 그 고통을 모두 견디다면서 가장 아름답게 불타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재가 되어 죽는거야. 아름답게 불탈수록, 더욱 고통스럽지 -20세기 스페인 소설에서 발췌사냥이라고 하면 보통 말을 타고 돌아다니거나 혹은 총을 하나 들고 숲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소리가 나면 그곳을 쳐다보고 잔뜩 긴장한 채로 있다가 동물이 나타나면 숨을 죽이고 총을 쏘는 거다. 그렇기에 후안은 자신의 눈앞에
군주가 된다는 것은 인간이길 포기하고 스스로 번제물이 되는 것이다. 군주가 되는 순간 그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구속될 모든 것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모든 이들을 위한 스페인 근대사 2권에서 발췌해가 지났다. 에스파냐의 국경 병력 점검과 해군 정박지 변경은 프랑스의 신경을 건드렸다. 거기다 카를로스 3세가 영국 대사를 만나고 프랑스 대사에게는 의례적인 대답만 하면서 확언을 해주지 않았다. 프랑스는 만약을 대비해 에스파냐 쪽에 병력을 증강했다. 또한, 카를로스 3세는 재정을 점검하고 예비금
카를로스 3세는 그야말로 스페인 부르본 왕가의 결정체 같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파르마, 나폴리에서 통치자로의 자질을 다졌고, 스페인 국왕이 되었다. 그는 스페인의 국력을 다시 한번 일으켰고, 세수를 증대시켰으며, 조롱받던 스페인군을 유럽의 강군으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많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희생시켰다. -모든 이들을 위한 스페인 근대사 2권에서 발췌카를로스 3세가 죽음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밖은 그리스도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한창일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 에스파냐의 국
흔히 노인에게는 욕망이 사라진다고 한다. 노인들은 무기력해보이고, 천천히 움직이며 세상 만사에 초탈해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노인들도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삐걱거리는 관절이, 잘 보이지 않는 눈이, 조금만 움직여도 느껴지는 피로감이 덮쳐오기에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노인이 활력이 넘치다 못해 뿜어져 나오는 어린아이의 몸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후안이 그걸 보여주려고 하고 있었다.후안은 왕세손을 위해 배정된 방 곳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화려하다 못해 기괴할 정도로 치장된 방 곳곳은 다행히도 후안
농부 후안은 스페인의 국왕입니다-5왕세손과 기묘한 만남을 한 다음 날 카를로스 3세는 다른 날과 다를 것 없이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보고서의 마지막 단락을 읽고 지시를 보고서에서 적자 집무실 창문으로 햇빛이 한 줄기 들어왔다. 카를로스 3세는 잠시 창문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곧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오’분명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 사람이 말하는 혁명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범상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카를로스 3세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사도
증조할아버지는 미쳐버렸고, 큰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시도 때도 싸웠으며, 할아버지는 어머니와 원수지간이고 아버지는 사냥에만 관심이 있어서 가정에 관심이 없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그 집안의 불운을 안타까워하지만, 그 집안이 스페인 왕실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나라의 불운을 안타까워 한다. 집무실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느 방보다 화려했다. 그러나 후안이 이곳저곳을 슬쩍 보자 집무실 그 자체는 화려했지만 오히려 그 방안은 사용자의 취향을 반영했는지 비교적 검소해보였다. 비싼 물건들은 거의 없었고 실용성이 뛰어난 물건들이었다
후안은 예배가 끝난 뒤 방으로 들어와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봐도 이 가족은 정상이 아니었다. 4살짜리 아이를 방치한 것도 모자라서 그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시종들은 의례적인 행동 이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고, 친구조차 없었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만나서 놀고 산과 들을 쏘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후안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고도이라고 했던가’후안은 예배당 앞에서 만난 근위대원을 떠올렸다. 훤칠한 키에 찰랑거리는 금발머리 그리고 잘생긴 얼굴까지 모두 갖춘 남자였다. 아마
후안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끔 여기저기 쑤시던 몸이 더는 쑤시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잠시 고민하다. 어제 자신의 몸이 바뀐 것을 다시 한번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는 차라리 이 모든 순간이 꿈이길 바라면서 눈을 다시 한번 질끈 감고 일어나 거울 앞으로 향했으나, 거기에는 겨우 5살짜리 아이가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의 집에는 거울 같은 게 없었으니 거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게 꿈이 아니라는 증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후안은 침대에 털썩 앉아서 어제 일어난 일을 다시 되짚어보았다. 모두가 국
*스페인의 페르난도 7세 대체역사물입니다.*본문에 인용된 서적은 가상서적입니다.역사를 영웅주의적으로 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겠지만 스페인의 근대에서 한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스페인에 대한 뜨거운 애국심과 스페인 국민에 대한 뜨거운 열정,불의에 대한 격렬한 분노와 약자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올라타 조타수가 된 사람그 사람이 없이는 스페인의 근대를 설명할 수 없다. - '스페인의 19세기'에서 발췌 19세기 말, 그림처럼 그린 스페인의 시골마을 언덕배기는 갈색이 되어 물결치고, 나무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