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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잡담

[잡담] 팬픽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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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에 대한 생각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이하, ‘내청춘’이라 하겠습니다.) 팬픽 창작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기념으로 저의 2차창작관이랄까 하는 것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지고자 글을 씁니다. 제 팬픽이 어떤 마음으로 쓰였는지 머릿속과 남아 있는 기록(팬픽 텍스트들)을 동원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이하는 편의 상 높임말 없이 쓰여 있습니다.




1. 내가 글을 쓰는 의미.




  내 첫 팬픽은 내청춘 원작 9권의 전개를 바꾼 것이었다. 나는 하치만의 중요한 한 마디를 다르게 바꿈으로써 하치만이 겪는 일을 비틀었다. 그러면서도 그 어긋난 흐름은 원작으로 다시 돌아가게 했다. 거기서부터는 어디까지나 근래 들어 가장 애정이 생긴 작품을 대하며 일종의 변덕으로 쓴 글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상당히 한가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마침 내가 관심을 가지는 다른 작품(<히카루가 지구에 있었을 무렵>. 이하 ‘히카루 시리즈’라고 하겠다.)이 있었는데, 그 작품의 주인공과 내청춘의 주인공 하치만은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를 도우려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뒤로 고등학교 생활이 어긋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그 공통점에서 시작하여 하치만이 그 세계에 녹아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내청춘과 다른 작품의 요소를 섞는 크로스오버라는 성격의 팬픽에 관심이 꽤 있어서 나도 한 번 그런 식으로 작품을 써볼까 하는 생각으로 창작을 시작했다. 시간은 많았고 주요한 장면들은 미리 생각해두었다.




  창작을 시작하면서 유의한 것은 주요 장면을 참고하되 원작을 보고 쓰는 것을 최대한 줄였다는 것이다. 대사 하나하나의 세세한 부분에도 원작들에 기대면 내가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의미 자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의미. 적어도 문장은 무언가를 보고 쓰는 것보다 내 머릿속에서 낱말을 꿰맞추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큰 흐름을 따르면서도 내가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 차별성-남들이 가지 않는 길.




  솔직히 말해, 히카루 시리즈가 꽤 유명한 작품이었고, 그 때문에 누군가 이미 내청춘과 히카루 시리즈의 크로스를 시도했다면, 내가 장편 팬픽 <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이하 ‘히카하치’)을 연재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팬픽을 많이 쓰고 있고(그것이 해외건 국내건 간에) 그것들 가운데 볼 만한 것이 많았다. 나는 글을 쓰는 것만큼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글을 50쪽 읽을 시간에 1쪽의 글밖에 못 쓴다. 직접 쓰는 것이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피로가 훨씬 심하다. 그런데 그 결과물조차 이미 다른 데를 둘러보면 나올 만한 이야기라면 왜 굳이 내가 글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최소한 다른 사람이 쓰지 않았을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히카하치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품과의 연계였기에 그 조건을 만족했다. 그래서 연재가 가능했다.




  내가 히카하치를 연재하는 가운데 쓴 세 편의 단편(<졸업 전, 마지막의.>, <여행>, <축복>)에서도 나는 그것을 만족시키려고 애썼다. 자극적인 소재를 넣는 것을 생각해보았으나 어설프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오히려 비슷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잔잔할지언정 그 내용 안에서 다름을 심어두려 했다. 그래서 내가 주목한 것은 인물 사이의 ‘대화’였다.




  옛날도 지금도 내가 가장 편하게 쓰는 글은 대화체로 구성되는 짧은 ‘우화’이다. 나는 그 우화의 형식을 확대하기로 했다. 중심이 되는 대화를 생각하고, 그 상황을 확대했다. 쓸데없는 요소를 집어넣어 오히려 분위기를 다듬었다. 그 전에 쓴 우화나 수필을 참조하여 단편소설로 새로 만들었다.




  히카하치가 중단되고 단편을 위주로 활동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대화를 중심으로 상황을 구성해내는 작품을 더욱 편하게 썼고 거기에 조금씩 변화를 가미하려 했다. 그러던 중에 처음으로 대본체 형식의 개그 팬픽을 쓰는 일도 일어났다.




  그 뒤, 나는 사람들이 그다지 걷지 않았을 길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토츠카를 주인공으로 삼는 팬픽(<천사가 아닌 날>)을 썼다. 그때를 기점으로 한국문학을 패러디하여 내청춘 팬픽을 짤막하게 쓰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메타팬픽이나 세로드립 팬픽 등, 다른 사람이 거의 쓰지 않았을 만한 팬픽을 쓰려고 하였다.(물론 예외도 있다.)




  반면, 약혼이라든가 신비한 도구 등의 요소를 넣어 재미있는 ‘상황’을 만드는 팬픽은 어차피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다지 넘보지 않았다.




3. 다채성




  히카하치를 중간에 끊고 나서 몇 주 동안 단편만 썼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것이 ‘다양한 캐릭터 다루기’였다. 유이, 유키노, 시즈카, 하루노, 이로하, 사키, 사가미 등의 여자 캐릭터와 하치만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토츠카를 주인공으로 쓴 중편을 연재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서 글의 ‘다채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내용이나 형식이나 상관없이 내 작품들을 읽는 사람들이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대본식 팬픽이나 국문학 패러디, 메타팬픽, 세로드립 팬픽 등을 쓰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재미있는 종류의 글이 많다. 기왕 글을 써보는 것, 한 번씩 그런 것들을 흉내 내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고전문학 작품들을 흉내 내는 것이 즐거웠다.




  형식의 다채성과, 내용의 다채성과, 초점이 맞춰지는 인물(그래봤자 십중팔구는 하치만이 주요 인물이지만)의 다채성을 담아내려고 하다 보니 나온 것이 바로 잡다한 단편들이다. 내 팬픽의 목적은 ‘이런 이야기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므로 떡밥만 남긴 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가 있다.




4. 배제하지 않음.




  일전에 팬픽을 논하는 글이 몇 편 올라왔었다. 그때 나도 나름대로 내 생각을 마음속으로 갈무리해 놓았다.




  나는 진지한 내용의 것도, 우스갯소리가 가득한 것도, 의미를 알 수 없게 어그러뜨려진 것도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확실히 있지만,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그것을 팬픽이라는 범주에서 쫓아내고 논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해버릴 마음은 없다.




  일전에 팬픽에서 진지함을 중시한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의 의견이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은 자신은 진지함을 중시하고 그런 내용이 담긴 팬픽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자기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진지하지 않은 내용의 팬픽을 ‘팬픽이 아니다.’라고 배제하지는 않았다.




  좋고 싫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무조건’ 해로운 것으로 규정하고 쫓아내려는 태도이다. 자기의 호오(好惡)가 분명한 사람은 가끔 그런 위험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 사람은 그런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나 자신은 나름대로 다양한 성향의 글을 썼기에 어떤 글이 옳다고 말하면 내가 쓴 글의 일부를 부정하는 게 된다. 굳이 기준을 복잡하게 정해서 내 글을 안에 두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바깥으로 쳐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나중에 나를 붙드는 감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옳다는 말을 쉽게 하지는 못하겠고, 내 주관에 따른 ‘재미’라는 애매한 것만을 기준으로 삼을 뿐이다.




덤 짧은 고찰. 2차장작이 담아내는 캐릭터




  2차창작 계열 팬픽[*유명인을 모델로 삼는 실존인물 계열 팬픽도 있다.]이 어떤 작품의 설정이나 캐릭터를 따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자. 그것은 가상-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흉내 내는 일이다. 이것은 없는 것을 똑같이 만들어낸다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가상 캐릭터들은 아무리 잘 만든 캐릭터라고 해도 작품 내에서 획득한 여러 기호(記號)가 연합되어 만들어진 기호체(記號體)에 지나지 않는다. 실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작품 내에서의 발언, 행동 등이 캐릭터의 ‘이름’ 아래에 묶여 만들어진 것이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런 기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졌다가 덜어졌다가 할 수 있다. 내청춘으로 예를 들자면 작품 초기의 봉사부 세 사람과 10권 이후의 그들을 우리는 동일인물로 여기지만 그들을 이루는 요소들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동일성이 인지되는 것은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이름’이라는 캐릭터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름이 같으면 다소의 성격적 차이가 있더라도 그 캐릭터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럼에도 팬픽에서 ‘이름만 빌려왔지 캐릭터가 다르다’라는 평을 받는 것은 그 작품에서 보여준 기호적 행동들을 납득할 만큼 많이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캐릭터를 이루는 주요 기호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캐릭터의 이름 아래에 제대로 묶어낼 수 있을 때, 팬픽의 캐릭터는 원작의 연장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주관에 의한 것뿐이지, 캐릭터상이라는 것이 실존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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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을 맞아 호국영령 분들께 묵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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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15:37:32 (4369일째)
경험하지 않은 일을 단언하는 것은 경솔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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